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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론즈실버 Jun 22. 2023

#27. 기꺼이 초대받고 싶은 사람들만 부르고 싶어요!

청첩장 받고, "가야 돼? 말아야 돼?" 않는 사이만 입장 가능합니다.

  벌써 결혼식을 3개월 앞두었다. 어디 말하기 민망하게도,  남자친구를 만나고 고작 육 개월 정도 지났을 때 '나는 비혼주의자'라고 얘기했었다. '나는 결혼 생각이 없어. 혹시 결혼을 하고 싶은 거라면 지금 말해줘.'라고 다부지게 얘기했었다. (아직도 남친은 내가 조금이라도 결혼식을 기대하는 내색을 비추면, "비혼주의자라며~~"하며 놀리곤 한다.)


나중에야 알게 된 거지만, 나는 비혼주의자가 아니라, 결혼을 하고 싶지만 괜찮은 남자를 못 만날 것 같아서 겁이 났던 '미혼'이었다.


말로만 비혼주의자가 된 데에는 전남자친구가 한몫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마음속 한편에 있는 자격지심을 살살 키워냈다. 물론 그에겐 뒤틀린 속내가 없었을지언정, 그를 만나고 나면 나는 보잘것 없이 느껴졌다. 그래서 헤어질 즈음엔, '나는 아무도 만날 수 없어. 이런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없을 거야.' 라며 친구들과 동네 치킨집에서 맥주를 앞에 두고 울먹이며 토로했다. 물론 친구들은 '개소리'라며 '치킨이나 더 먹으라.' 했고.


그땐 우리 엄마아빠의 불화라던가, 어려운 집안 형편, 나의 학벌 같은 게, 전부 내 잘못 같고 내 흉, 같아서 한없이 움츠러들고 마냥 부러웠었다. 지금은, 조금 억울(?)하다. 이제서야,


"야! 그게 내 잘못이야!? 태어났는데 이런 걸 어떻게 해? 그래도 나는 우리 아빠와 다분히 로맨틱하게 세 시간의 데이트를 할 수 있고! 지극히도 착한 우리 엄마의 딸인데! 그게 뭐! 보태준 거 없음 꺼져!"


무튼 나를 갉아먹던 그 연애를 끝난 후,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과 8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


진짜, 이건 진심인데, 이 식장은 마카롱 맛집이다. 이 집은 진짜 눈 동그레 지는 맛이다.




비혼주의자란 말이 무색하게도, 나는 결혼식장부터 유난스레 공을 들였다. 원래 안 하려던 결혼인데, 이왕 하려면 기억에 남는 이벤트가 되길 바랐다. 나뿐만 아니라 오는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하필 그즈음,  "자~ 김 oo신랑 이 oo신부의 결혼식이 지금 시작합니다! 들어오세요!!"라고 외치고 식장 문을 닫아버리곤 30분 만에 결혼식이 끝나버리는 식장에 갔다가, 내게 결혼식 로망이 있음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양가 합쳐서 달랑 150명을 모시고, 한 결혼식마다 5시간 동안 식장을 빌려 느긋하게 1부와 2부를 진행할 수 있는, 그런 곳에서 결혼식을 한다. 결혼식을 '치르는 곳'이 아닌, 결혼식이 '이뤄지는 곳'이길 바라며 골랐다.  


결혼식 전, 5번이나 방문할 계획이다. 매번 갈 때마다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나의 식장. 예쁘고 예쁘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식장을 찾으며 제일 먼저 생각한 건, 식장의 크기나 위치, 밥의 맛, 주차장의 여부, 드레스가 아니었다. 그 날 오는 사람들이 '기꺼이 시간을 들여서라도, 오고 싶은 사람들만 모인 결혼식'이길 바랐다.


청첩장을 받고, "나 가야 돼? 말아야 돼?"라고 고민하지 않도록. 너의 결혼식이라면 당연히 가고 싶고, 축의금크기에 대한 고민보다 그날의 신랑신부를 먼저 축복해 줄 사람들만, 귀하고 귀하게 모시고 싶었다. 결혼식 사진을 60대에 다시 보아도, 방문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나와 돈독한 사이인 사람들만 정성 들여 초대하고 싶다.


그러다 보니, 누굴 초대해야 할지가 요즘의 일생일대 가장 큰 고민이다. 가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중이 진심인지, 아님 허례허식으로 그냥 던지는 말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마음 같아선, 오고 싶은 사람들만 투표해서 모시고 싶을 지경이다.


모쪼록, '다시 할 것'을 생각지 않고 하는, 9월 9일 나의 결혼식날엔, 시기와 질투, 평가와 이해타산이 없길, 그날의 좋은 날씨, 매끈한 화장이나 드레스의 트렌디함보다, 오는 사람들이 나의 행복을 오롯이 빌어주길 더 간절히 바란다.  


(그러니, 혹시 내가 청첩장을 살며시 건넨다면, 나와 평생 함께 늙어가자는 사랑 고백으로 알아줬음 좋겠다!)


조화가 아닌, 진짜 식물이 식재되어 있는 나의 식장. 거기에 홀딱 반했다. "어머! 이거 진짜 고사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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