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성 Aug 22. 2024

전환 버튼

때로는 공기 중에 익사할 것 같은 때가 있다.


  사람도 무너져 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날에는 그런 폭삭 무너져 버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하는데 아마 세상 일이 모두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난관에 봉착하는 막막함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볼 것이다. 그런 날이면 나는 그저 무너지는 것을 선택했다. 형태를 잃어버리고 잔해로 퍼져서 바닥에 낮게 깔리고 그 바닥 마저도 무너져서 땅속으로 침전하는 느낌. 길을 걷고 있으면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점점 땅속으로 빠져가는 느낌. 공기 중에 익사할 것 같은 느낌. 그냥 잠겨버리자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삶이 쉽지 않은 것은 때때로 사람이 무너지기 때문이 아니라 무너졌을 때 다시 일어날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난관의 층위는 시기에 따라 참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오곤 하는데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닌 일도 있겠지만 어느 시기든 간에 마주한 문제들은 당시엔 가장 심각한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어떤 문제에 부딪쳤다고 한다면 절대 나의 기준으론 판단해선 안되겠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늘 문제에 봉착한 사람 속에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문제들은 당장 눈 앞을 깜깜하게 만든다. 숨이 막히고 식은땀이 나는 일들은 사람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체감시켜주기 위해 일어나는 것일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문제들에 의해 나약해진 사람이, 무너진 사람이 다시 일어나는 것은 그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문제를 받아들이고, 생각을 고치고, 의지를 다지는 순간 다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어떤 문제들은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사람에게는 정신적인 면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을 스스로 해낼 수 있다면 강인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정말 안타까운 것은 내가 그렇게 강인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결혼하기 전엔 정말 외강내유의 표본같은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겉으로는 강한 척하면서 혹여나 나의 약점이 드러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유약한 인간처럼. 남의 문제를 듣고 포용하고자 하면서 정작 자기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부족함이 내 안에 가득 찼다. 해가 쨍쨍한 날이면 길바닥에 깔린 그림자가 사실 내 본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겨 혼자 침전해 가는 것처럼. 대부분의 문제는 시간의 흐름에 옅어져가면서 해결되어 왔는데 그러는 동안 나는 많은 것을 잃고 많은 것을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 같다.


  대개 실책은 내가 주변의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되었다. 삶은 우연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나는 그 우연들의 단편적인 연결고리만 보고서 나의 삶을 내가 온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자만에 빠진 것이다. 그런 연결고리가 하나라도 갑자기 끊어져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나는 늘 당황하곤 했다. 나는 한 번 당황스럽다 싶으면 깊은 골에 빠지는 것처럼 가라앉아버리는데 지금 내가 나를 진단해보았을 때 나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이 된다. 내 삶에 있어서의 가장 큰 악영향은 역시 가라앉은 내가 쉽게 일어나지 못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런 내가 결혼을 결심했을 때 마음 한 켠에선 불안함이 일었다. 결혼을 통해 내가 가정을 이루게 되면 그만한 책임이 따르게 된다. 내 삶의 무게는 이전과는 달라야 했고 나는 전보다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나 강박 속에서 나를 비추어 봤을 때 유약한 내가 강해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결혼을 했다고 모두가 어른이 되는 것도, 강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닐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나 자신에 대한 의구심은 나를 길게 괴롭혔다.



  그런 의구심을 뒤로 하고 나는 아내와 앞으로 가질 더 행복한 삶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결혼했다. 내가 불완전한 인간일지라도 행복할 권리는 있을테니까. 아내 역시 불완전한 사람이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면 우리는 서로의 행복할 권리가 되어 서로를 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로 했다.


  사람이 결혼을 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변하는 것은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마냥 슈퍼 솔져 혈청을 맞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날, 어떤 순간을 기점으로 바뀔 수는 없겠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었다. 나는 어떤 불안함을 느껴선 안된다는 의무감이나 강박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내를 불안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제 1의 원칙같이 여겨졌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맞대고 기대고 있다. 아내가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삶의 근간을 위태로울 수 있게 하는 것이기에 더욱 철저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자주 다짐했다. 


  결혼한지 10개월이 되어가는 기점에서 돌아봤을 때 아무런 문제나 난관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현명하게 대처해오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아내와 함께 할 날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만 지난 날을 돌아보는 것은 중요할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일 것이다. 나는 어느새 예민한 촉각이 무뎌져 내 삶의 요소들을 온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착각에 다시 빠졌다.



  사람이 모든 것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은 늘 착각이다. 세상은 역시 우연으로 가득 차있고 모든 우연을 대비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예상치 못한 일에 다시 한 번 당황에 빠진 나는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안되는데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봐도 쉽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그림자가 나보다 더 크게 느껴지려고 하고 있었다. 나의 속은 텅 빈 것처럼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채 그저 '잠긴다 잠기어 간다'고 되뇌고 있었다. 식은 땀은 피부 속으로 스며들고 나를 더욱 음습하게 만드는데 그 습기를 바탕으로 가슴에 검은 이끼가 끼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할거냐는 스스로의 물음은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대답은 내놓지 못한 채로 같은 물음만 반복하고 있었다. 


  이마를 짚고서 힘 없이 스러져 있는 내 곁으로 아내가 다가왔다. 나는 아내에게 지금의 상황이 어떤지 내가 느끼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평소와는 다르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 우울에 빠지면 나는 쉽사리 그 늪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했다. 깊은 골에 단단히 끼어버린 것처럼 나는 빛을 좀처럼 찾지 못했다. 그런 어두운 목소리로 습한 이야기를 계속 해나가는데 보통의 이러한 우울은 자가당착이고 악순환이다.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나는 더욱 작아져가고 나는 점점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된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군데군데마다 아내가 느껴졌다. 아내의 손을 잡고 있는 손의 촉감, 내 이야기를 깊이 듣고 있는 눈, 뽀얀 이마, 호응하는 차분한 목소리. 그런 것들이 깊은 골짜기에 빠진 나에게 모두 한 줄기 한 줄기의 빛처럼 내리 쬐었다. 나는 문득 눈 앞을 가로지르는 빛 한 줄기에 고개를 든다. 그제서야 시야에 들어온 내 머리 위엔 솟아오른 돌부리가 있었고 나는 손을 뻗어 돌부리를 잡아 당겼다. 몸이 쑤욱 빠진다. 그 다음엔 바윗자락을, 그 다음엔 바위 틈에 솟은 풀뿌리를 잡고 당긴다. 점차 몸이 솟아오른다. 


  결혼 전 아내에게 청혼을 하던 날이 문득 떠올랐다. 저녁 식사 후 반지를 아내 손가락에 끼워주고서 우린 객실로 돌아왔다. 서울의 야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방안에서 불을 켜지 않고 한 가운데 마주 섰다. 그리고 말 없이 한참을 안고 있었다. 1초 1초가, 순간 순간이 판으로 찍힌 사진처럼 느껴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결혼 생활이 마냥 쉽지만은 않을 거라고. 살면서 많은 위기와 문제에 봉착할 거라고. 아내와 함께 깊은 밤 서울 끝의 불빛까지 보이는 곳에서 나는 언젠가 정말 그런 문제에 부딪치면 이 순간을 생각하겠노라 다짐했다. 사람들의 말대로 언제나 원하는 대로는 될 수 없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해야지. 아내를 안고서 사랑한다고 말했던 그날, 내 말에 말 없이 눈물을 흘리던 아내가 이윽고 행복하다고 말했던 그 순간을 기억해야지.



  어느샌가 나의 우울의 골에 빠져 있던 나는 강렬한 햇빛을 마주했다. 문제는 여전히 앞에 있었지만 나는 해결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반드시 해내리라 하는 강인한 의지가 마구 솟구쳤다. 형체를 잃고 무너져 내렸던 나는 차츰 다시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일으켜 준 것은 분명 아내였다. 아내가 무엇이라고 이야기 해주지 않아도,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 준 것은 아니더라도 그저 아내의 존재가 나를 일으킨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분명 아내였다. 당황이나 난감함은 씻어버린 채 나는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아내와 함께 의지를 다졌다. 깊은 골짜기에 빠졌었다면 그만큼 높이 올라왔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여전히 유약하지만 나는 이전보다 강인하게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아내와 처음 사귀었던 날 우리는 산 정상을 한 걸음 남겨두고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우리의 첫 만남에서 정상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둔 것은 대단히 의미가 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나는 그 정상을 알지 못하니까, 나와 아내의 삶은 그 정상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또 언젠가 내게 예상치 못한 일이 닥치고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삶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조금은 그 불안과 걱정에서 멀어졌다. 뽀얀 아내를 보고 있자면 그렇다. 사람은 지킬 것이 있을 때 강해진다고들 하는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아내의 행복을 1순위로 생각하는 만큼 더욱 강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어느날 무너져 내리더라도 아내와 함께 일어나리라는 생각하고 더욱 용기를 얻는다. 아내가 나를 더욱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니까,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유약하고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아내와 함께 있는 지금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내는 나를 그렇게 바꾸어 주는 전환 버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아내 곁에 있는 내가 그런 사람인 것이니까. 삶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그날의 야경 불빛 조각 하나하나처럼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아내의 손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시골바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