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심포니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의 밤이 깊어갔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라흐마니노프를 들었다. 음악의 길에 들어간 전문 연주가도 섞여있고 중고등학생들이나 대학에서 전공을 하는 젊음들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였다.
나는 초대권으로 합창석에서 연주를 들었다. 이른 시간부터 일산 아람누리 근처는 교통 체증으로 시달렸다. 마침 이문세 가수의 콘서트가 아람극장에서 공연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합창석은 무대 뒤쪽이었다. 연주자의 긴장된 뒷모습과 바쁘게 오가는 발걸음이 마음을 두드리는 공간이었다. 인터미션 시간에 나는 넓은 음악당의 무대를 가로와 세로로 가늠해 보았다. 거의 90여 명의 단원이 꽉 찬 무대는 다양한 악기의 모임만으로도 에너지가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청소년 연주자와 성인이지만 아마추어 연주자의 연주는 싱그러웠다. 라흐마니노프를 듣는데 마음이 점차 더워졌다. 코로나 시기에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라흐마니노프를 아침마다 듣던 기억이 났다. 모든 단원의 적절한 시간을 하나의 음악으로 모으는 지휘도 마음을 흔들었다. 지휘자의 감성 가득한 지휘를 따라 나는 나만의 이야기 속으로 잠시 빠져들었다.
나는 모든 악기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바이올린을 비롯한 현악기의 부지런한 꿀벌 같은 선율에 감동받았다. 음악의 멜로디를 이끄는 관악기의 호흡이야 말할 것이 없다.
모차르트를 듣다가 눈물이 났다. 삶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음악이 주는 위로 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올해 나의 계절은 비로소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갔다.
계절의 빛나는 순간들이 가을에 맺어졌다면, 겨울은 미련 없이 빛나던 열매를 떨구고 땅의 낮음으로 스미는 때다. 음악이 보듬어 주는 순간에 나는 땅에 묻어야 할 시간을 건져 올린 것 같았다.
마지막 곡은 베토벤이었다. 운명 교향곡의 빠바바밤이 울리면서 오랫동안 기다리던 타악기들과 트럼펫, 트롬본도 반짝이며 소리를 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멋진 연주회였다. 심장 안으로 선율을 흘려보내고 밤은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