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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Jun 11. 2022

우울증을 안고 교실에 들어가다

교사인데, 이래도 되는 걸까?

처음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녀오고,

당장 약물치료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사의 따뜻하지만 강경한 메시지에 따라 약을 처방받았다.


이걸 정말 먹어야 하는 걸까,

먹어도 되는 걸까,

내가 이런 약을 먹어야 할 정도의 정신질환자일까,

의심이 많은 나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일단 유치원에 가야 하니까,

내가 선생님이니까 용기 내어 알약을 삼켰다.

그리고 바로 마취총에 맞아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병원을 찾아가기 전까지, 나는 극심한 수면장애로 거의 못 자는 수준의 고통을 겪었는데

약 먹고 쓰러지듯 잠들어보고 일어나니,

수면 지속 시간은 아주 길지는 않았지만 신기하고 나름 만족스러웠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문을 찍고 출근하고, 옷을 정리하고, 교무실 내 자리에 앉아 컴퓨터와

메신저를 켜고, 가족보다 많이 붙어있는 소중한 동료들과 늘 그랬듯 피곤한 아침 인사를 주고받았다.


8시 50분, 이제 교실에 올라가야 할 시간

바구니에 수업 자료를 정리해 담고 (그날만은 수업 준비가 미흡하면 우울이 교실에서 솟아오를 것 같아 무려 새벽까지 수업자료를 제작했다)

이제 교실로 올라가려는데,


엉덩이가 떨어지지 않았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고 지금까지 잘 버텨왔으면서

'정신질환자'라는 진단이 내려졌다는 사실 만으로

두려움과 불안이 나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내 불안함을 하늘반 선생님이 눈치채었는지, 천천히 와도 된다고 이야기해주고 우리 반 아이들까지 챙겨 올라가 주셨다.


몇 분간 마음을 가다듬은 뒤 교실에 올라가는데 그 발걸음과 기분의 무게가 평소와 분명 달랐다.

어제와 다름없는 아픈 나인데 우울증 진단이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심지어 아직 아무도 모르고 나만 알지만 '내가 교실에 들어가서 교사를 해도 되는 건가?'라는 죄책감과 괜스러운 의문에 사로잡혔다.


저지르면 안 될 행동을 하는 것 같았다.

감히 '우울증 환자'가 유치원 교사를 하다니..!

그날의 교육과정 시간 4시간 30분은 시곗바늘이

고장 난 것처럼 느리고 고통스럽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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