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일 Oct 07. 2023

야시장, 망충한 고양이 인형 네 개

어제 도착했을 때도 야시장 준비는 되고 있었다. 대충 짐을 풀고 한 바퀴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게 어떤 게 있나, 주요 판매종목은 무엇인지 사전탐사를 했다. 내가 쓸 것보다 남에게 줘야 하는 게 있다 보니 뭐가 좋을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어려웠다.

그 와중에 관심이 가는 가방도 있고 귀여운 소품도 있었다. 눈여겨본 것 중 하나가 얼핏 봤을 때 고양이인가? 싶은데 표정이나 모양새가 묘한 것이었다. 어제는 이런 애도 있구나 싶어서 지나갔다가, 오늘은 누굴 줘야겠다 싶어서 난전 앞에 쭈그려 앉아 한 놈 한놈을 본다.

천 색깔과 실 색깔, 비슷한 모양 같지만 모든 게 제각각이다. 표정도 비슷한 것 같지만 실을 어떻게 꿰었냐에 따라 표정이 미세하게 달라진다.

황홀한 표정을 가진 두 놈을 먼저 고른다. 이 표정이 제일 마음에 드는데, 이 표정인 애들은, 두 놈이고 한놈은 심지어 하얀색이라 얼룩도 있다. 다른 거 있어요?라고 물어볼 가치가 없다. 나와있는 애들이 대충 전부일 것이다. 어쨌든 황홀경 두 마리는 내 거다. 그리고 다 비슷한 표정인데 묘하게 다른 녀석들 중에 골라본다. 색깔이 상반된 두 놈을 골랐다. 가격을 물어보니 한 마리당 2만킵. 깎기도 뭣하고 비싸지도 않고 그런 가격이었다. 고민하다가 네 마리를 다 업어오기로 한다. 비닐봉지는 버뺀냥- 봉지 대신 가방을 가져와서 네 마리를 가방에 넣고, 지갑에서 십만 킵짜리를 꺼내 건너고 잔돈을 기다린다. 고맙다는 인사와 2만킵 잔돈을 거슬러 받는다.

내가 일어서자 그녀는 내가 받은 돈을 곧장 넣지 않고 난전에 깔아놓은 가방, 파우치 등등 자기가 가져온 소품들에 무언가 중얼거리며 한 번씩 물건에 닿게 했다. 아마 큰돈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내가 개시손님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돈만큼 꾸준히 돈이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돈이 붙으라고 빌었던 게 아닐까? 아닐까 가 아니라 아마 실제로 기운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망충한 고양이가 오늘은 얼마나 많은 손님을 불러들이고, 또 그만큼 많이 팔 수 있을까?

실존주의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이 망충한 고양이가 거기에 맞는 사례인 것 같기도 한다. 존재와 본질. 이 녀석들은 일단 ‘존재’하는 것이다. ‘본질’은 업어간 사람들이 만들어 줄 수도 있고 필요가 없어지면 팽개쳐버릴 수도 있겠지만, ‘존재’한 덕분에 재미 삼아 그걸 알아보고 사간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고, 그 덕분에 노점의 사장님은 조금이나마 돈을 벌었고.

그게 시작이 되어서 더 많은 고양이 인형을 팔 수 있겠다는 기대와 희망이 생기는 계기가 아닐까.

존재하지 않았다면 본질조차 만들 수 없는 순서인 듯.

오늘 저녁에 고양이 인형집이 문전성시, 난전성시인가? 아무튼 많이 팔아서, 내가 행운을 가져다주는 손님으로 고마운 존재가 되면 좋겠네.

망충 고양이 2종 세트를 보고 즐거워서 폭소하는 표정도 빨리 보고 싶구먼.


이전 20화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한 도시, 루앙프라방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