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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일 Oct 22. 2023

삶의 의지가 꺾일 때는

하노이에서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라

베트남 여행 전 ‘그랩’이라는 앱을 설치하고 사용할 카드등록을 한 후 뭐든 앱 내에서 결재가 끝나도록 하라는 글을 봤다. 베트남은 특히 환율계산이 복잡하기도 하고 몇 년 전에도 기사가 10배의 돈을 얘기해서 헷갈릴 뻔했다가 다시 계산을 하고 제대로 지불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다른 건 몰라도 이 어플은 꼭 설치해서 가야지 하며 앱을 받았다.

어플을 설치하고 보니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배달음식은 물론 택시, 오토바이를 원하는 곳까지 사전에 신청해서 최종 금액을 알고 탈 수 있었다. 아침 일찍 호텔에서 나와 지도를 요리조리 보며 걸어온 거리는 꽤 멀었다. 정오까지 대략 3~4시간을 이동하고 유적지를 둘러보다 보니 지쳤다. 오전 기온이 대략 30도를 약간 넘는 초여름 날씨에다 햇살도 점점 따가워졌다.

방에 돌아가서 채비를 다시 하든, 쉬었다 가든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구도심에 있는 호텔과 이어지는 도로가 생각났다. 2차선 도로에서는 언제나 차량정체가 있었지.

택시를 불러볼까 하다가 택시 버튼 옆에 있는 오토바이에 흥미가 생겼다. 여기 사람들 절반 이상이 오토바이로 움직이는데 가까운 거리니 한번 타볼 만도 하겠다 싶어서 이번 여행의 첫 번째 오토바이를 호출했다.

현재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어플이 짚어 내고, 인근 기사 중 본인이 원하는 구간일 때 ‘승인’을 누르고 승객에게 찾아오는 방식이었다. 여느 배달앱과 같은 방법이었다. 조금 있으니 확정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나를 태우기 위해 오는 오토바이의 번호판, 기사의 얼굴이 아래에 뜨고, 그가 어디쯤 있는지를 보여줬다.

‘몇 분이면 당신이 요청한 그가 옵니다.’ 호기심 반, 정확히 여기를 맞게 오는지 의심 반으로 기다리다 보니 번호판의 그가 도착했다. 빨간색 헬멧, 어플과 같은 초록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는 헬맷을 내밀며 쓸 거냐고 해서 그에게서 받은 헬맷을 머리에 쓰고 끈을 조절한 후 오토바이 뒤에 올라탔다.

얼마 만에 타는 것인가.

며칠 전 어행 가이드는 하노이 인구가 천만명 정도라고 했다. 그만큼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과 오토바이는 여러 구간에서 심한 정체가 되는 걸 이동하면서 봤었다. 여기서부터 호텔에 가는 길도 2차선 도로에 늘 밀렸으니 택시보다는 오토바이가 낫겠다 싶어서 선택하기도 했다.

출발. 뒷자리에 타는 사람이 밟는 발걸이에 발을 얹고, 뒷좌석 엉덩이쯤에 있는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대각선으로 멘 보조가방이 옆구리에서 덜렁거렸다. 혹시나 소매치기당하면 어쩌지 하며 왼손을 빨리 떼서 옆으로 걸친 가방을 배로 가져간다.

오토바이에 오르고 나니 나뿐만 아니라 베트남 사람도, 외국인들도 초록색 그랩 유니폼을 입은 오토바이 기사 뒤에 올라탄 채 지나간다. 굉장히 편리하고 저렴한 운송수단이구나.

이 정도면 오토바이도 탈 만하구나, 생각을 하자마자 내 눈앞에 나란히 서서 느리게 움직이는 승용차 두 대가 보였다. 느긋하게 차 뒤에 섰다가 가겠지 싶은 찰나, 그는 나란히 서 있는 자동차 두 대 사이를 갑자기 비집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저기요? 라고 할 새도 없이 그는 능숙하게 승용차와 승용차 사이를 질러 그들을 제친다.

‘니 다리는 안에 있지만, 내 다리는 밖에 있다고!’

나도 모르게 편하게 구부리고 앉은 두 다리를 최대한 좌석 안쪽으로 오므린다. 심지어 처음에 탈 때 한쪽 엉덩이가 왼쪽으로 기우뚱한 채로 출발했는데 이 상태에서 고쳐 앉겠다고 움직이는 게 가능할지 감도 안 왔다.

이미 불균형상태. 정지 신호 20초를 발견하고 빠르게 중심을 잡으려고 움직여보지만, 그는 직진신호 3초 전 출발한다.

신호가 있는 이 도로는 왕복 6차선 광활한 도로. 앞에 탄 헬멧 앞에 수많은 오토바이들과 승용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 있다. 신호가 바뀌기 전 부르릉 소리와 함께 그들은 제각기 다른 속도로 출발했다. 뒤엉킨 오토바이 떼 사이로 내 상체가 자꾸만 뒤로 넘어간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이대로라면 뒤로 날아가서 인터넷 뉴스에 실릴지도 몰라.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쉼 없이 빽빽거리는 경적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호찌민 무덤과 레딘 동상이 있는 구역은 성역화구간인지 도로가 그렇게 트여 있다는 걸 오토바이 위에 오르니 보였다.

뻥 뚫린 도로를 그가 놓칠 리 없다. 내가 뒤에 앉아 있는 걸 신경을 쓰는지 안 쓰는지, 내 안위는 안중에 없는 듯하다. 이미 이들은 두발 바퀴 달린 탈 것과 태생부터 한 몸처럼 살아와서 이 정도는 어떤 고난도 아니었는지 군중 속으로 속도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달려간다.

어느 정도의 속도인지 눈을 뜰 수 없을 강도의 바람이 두 눈을 때리기 시작했다. 눈을 방해하는 프레임이 없어 도시 구경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그는 또 한 번 차와 차 사이를 지나간다. 오른쪽 차는 검은색 벤츠 S 어쩌고였다.

어쩌려고 이렇게 무리하게 지나가나? 물론 그는 태어나서부터 익숙하게 제치며 다니던 것이 일상이었을 텐데, 나는 아니라고… 혹시나 오른쪽 다리가 벤츠에 걸릴까 봐 몸을 한껏 더 움츠린다. 여기서는 차가 긁히면 처리를 어떻게 하려나?

온갖 차를 뚫으며, 우리 쪽으로 머리를 드리미는 오토바이를 제압하며, 그는 달리고 달렸다. 빠르게 달릴수록 얼굴을 때리는 바람에 시속 몇 킬로로 달리는지 궁금했지만 뒷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이상 볼 방법은 없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자동차 시속 50킬로 이하일 텐데 체감은 시속 100킬로로 느껴진다.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또 오른쪽으로 꺾을 때마다 오토바이 머리와 본체는 안쪽으로 기울었고, 그때마다 엉덩이 뒤 두 손은 자리에서 날아갈까 봐 한껏 더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안전히 호텔에 도착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털고 한쪽 발로 땅을 딛고 나서 감사의 인사와 헬맷을 건넨다. 호텔까지의 거리 단 1.6km. 1.6km 남짓한 이동거리 중에 오만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굴러 떨어지진 않겠지. 그랬다가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생각을 말자.

1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사는 것에 대한 여러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띄엄띄엄 살아온 나의 하루하루, 그리고 열심히 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서 골로 가는 건 아니잖아.

이제 그만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하노이에서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보면 된다.

10분이면 생각이 충분히 바뀔 테니까.


오토바이 뒷자리의 시야
빨간불일 때만 촬영할 수 있는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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