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마지막날, 수가공으로 된 어깨에 두르는 천을 두 개나 사고 보니 생각보다 돈이 없다. 돈을 많이 가져왔다 생각했는데 뜻밖이다. 선물용으로 산 것도 있다 보니 그렇게 깎지도 않았고, 꽝시 폭포를 한 번쯤 보고 싶긴 했지만, 한 시간을 달려가야 한다는 것도 쉽사리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하루를 느긋하게 보낸다. 가보고 싶으면 가보고 피곤하면 방에 와서 쉬고. 그래도 일몰 명소이자 올라가면 도시가 다 보이는 곳이라는 얘기에, 올라간 김에 보고, 내려와서 달리기를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무릎보호대, 지갑 등등 달릴 준비를 하고 언덕으로 향한다.
일몰시간이 가까워지자 야시장이 펼쳐지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에메랄드 빛, 진짜 실크인지 모르겠지만 스카프가 눈에 띈다. 하나를 짚자 8만 킵이라 부르길래 흥정을 해 본다. 흔쾌히 5만 킵에 해주고, 돈을 내밀자 그녀는 이전에 다른 이들처럼 나에게 받은 돈을 물건 곳곳에 기원을 하며 돈이 붙기를 바라며 돈을 붙였다 뗐다를 한다.
산 것은 나중에 거추장스러울 수 있으니 방에 다시 가서 대충 던져놓고 방을 나간다.
언덕을 올라가는 계단 좌우에는 음료수를 파는 사람, 기도할 때 올리는-바나나 잎을 말고 연주황색 꽃으로 고깔모양을 한- 기도 때 필요한 것도 판다.
그 와중에 코코넛 음료를 팔기도 하는데, 남어이도 있다!
등산도 할 거고, 나중에 달리기도 할 테니, 남어이 하나를 주문한다. ‘싸이 망라오’ 얼음을 적게 넣어달라 한다. 라임을 보여주며 마지막에 짜서 나에게 건네주는데 참파삭에서 파는 5천 킵의 세 배 돈인데, 컵이 얄상하다. 어쩔 수 없지, 여기는 관광지니까. 오히려 부피스럽지 않아서 나름 들고 다니기 괜찮다. 뜻밖에도, 산 중턱에서 입장료를 받는다. 뭘 사 먹겠다고 지갑을 안 가져왔으면 헛걸음했을 뻔했다. 좁고 가파른 계단. 벽돌을 옆으로 눕혀 세워 쌓고 그 위에 시멘트를 발라서 만든 계단은, 관광객이 많이 와서 밟은 것 때문인지, 아래의 흙이 움직여서인지 여기저기 갈라지거나 한 덩어리씩 깨져있다.
뭐 어때~ 위험하지만 않으면, 밟고 올라갈 수 있다면.
올라가는 사람, 내려가는 사람이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이 이 계단을 오르고 내려간다. 갓 한 살도 안된 것 같은 아기를 앞으로 업고 오르는 부부도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러 오르는 것인지 소원을 빌기 위해 오르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각자 원하는 것이 있어서 한 발씩 딛고 있겠지.
가파른 것 대비 계단은 많지 않아 금방 탑까지 올랐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몰려 있는 오른쪽에 새하얗고 뾰족한 탑은 더 높이 하늘을 향해 있다.
꼭대기를 향하는 쪽으로 해가 저물고 있어 눈이 따갑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루앙프라방 전경. 내가 머물고 있는 야시장이 있는 거리 반대편이 눈앞에 펼쳐진다. 내가 다니고 걷고 했던 길이 전부가 아니었고, 그 거리는 하나의 길에 불과했다. 반대편의 높은 산이 경계가 되어 감싸는 그 안으로 다양한 집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다양한 박공지붕. 은은한 붉은색 틀의 지붕. 기와 색깔, 어디에도 눈에 거슬리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지막한 1층, 2층의,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각기 다른 건물들과 곳곳에 건물보다 높은 야자수 나무가 초록빛으로 곳곳에 어우러져 있다.
아직은 해가 떠 있었고, 고요하게 여기저기를 비추고 있다.
지도에서 봤던 ‘오래된 다리’가 왼쪽으로 멀리 보이고, 그 다리를 부지런히 건너는 오토바이, 자전거가 꼬물꼬물 귀엽다.
어떻게 보면 전체가 유네스코로 지정이 되었는지 알만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관광객이 오는 와중에 더 많은 사람을 재우겠다고 고층 호텔이 마구 들어서지 않는 것도 다행인 듯하다.
해는 지고 있어서 정상에서 보이는 반대편에는 이미 그림자가 생겨서 달려도 덥지 않아 보였다.
두 개의 벤치. 도시 방향으로 놓인 곳에는 이미 한 커플이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고, 반대편으로 놓인 벤치에, 반쯤 걸터앉아 아래를 한참 내려다본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학교를 선택하면서 썼던 자기소개서, 왜 이 전공을 하려고 했느냐에 대한 질문의 내 생각. 아름답지 못하고 통일성 없는 건물에 대한 것- 결국에는 지붕이나 이런 것에서 오는 것 같다고 했던 것 같은데, 여기가 내가 생각하는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라오스 정부나, 아니면 개개인이 사욕을 위해 개발을 진행하고, 더 튀려고 간판을 마구잡이로 달았더라면, 이미 여기도 망가졌을 것이다. 결국 건물을 가진 사람이나 거기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의 안목인데, 이러나저러나 이 정도로 있는 것이 정말 다행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높은 곳에서 보고 있자니, 더 어두워지기 전에 여기에서 본 곳을 빨리 달리고 와야겠다 싶어 얼른 내려갔다.
첫날 공항에서 들어오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연결도로이자 큰 중심이 되는 한 블록에 리조트호텔이 있고, 반대편에는 야시장이 시작하는 구간에 있는 야외식당 블록이 있어서인지, 한 참은 어둑하고 인적이 없다.
조금 더 달려가보니 멀리서 봤던 그 거리인 것 같다. 멀리서 봤을 때와는 사뭇 느낌이 다르다. 내가 있던 길과는 다르게 이 동네 사람들이 사는 거리였다. 마트가 있고 시장이 있고 먹을거리를 팔고 있다. 가끔 호텔이 있긴 하지만 어쩌다 하나 있는 수준이고 퇴근길을 재촉하는 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산 위에서 본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내려서 여행지로 툭툭을 타고 들어오는 외국인들이 한 차 보였다.
매연 때문인지 숨쉬기가 힘들다. 켁켁-
오늘은 10분씩 3번 달리는데, 좋은 도로, 안 되는 한 단이 높다 보니 걷기에는 오르락내리락하기 좋지만 연속된 달리기에는 여러모로 쉽지 않다. 매연을 마시며 여기저기 살피며 달린다. 통일된 모습이라 생각했던 곳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길과 이어져있다.
가로변이 있는 곳은 대부분 그럴싸한 무엇이었다. 새로 만든 슈퍼마켓이거나 시장이거나 호텔이거나 등등. 아마 시끄럽기도 하고 여러 이유 때문에 실제로 사는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 두 번째 블록에 살고 있겠지? 다음번에 또 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지만 다시 온다면 반대편 블록을 천천히 거닐어 보고 싶다. 참파꽃이 활짝 피는 계절에 온다면, 산 꼭대기 탑이 있는 그곳은 더 아름다울 것이고.
만약에 초반에 루앙프라방에 왔더라면 차 타고 한 시간 가야 하는 폭포도 기꺼이 보러 갔을까? 아니면 그렇게 왔더라도 크게 관심 가지지 않고 느긋하게 있었을까?
일회성 여행으로 왔더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갔을 텐데 기회는 언젠가 또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어서였을까, 모든 이가 다 간다고 갈 필요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