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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일 Oct 13. 2023

잠시만, 기다리세요



며칠 동안 잠자리가 바뀌었다고, 비행기를 좀 탔다고 피로가 쌓였다. 두 번의 달리기를 하고 별다른 조치 없이 쉬어서인지 삭신이 쑤신다.

팍세 공항에 도착하는데 집에 온 것만 같았다. 방에 가자마자 밥보다 마사지를 받을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다시 월요일, 전날 마사지를 충분히 받았지만 일어나서 몸을 숙이다 등 쪽 근육이 삐끗했다. 별 수 없이 그냥 출근. 그랬는데 아침에 한번 더 삐끗하고는 손 뻗고 타자 치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오늘의 할 일을 겨우 마치고 퇴근만 기다렸다.

그나마도 근육이 조금 풀렸지만, 그녀라면 근육을 풀어줄 수 있을 테니까.

오늘따라 과일주스집은 진작에 문을 닫으려고 정리를 하고 있었다. 두유 음료도 대충 바닥난 상태. 아보카도 주스를 먹으려고 했는데 별 수 없이 차가운 걸 받아 들고 나선다. 오늘따라 바람도 강하게 불고 쌀쌀해서 오랜만에 뜨거운 걸 먹어야지 했는데 경량패딩을 입고 다니는 이 사람들이 뜨거운 걸 다 털어 갔나 보다.

어찌어찌 마사지집 앞에 당도하니 평소보다 문 앞에 신발이 많다. 커튼도 다 쳐져 있는데 몇 명이 있는지 보이지 않지만 일단 들어가 본다.

유례없는 대성황. 다섯 명은 족히 받고 있는 듯했다. 다행히도, 그들이 마사지를 하며 내는 소리와, 순서를 봤을 때, 두 명은 거의 막바지로 가고 있었다. 늘 보던 선글라스 아저씨와 약손 그녀 말고도 마사지를 해주는 사람이 더 있다. 약손 그녀는 누워있는 사람의 팔을 주무르고 있었다. 그래서 대충 끝날 때쯤인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이 안기다려도 되는 안도감.

맨 끝의 아저씨는 앉아서 등 쪽을 더 주물러달라고 하고서 돈을 더 많이 건네고 가게를 떠난다.

빈 베드에 냉큼 올라가려고 하자, 막 손님을 보낸 아저씨와 그녀가 손짓으로 나를 저지한다. 시트를 손으로 톡톡 치는 걸 보니 이걸 새로 갈아 주라는 것 같았다.

아- 매번 손님이 나가고 바뀔 때마다 시트를 바꿀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그냥 남들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나는 모르니, 깨끗한 시트가 유지되는구나, 그리고 시트를 바꾸는 주기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도 없긴 했지만 매번 바꿀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게 안쪽 플라스틱 서랍은 새로 바꿀 시트를 고이 접어 보관하는 곳이었다.

그들은 조금 불편한 눈으로 베개와 시트를 더듬으며 베개천도 벗겨내서 새로 끼우고, 베드를 감싸던 시트도 벗겨내고 깨끗한 걸로 갈았다.

다 끝나고 나니 마지막에서 마사지를 해주던 아저씨가 자리를 비워주고, 나는 새로 바꾼 시트가 깔린 매트 위에 누었다.

편견이었다. 당연히 그들이 시각적으로 어려움이 있으니 청결하게 시트를 갈고 하는 것도 어쩌다 한번 하겠거니 하는 오해를 하고 있었다. 아니, 아무 생각은 없었지만, 이렇게 바로바로 바꿀 거라고 생각을 안 했으니까.

자신들의 가게를 찾는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나의 옹졸한 생각에 또 한 번 씁쓸하고.

어느 정도 색과 물체를 구분할 수 있으니 화사한 노란색의 시트는 구분하기도 좋고, 가게를 밝게 해주기도 하겠지.

약손 그녀도 손님을 보내고 손을 씻고 오겠다 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가 나에게 왔다. 쉴 틈 없이 일하는 그녀.

말이 통하는 손님과 웃으며 이야기하는 즐거운 모습이 참 좋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주어진 환경에서도 어떻게는 하고 있는 그들이 멋졌다.

앞이 잘 보이는 이 집 꼬맹이가 이런 건 깨달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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