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창과 함께 금반지를 맞췄다. 금값도 오르고 예전의 시세를 생각하면 도저히 그 돈에 금반지 한 개를 맞출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금반지를 처음 맞췄던 것은 고등학교 졸업 때였다. 학교에서 단체로 학교의 교표가 새겨진 금반지를 맞추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철없던 때였는데. 졸업반지는 너무나 예뻤다.
그 금반지를 끼고 있을 때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던 친구에게 "졸업 반지 이쁘게 나왔지."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 친구는 "응, 예쁘게 나왔어. 나는 마침 집에 두고 왔네!"라는 말을 했다.
나는 사실 반지라든가 목걸이와 같은 액세서리는 잘하지 않는 편이다. 조금 한다면 귀걸이 정도 하는데 그나마도 잘하지 않는다. 심지어 시계조차 만보기가 있다는 이유로 스마트워치를 사용하는 정도인데 몸에 뭘 부착하고 달고 이런 것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그때도 그랬다.
졸업식 날에 반지를 끼고 가려고 찾아보았으나. 내 졸업 반지 케이스 안에는 반지가 없었다. 나는 어디서 잃어버렸을지 가늠이 안 되어서 여기저기 찾아보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그리고 그 반지가 어디로 갔는지를 나는 곧 추측하게 되었다.
그 친구가 우리 집에 자주 온다는 말을 전해 들은 다른 친구가 뜬금없이 "조심해"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 학급에서는 자주 도난 사고가 있었으며 그 아이가 자주 의심되었었으며 심지어 범인임을 본인의 입으로 실토를 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우리 반에서는 반지를 신청 못 한 아이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다 반지를 했다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던 그 친구가 반지를 신청하지 못했으며 더욱 신기한 것은 우리 집에 다녀간 그 이후에 그 아이가 우리 집에 발길이 끊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생각이 잘못이기를 바랐다. 그 친구가 가져간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성 생각 말이다. 매우 흉흉한 품행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고,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귀를 막아버리고 싶었다.
나는 내 반지가 틀림없을 것 같은 금반지가 그 친구의 손가락에 끼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그 아이에게 물었다. "그 반지 끼고 다니면 행복하니?" 그 아이는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아버지가 목사님이라서 어렸을 때부터 찬송가를 불러서인지 노래를 참 잘했고, 목소리도 너무 예뻤으며, 등하교 때는 갑자기 나타나 내게 손깍지를 낄 정도로 붙임성이 좋았던 아이였지만 내 인생에서 죽음처럼 사라져 버렸다.
대학을 졸업할 때 우리 과에서는 아무도 반지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반지 하나 쯤 하고 싶었는데 그 당시 우리 학과에서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오직 두 명뿐이었다. 물론 나도 취업에 성공한 축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직장에 원서조차 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입사 원서를 쓰려던 그 회사는 신체 조건을 맞춰야만 하는 항공사였다. 나는 겨우 그 키에 도달할 정도의 신장이어서 입사 원서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 원서를 본 엄마의 반대에 나는 아예 지원하지 못했다. 정말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반대였다. 비행기 안내양을 하려고 원서를 쓰냐는 고지식한 옛사람의 완강한 반대에 기세 좋던 그 젊은 날의 패기는 쉽게 부러졌다. 나 또한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키가 좀 큰 여자아이들이 선망하는 그 직업의 항공사에 한 번 지원해 보려던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곧 어느 회사의 비서실에 아르바이트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오래지 않아 강남에 있는 어느 학원의 강사가 되었다. 교사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에 교사와 가장 비슷한 강사로 대학 졸업 후 일 년을 보냈다.
내게 친구들과 함께 만드는 졸업 반지는 배신감, 사회 진입에의 절망감 같은 것들과 얽혀 있다. 이제 오랜 세월이 흘러 무엇을 기념하는 나이도 훌쩍 지났지만 대학 친구 Y와 함께 나이 듦의 기념 반지를 맞추게 된 것이다. 물론 결혼반지도 있고 어떤 기념일마다 남편이 만들어 준 예쁜 반지도 있지만 내가 내 손으로 나의 어떠한 끝맺음과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는 반지를 만들어 간직하게 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대학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사귄 내 절친은 같은 학과 같은 동아리 친구인 Y다. Y는 오래 강의하던 대학에서 올해 안식년을 맞았다. 사실 이 기념 반지는 다른 모임에서 먼저 추진한 이벤트인데 그들의 손에서 반짝이는 단순한 디자인의 금반지는 너무나 멋스럽고 예뻤다. 나와 Y의 시선은 순간 얽혔고, 우리도 같이 하자라는 합의점에 금방 도달했다.
Y와 나는 종로의 귀금속 상가 안에 있는 전문점에 앉아서 손가락을 재고 이런저런 디자인을 보았지만 결국 처음 보았던 단순한 그 디자인의 금반지로 결정했다. 드디어 내일 나는 반지를 찾으러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하게 된다. 설렌다. 나를 위한 선물이 왜 필요한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단조로운 인생에 오직 나만을 위해서 내가 살아본 일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던가 싶다. 이제 내 인생의 후반부는 너무 아끼지 말고 나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다짐 같은 것도 해본다. 액세서리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나는 이 반지도 매일 끼고 다닐 것 같지는 않지만, 친구를 만나는 날이나 어느 마음이 좀 허전해지는 날에는 이 반지를 끼고 내가 좋아하는 아라비카 원두의 콜롬비아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쓸 때 껴보면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