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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Jun 19. 2022

상처는 어른들이, 감동은 아이들이

평생 기억할 감사한 마음

나는 학부모님께 폭언과 명예훼손, 위협에 해당하는 교권침해를 당했다.


안타깝게도 요즘 유치원에서 비일비재한 일이고,

평소에도 윗분에 의한 교권침해는 일상이라 나름 단련되어서 그러려니, 내가 이번에 운이 안 좋았겠거니 하고 덤덤하려 했지만

안 그래도 신설 개원 유치원에서 몸과 마음을 갈아 넣어 근무하며, 그나마 아이들 보고 버텨왔는데


나름 정성을 기울였던 아이의 학부모님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듣게 되니,

그 충격은 지금까지 쌓아온 마음의 담장이 모두 무너지는 듯했다.



그 시기 우리 유치원에서는,

코로나로 실시하기 어려운 공개수업을 대신할 1달여간의 놀이 소개 영상을 만들고 있었다.


무려 한 달의 놀이들을 영상으로,

심지어 자막 하나하나에 교육적 의미를 담아내어 만드려니 한 달 동안 어마어마하게 사진과 동영상들을 찍어대야 했고,

영상을  찍은 이후의 편집 작업 또한 만만치 않았다.

총 한 달 반의 시간을 영상 만들기에만 쏟은 것이다.


당연히 이 정신없는 시기에

충격적인 나의 피해 사건엔 교권침해 사후조치 담당자인 원장,원감님 조차 전혀 관심이 없어 마땅히 관리자로서 실시해야   어떤 사후조치도 해주시지 않았다.


나는 우리 유치원의 교권보호위원회 교원 위원이었고 관련 규정을  많이 습득한 상태였는데,

이 정도 사안에서는 교권침해 특별휴가로 교권침해 현장(유치원)과 잠시 분리시켜주는 조치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게 어렵다면 병가라도 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계속 수정되는 영상 편집, 심지어 감동적인 영상편지를 추가하라는 지시로 촬영을 더 해서 편집해야 했었고,

 알면서도 특별휴가도, 병가도, 요구할  없었다.

일단 내가 출근해야 이 일들을 할 수 있으니까!


심지어 시간이 지난 후에 관리자께 이런 요청을 드려야 마땅함에도 일이 너무 급해 요청하지 못했다고 하니, 본인들 시절에는(라떼엔) 교권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본인들은 이러한 조치를 모르는데 어떻게 해 줄 수 있었겠냐며 되물으셨다.


마음의 상처 위에 소금까지 뿌려진 셈이다.

정말 아팠다.


그렇게 초인적인 힘을 내어 영상을 만들어내고 송출한 다음 날,


우리 반의 한 친구가 등원을 하자마자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쿵쾅쿵쾅 달려와 와락 안기는 것이다!!!


평소에 잘 안기지 않는 친구라서, '오늘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들면서도,


아이의 포옹 하나에 위로받는 느낌,

마치 "선생님 무너지지 말아요. 우리가 있잖아요"

하는 느낌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걸 겨우 참아내었다.


알고 보니 아이의 어머님께서 놀이 소개 영상을 보시고는, 이걸 만드느라 밤까지 고생했을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집에서 눈물을 흘리셨고,

아이가 대신 어머니의 마음을 전하려 나에게 달려와 안긴 것이다.


관리자도, 교육청도,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은 그 교권침해 사건은 교사로서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어쩌면 언제 나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처였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만,


그럼에도 그 깊은 상처에 약을 발라주시는 분은

아이들과 나를 지지해주는 학부모님이셨다.


그 아이들과 부모님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를 잊을지라도,


나는 우리 반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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