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도착한 후 두 번의 비행이 피곤했는지 배가 고픈 듯 고프지 않았다. 오후 다섯 시 반 정도. 비가 오는 듯 안 오는 듯 오락가락한 날씨라 돌아다니기도 애매했다. 이런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랩 어플에 식사 배달이 있는 게 생각났다. 도착지를 하이베이 호텔로 정하고 목록을 보니 대도시답게 맥도널드가 최상단에 있다. 하노이까지 와서 맥도널드를? 그러다 떡볶이를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해외에서 파는 한식은 어떨지 궁금해서 치즈떡볶이와 양념치킨을 주문했다. 인내의 시간 30분.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경로를 보는 재미가 있다. 몇 번의 진동 후에 오토바이가 호텔 주변 코너를 돌고 있었다. 후다닥 나가는 중에 음식을 가져온 그에게 전화가 왔고 호텔 밖에서 저녁을 받아 후다닥 올라갔다. 뜨거운 그릇. 하나씩 펼쳐 보니 꽤 그럴싸했다.
우선 떡볶이 국물을 한 입 맛보는데 딱 그 국물떡볶이의 감칠맛이 좋았다. 이번엔 양념치킨을 먹어보자. 한 입을 먹고 이상함을 느끼고, 다른 조각을 베어 물어보지만 닭 손질이 덜된 것인지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다시 떡볶이를 먹어보지만 떡은 덜 익었는지 딱딱한 것도 있고 신선도가 낮은 걸 썼는지 이상한 맛이 났다. 모짜렐라 치즈 역시 다른 뭔가와 오래 둔 듯한 묵은 냄새가 났다. 이걸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괜히 첫날 잘못된 선택으로 탈이 날까 봐 과감히 수저를 놓고 그대로 포장해서 방 밖에 곱게 놓는다.
아직은 오후 여섯 시 정도. 호텔에 오는 길을 보니 이곳은 외국인들이 대부분인 핫스폿이었다. 모든 가게가 본격적으로 손님맞이를 하는 기념품가게가 도로 양쪽에 늘어져있고 곳곳에 마사지샵, 관광 예약업체 등등 오히려 밝게 빛나는 이곳은 다른 곳 보다 훨씬 안전해 보였다.
먹을 걸 소화할 겸, 호안끼엠 호수 근처로 숙소를 잡은 만큼 프런트 직원에게 물어보고 길을 나선다.
정신없는 도로, 좁은 인도 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간다. 여기저기에서 한국말도 들린다. 기념품 가게마다 살짝만 봐도 가게 주인이 활짝 웃으며 반겨준다. 오늘은 날이 아니니 다음에 다시 올 가게 몇몇 곳을 눈여겨봐 둔다.
차선이 없는 광활한 로터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그 주변에 높게 서 있는 여러 개의 빌딩. 얼핏 봐도 여기가 호안끼엠 호수 같았다. 생각보다 길을 잃지 않고 잘 찾아갈 수 있겠다. 각종 카페와 식당의 틈바구니 속에 콩카페 간판이 보였다. 현지의 코코넛커피를 첫날에 먹어줘야지. 세장형 건물이다 보니 입구가 엄청 좁았고 계단은 반 정도 나선형이었다. 꺾이는 계단 폭이 내 발의 반 정도인 느낌이다.
호수 근처 유명 프랜차이즈 콩카페는 실내 자리가 만석이다. 테라스의 바 테이블이 하나 남아있어 호수를 바라보며 먹는데 눈앞에는 로터리를 정신없이 도는 오토바이, 그걸 뚫고 걸어가는 사람들, 그 속에서 엄청나게 울려대는 오토바이 경적소리가 다 섞여서 이런 정신 사나운 곳도 없다 싶은 찰나에 내 음료가 나왔다. 손님이 많았는지 1회용 컵에 나왔고, 몇 입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루종일 구름 낀 날씨. 하노이 오는 길은 비가 오다 멈추다를 반복하며 내내 여행이 가능할지 걱정되었다. 오락가락하던 덕분에 날씨는 선선했고 저녁은 걸어 다니기 좋았다.
인터넷으로 본 호안끼엠 호수는 2km 정도 둘레였던 것 같다. 호수 중앙의 섬에는 베트남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사원도 있고 조금 더 가면 탑도 있고 그냥 유원지는 아니었다.
컴컴한 밤하늘과 대비되는 상점과 유적지의 불빛이 호수 주변을 밝힌다. 느긋하게 거니는 관광객들 사이로 누가 달려온다. 복장을 제대로 갖춘 러너였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뒤에서부터 달려온 사람이 군중 사이로 사라진다. 호안끼엠 호수는 달리기 좋은 구간인가 보다. 그렇게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사람, 뒤에서부터 달려오는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선선한 평일 저녁에 많은 이들이 달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찰나, H라인 스커트에 붉은색 민소매 블라우스를 입고 크록스 같은 걸 신은 여자분이 달려간다. 어디 급해서 달려가시나? 생각을 하며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H라인 스커트의 그녀가 여전히 달리고 있다. 그녀는 내가 봤을 때도 달리고 있었고 그 후에도 달리고 있었다. 아마 나를 마주치기 전부터 계속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짐 싸기 전, 운동화는 오래 걸을 일정 때문에 챙겼다. 그리고 무릎보호대와 다른 운동복을 챙기려고 꺼내봤다가, 짐가방 하나에 6일 치 짐을 챙기면서 고민했다. 가져갔다가 괜히 부피만 차지하는 건 아닐지. 가서 내가 정말 달리기를 할지 미지수여서 짐챙기기를 고민했었다.
호수 주변을 달리던 그들이 나를 자극했다. 피곤한 오늘, 선선한 저녁, 하지만 내일은 하루종일 먼 길을 떠나, 하이라이트로 500여 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니 내일을 위해 내일 꼭 달리러 나와야지, 생각하며 호텔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