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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론즈실버 May 20. 2023

#18. 강아지를 싣고 선착장에서 한참 동안 고민했다

단지 악독한 사람이 아니어서, 평범해서 할 수 있는 일

생각보다 손쉽게 잡은 개를 뒷자리에 실어놓은 채로, 선착장 주차장에 차를 대고선 나는 얘기했다.

"이제 배를 타고 섬에서 나가면, 얘는 우리 가족이 되는 거야. 20년간은 함께 지내야 해. 몇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생각하자."


육지로 가는 배와 새 주인을 만난 강아지, 연인의 모습이 다음 컷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사실은 그러지 못했다. 바로 탈 수 있던 배를 한 대 보내고, 속된 말로 '염불'을 외기 시작했다. "잘 키울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냥 데려다 놓을까?"의 무한반복이 계속됐다.


뒤에서 낑낑 울고 있는 개한텐 너무 미안했지만, 내 기억 속엔 노견으로 마지막을 함께 보낸 강아지가 2마리가 있었다. 막상 개를 잡을 땐 느껴지지 않던 책임감이 밀어닥치듯 엄습했다.

그래서, 만약 지금 다시 차를 돌려서 공사 현장에 개를 풀어놓고 우리만 뭍으로 나온다면.

 

보지도 않았는데도 마음을 헤집어 놓던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괴로울 것 같았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강아지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한편에 죄책감으로 남겠지.

그래서, 그럴 수없었다. 우리는 개를 뒷좌석에 그대로 싣고 육지에 왔다.


혹시, 이 배를 타고 가서 버려진 거라면, 우리랑 다시 육지로 돌아가자.  



제일 먼저 간 곳은, 동물병원. 인천에서 양심진료로 유명했고 키우는 고양이가 다니는 곳이었다. 유명한 곳은 여느 그렇듯, 선착순이었다. 우리는 낮 12시쯤 도착했고 장장 3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진료를 봤다.


그런데 웬 걸? 너무 더러워서 진료를 볼 수 없단다. 하긴, 엉덩이에 잔뜩 뭍은 배설물, 슬쩍만 털을 뒤집어도 바로 보이는 진드기들. 뭔가 진료를 보려면 씻고 오긴 해야 할 것 같았다. 급한 대로 각종 검사를 하고, 몸에 바르는 진드기약을 받아서 집으로 향했다.


이제 우리 집에서 살기 위해선 목욕이 필요했다. 엉덩이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더러운 것들은 차마 맨손으로 문지를 수 없어서, 우리는 고무장갑을 끼고 닦아냈다. 샤워기로 등을 몇 번 쓱 쓱 하니, 아이보리 색인줄 알았던 털은 뽀얀 흰색이 됐다. 세상에. 몸에 진드기가 너무 많아 하나하나 뗄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털도 어디 하나 성한데 없이 양털처럼 군집을 이뤄 뭉쳐있었다. 겨울에 입는 퐁퐁이 옷 같았다.  하지만 우리의 욕심을 채울 때까지 씻기기엔 우선 아이가 너무 힘들어해서 샴푸 한 번으로 타협을 봤다.


목욕 후 베란다에 격리된 강아지.
" 내보내주세요. 왜 저만 여기에 있나요!" 그땐 격리돼서 괴로웠겠지만  그래도 귀엽다. 야.

.  


일 년이 꼬박 지난 지금에서야 들은 얘기.

"오빠, 내가 그때 배 타기 직전에 다시 데려다 놓을지 한참 고민했었잖아"

"그랬지. 자기 염불을 왰지. 심지어 다시 풀어놓을까 고민도 했잖아.“
"맞아, 그랬었지. 그때 오빠는 어떤 생각했어?"

"어? 아무 생각 없었는데? ㅋㅋㅋㅋ"

"내가 다시 공사장에 풀어주자고 했다면?"

"근데 나는, 자기가 안 그럴 거라 생각했어. 자기는 그렇게 악독한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진즉 예상은 했지만, 집에 온 강아지를 보고 버려진게 정말 맞겠구나 싶었다. 볼리는 소변 패드를 처음 깔아주자마자, 한 치의 오차와 조금의 실수도 없이 정확한 조준 실력을 보여줬다.


악독한 누군가로 부터 버려졌지만, 덕분에 내 곁에 온.

이제 우리가 너의 마지막 주인이 돼줄게. 이젠 추울 땐 따뜻하게, 더울 땐 시원하게 해 줄게. 비 오는 날은 비를 피할 곳을 찾지 않아도 되고, 혹여나 천둥이 쳐서 무서우면 언제든지 안아줄게. 깨끗한 물을 언제든지 마실 수 있도록 넘쳐나게 해 줄게. 험한 음식 먹어서 배 아프지 않도록, 혹여나 배 아플 땐 혼자 구석에서 앓지 않도록 할게. 병원으로 가서 고쳐줄게. 무엇보다 배고프지 않게 해 줄게. 오늘은 뭐 먹어야 하지, 라며 이곳저곳 헤매지 않게 할게. 오늘은 뭘 먹을 수 있을지 행복한 상상만 하게 해 줄게. 비록 마음껏 뛰어다닐 순 없어도, 아침저녁으로 매일매일 산책 시켜줄게. 집에만 하루 종일 있는 날은 없게 해 줄게.

볼 수록 이쁜 내 강아지, 볼리야. 곁에 와줘서 온 마음을 다해 고마워.

데려 온 다음날, 산책 나온 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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