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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성 Aug 25. 2024

늦여름의 주말

북한산의 족두리봉


 "주말에는 함께 산에 오르며 서로의 건강을 책임지겠습니다."



  우리 부부의 성혼서약서의 3번째 조항이었다. 우리 동네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첫 번째로 자랑스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천하 명산인 북한산이 머리맡에 얹혀있다는 것이다. 이호철 작가의 단편소설 <큰 산>에서 이르듯이 사람은 큰 산 아래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청명한 날마다 느낄 수 있는 멋진 동네다. 더욱이 우리 부부는 등산으로 이어졌으므로 이러한 서약은 의미있는 것이었다. 결혼한 지 두 달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보는 첫 등산 날의 사진이 마치 선견지명의 이물인 것 같이 신비롭다. 그날 나와 아내의 사진을 찍어주셨던 아주머니께 감사한 마음이 이는 한편 혹 그분께서 월하노인이 아니셨을까? 하는 의문도 한 켠에 같이 일었다.


  호기롭게 주말마다 등산을 하겠다고 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문제는 주변인들이었다. 사람 놀리기 좋아하는 친구들은 결혼 후 주말마다 연락이 와서는 산에는 갔냐고 묻는다. 한동안 정리할 것도 많고 신혼 살림에 세간 살이, 신혼여행 중 미뤄진 업무들이 신혼자의 어깨를 짓누르기를 한 달이 지날 무렵, 새로 맞이한 토요일 아침에 문득 이제는 여유가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새삼스러운 여유였다. 주 5일제가 공연한데 토요일에 오늘은 한가한 건가? 하는 생각이라니. 오히려 주말에 더욱 잘 깨는 아침 잠은 간 밤의 어둠과 같이 온데간데 없다. 만월 모양으로 생긴 벽걸이 시계는 겨우 오전 6시를 나타내고 있다. 옆에서 곤히 잠든 아내를 깨우기는 다소 미안하지만 이미 깨어버린 정신에 왼 팔을 내어주고 천장만 바라보기는 21세기 인류에겐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요즘같이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세계 곳곳의 흥미로운 컨텐츠가 자기를 봐달라고 아우성치며 나타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잠깐 몸을 일으켜볼까 싶은데 아내는 잠귀가 밝아 조금만 뒤척이는 소리가 나도 곧잘 잠에서 깬다. 내가 아내에게 미안한 일이 많아지는 대목이다. 잠기운 서린 목소리로 깼냐고 묻는 아내에게 나는 황급히 더 자라고 하며 어깨를 토닥인다. 그러면서도 이 한가한 주말을 아내와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빨리 얘기하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진다. 이것은 참 나의 성격이지만 불가항력이기도 한 것이었다. 무언가 기발하거나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한시라도 빨리 그것을 말해버리고 싶다는 것이다. 서프라이즈 선물같은 깜짝 이벤트는 진작 내가 감당하기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런 마음에 아내를 더 재워야 한다는 우익과 오늘같이 청명한 날씨에 등산을 하면 어떻겠냐고 물어야한다는 좌익이 충돌했다. 분리 불안이 갈등 상황에 대한 불안감으로 자라난 나의 성향은 늘 갈등을 불편하게 여겨왔고 역시 내적갈등이라고 해서 상황이 다르지는 않았다. 강인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나약한 나의 마음은 이번에도 쉽게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한다.


  "누나, 오늘 날씨도 완전 맑은데 북한산 갈까?"


  "북한산? 몇시쯤?"


  "글쎄, 한 8시쯤 어때?"


  "그러자."


  잠도 덜 깬 와중에 산행이 정해지자 흥에 겨웠다. 마침 아내도 새로 사놓은 등산화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산행이 더욱 즐거울 것 같았다. 그렇게 슬슬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아침에 네스프레소 캡슐 커피를 한 잔 마신 후 나갈 준비를 하게 되었다. 처음 등산을 같이 했던 그 날의 착장과 같은 옷을 입고 이제는 지하철 역 출구에서부터가 아니라 현관문을 나서면서부터 함께였다. 작년 6월 초 같이 북한산을 오르기 위해 만난 우리는 처음 서로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었다. 물론 이는 나중에 알게 된 것이었지만 말이다. 나의 경우 나에겐 그저 동네 동산 같은 북한산인데 아내의 복장이 산악 전문가와 같았기 때문이고 아내의 경우는 내가 동네 마실 나갈 것 같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일과 나눴던 이야기를 다시 복습하며 등산로의 초입에 이르렀다.


  여름 아침, 푸른 나뭇잎에 부딪혀 부스스 떨어지는 햇빛이 싱그러웠다. 푸른 계곡물 소리가 곧은 등줄기 사이로 시원히 내려오는 북한산 길을 오르자 흥이 돋아 걸음걸이에 리듬이 실렸다. 아내는 뒤에서 나를 보며 한바탕 웃고는 휴대전화를 꺼내어 동영상을 남겼다. 아내가 찍은 동영상을 보니 아마 올해 산을 오른 사람 중에 가장 신이 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연말 북한산 등반자 어워드에서 올해의 흥쟁이 상은 단연 따놓은 당상이라는 망상까지 더해진다.


  아내와 함께 그 등산로를 오르는 것이 약 1년 3개월만이었다. 세월의 풍화 때문인지 영특했던 기억력을 잃어 어제 점심으로 먹은 것도 잘 어버리는 와중에 작년에 처음 등산했을 때 이야기를 나눴던 주제들이 명주실에 대롱대롱 달려오듯 하나씩 떠오른다. 그날의 걸음걸이, 직장 동료로 함께 할 때는 몰랐던 이야기들과 개인적인 성향 이야기. 그리고 그 날 이후 결혼해서 다시 산을 오르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발자국 하나에 추억과, 짚고 넘어가는 돌계단 하나에 함께 하는 즐거움이 산 속에 빼곡히 들어찼다. 누가 우리의 흔적을 모아 산에 흩뿌려두기라도 한 것처럼 아침의 산은 우리만의 기억이 가득했다. 그렇게 우리 사이에 많은 추억들을 떠올리는 것은 잘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닳아버린 기억력은 역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틀이 닳아버린 도장에 새 인주를 찍는다고 선명하게 날인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산길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갈림길을 두고서 여기였나? 저기였던가? 고민하는 사이 아내는 잠깐 숨을 몰아쉬었지만 안전예민증을 가진 나에게 산길을 잃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조난이라는 것이 결코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유념한 나는 최대한 객관적인 증거로 길을 찾아보려 했다. 그 증거라 함은 바로 거미줄이었다. 거미줄이 없는 쪽의 길이라면 사람이 지나다녔다는 증거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미란 원래 부지런한 동물인가, 그 생태는 잘 모르겠지만 거미줄이 없는 길이 없었다. 결국 희미한 기억에 의존해서 산을 오르게 되었다. 성에 역할은 없고 고정된 관념은 인간의 능력을 한정짓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바지만, 그럼에도 듬직한 남편이 되고 싶었던 나는 산길이 잘 떠오르지 않는 자신이 조금 원망스러웠다.


  다행히 올라가는 중엔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 그리고 나타난 멋진 모습. 북한산 족두리봉의 모습이 나타났다. 커다란 바위의 모습이 마치 머리에 진 족두리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봉우리 이름이다.



  웅장하게 솟은 바위에 감탄하고 매끈하고 유려한 선에 또 한 번 놀랐다. 맑은 하늘을 머리에 인채 사람을 굽어보는 큰 산의 첫 번째 봉우리, 족두리봉이다. 어려서부터 셀 수 없이 많이 족두리봉을 바라보고 올랐지만 그 아름다움이 경신되는 것만 같다. 도산십이곡에서 이황 선생님이 본 청산이 만고에 푸르다면 눈앞의 바위산은 만고에 굳건하다. 푸른 산 줄기와 굳은 바위 봉우리의 모습을 아내와 함께 두고 보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낼 가정의 모습이 저와 같았으면 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 아니었을까.


  건너편에서 봉우리를 바라본 우리는 각자 마음 한 쪽에 족두리처럼 생긴 바위를 가지고 하산했다. 맑은 하늘을 품은 바위 산이 든든한 우리 가정의 울타리가 되는 멋진 동네에서, 큰 산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틈으로 내려왔다. 하늘이 매일 푸를 수는 없겠으나 바위는 매일 그자리에서 단단하다. 우리의 모습이, 우리의 가정이 저와 같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챙겨온 마음 한 켠의 족두리가 세월의 풍파와 세간의 눈, 비에도 끄떡없기를 바라는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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