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고 싶은 게 생겼거든요.
격주 4.5일 근무, 결재 필요 없는 시차 또는 연차 사용. 1분 거리의 역세권 신축 건물, 점심식대 무제한, 가~끔은 커피값도 가능. 간식 제공, 재택 가능. 그리고 좋은 동료들. 지금 다니는 회사의 복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렇게 빠르게 퇴사를 말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입사가 3월 13일이니까, 127일 차인 7월 17일, 오늘. 나는 내 삶에서 6번째 퇴사를 회사에 고했다.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출근 겸 요가원에 갈 준비를 한다. 집에서 요가원이 한 시간은 걸리기 때문에, 조금 서둘러야 한다. 첫차엔 늘 사람들이 가득하다. 대부분 강남으로 청소를 하러 가시는 어머니들. 근데 묘하게도, 그분들의 표정은, 8시 반의 2호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보다 밝다. 분명 더 힘드실 텐데, 내리시는 정류소에 도착하기 훨씬 전에 먼저 일어나서 내게 자리를 양보하시려고 한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제발 앉아계세요."
그렇게 도착한 나의, 퀘렌시아. 한 시간 반. 내가 하는 마이솔의 요가스타일은, 구령 없이, 순서대로 내 호흡에 맞춰 수련을 이어가는 방법이다. 느리면 느린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오로지 내게 집중하며 나에게만 맞춘다. 마지막 송장자세인 사바사나를 할 때는 애플워치에 5분 알람을 맞춰놓는다. 혹여라도 잠들면, 무조건 지각이다. 깨워주는 사람이 없으므로.
그리고 나는 회사가 있는 선릉으로 향한다.
회사는 성과를 요구했다. 그 어느 때보다 결과를, 그리고 새로움을 요구하는 곳이었다. 나는 잘 해냈다. 대표가 직접 '잘하고 있어.'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너무 불안했다. 더 해야 할 것 같았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직 부족했다. 더 좋은 걸 만들어내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물음을 달고 살았다. 불안에 떨며 엉엉 울기가 일수였다. 불안을 헤쳐나가려면 행동해야 하는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기에.
그리고 기어코 매트 위까지 그 고민을 끌고 왔다. 그래서 수련이 즐겁지 않았다. 그러니까 수련을 안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련을 안 가길 4일 차, 그다지 늦은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한 저녁 8시,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나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동은 씨에게 그 눈물의 의미가 뭐였어요?"
".... 음..., 음....,....... 허무함. 공허함이었던 것 같아요."
그 주 상담에서 나는, 일하며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고 되려 공허함과 마주했다.
잘 해내고 싶은 회사 일과 요가. 이건 내게 땅에 내려놓을 수 없는 귀한 짐이었다. 양손에 하나씩 그 짐을 들고서, 어느 것도 내려놓지 못한 채, 힘들게, 겨우겨우, 고작 삼 개월을 버텼다.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그때 잠깐 쉬었다.
그게 매트 위였다. 매트 위에선 불안도, 즐거움도, 행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평온했고, 주어진 호흡에 집중하며 '지금, 여기'에 머무르려 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후, 이제야 알았다. 양손에 무겁고 귀한 보따리를 다 들고 있을 순 없다고. 적어도 한 손이 비어 있어야, 옮겨 들 수도 있다. 하물며 누군가 물을 내게 건네주었을 때, 그 잔도 흔쾌히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귀한 짐을, 잠시 내려두려 한다. 그래서 퇴사를 외쳤다.
해보기 전까진 모른다. 이건 회사에서 어떤 프로젝트나 가설을 테스트할 때만 쓸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내 삶에도 귀결된다. 그래서, 해보려 한다. 내게 정말 요가강사라는 직업이 맞는지. 그리고 하고 싶은 만큼,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그러기 위해서, 내일도 새벽 네시 알람을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