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맛이란 정말 미묘한 힘이 있는 것 같다. 한입 먹어본 것뿐인데 한순간에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는 마법 같은 것이다. '커리피시헤드'라는 음식을 처음 먹어본 그 음식점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주변에는 빌딩이 세워지고 더 높아졌으며 길 건너에는 갯벌을 간척한 섬이 새롭게 생겨 있었다.
말레이시아 페낭섬의 거니드라이브의 77이라는 이름의 음식점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는데 기억 속의 집보다 너무 작아 보였다. 그 집이 아닌가도 잠깐 생각했지만, 기역자 모양의 전면부와 작은 마당에 놓인 탁자 두어 개까지 그대로여서 단박에 알아보았다. 예전에는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던 중국계 말레이 남자 주인이 있었다. 깜짝 놀랄 맛과 친절했던 그 주인이 여전히 계실리도 없는데 나는 두리번거리며 주인을 찾아보았다. 기대와 달리 아주머니가 메뉴판을 들고 나왔다.
그 당시 음식점의 주인은 당연히 아닌 아주머니는 좀 퉁명스러웠다. 페낭에서 거니 드라이브가 나름 관광지이지만 그 가게는 현지인들의 음식점이라 관광객인 나로서는 더욱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웃음기 없고 재미없는 표정의 주인장을 뒤로하고 인디언 셰프가 직접 가져온 음식은 예전의 그 황홀한 맛 그대로였다.
오뚜기카레에 길들여져 있었을 뿐인 내게는 커리피시헤드를 먹었을 때와 그 이후로 카레 맛이 나뉜다. 인도 고유의 짙은 카레에 커다란 생선 대가리를 넣고 코코넛 밀크를 첨가해서 졸여낸 커리피시헤드는 독특한 비주얼만큼 특별한 감칠맛이 났다. 곁들여서 먹는 삼발깡콩 야채볶음의 톡 쏘는 맛도 만만치 않게 색달랐다. 마치 된장으로 치자면 묵은 장으로 만든 된장 맛 같았다. 넓은 접시에 푸짐하게 올려진 길쭉하고 풀풀 날리는 흰밥은 윤기가 흐르는 기름진 우리의 쌀밥과는 완전히 다른 고소함이 넘쳤다.
그러나 역시 새로움이란 어쩌다 한 두 번이면 족한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 같다. 어느 신기한 맛의 음식이라도 한 두번일 때에야 즐거운 법이다. 강렬함도 쉼 없이 거듭되면 곧 지루해져서 평범하고 맹숭맹숭한 일상의 맛을 그리워하게 된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한두 번 그 맛을 즐기다가 곧 그저 평범한 김치찌개와 쪽파가 잔뜩 들어간 파전과 바지락으로 끓여 낸 애호박 고명의 칼국수를 그리워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떡볶이며 순대, 족발과 같은 음식에 빠르게 빠져들었다. 몇 시간을 들통에 푹 삶은 족발은 한 소끔 식어도 여전히 뜨겁다. 뜨거움을 참아가며 가지런하게 썰어준 족발을 집에 가져와 막 열어서 먹는 평범하고 쫄깃한 맛은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 속으로 스몄다.
아이였던 아이들도 곧 어른으로 자라 각자의 세상으로 넘어갔다. 어른이 된 아이들이 생일 선물로 지구 어디라도 여행을 보내주겠다는 기세에도 나는 쉽게 밀리는 나이가 되었다. 어디를 떠난다면 나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잘 알지만 현재와는 묘하게 아주 조금만 달라졌을 곳, 시시각각 추억을 건져 올리는 곳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이라면 여전히 내겐 페낭섬 한 군데뿐이다. 거니 드라이브의 음식점에서 카레피시헤드를 먹다가 이미 오래전에 스쳐 지나간 사람들과 서둘러 천국으로 떠난 이들과 한국에서 나를 기다릴 이들과 아직 추억이 쌓이지 못한 이들의 한꺼번에 느껴지는 신기한 맛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