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모르겠어요
우울증 진단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체화 증상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게
당장 진단서 써 줄 테니 병가라도 써야 한다며, 일상
생활도 힘겨운 상태로 어떻게 유치원 일을 하냐며,
왜 병가를 안 쓰는 거예요?
라고 정말 궁금한 표정으로 물어보셨다.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아 나도 스스로에게
"너 왜 버티는 거니?"라고 물어보았다.
뭔가 복잡해서 떠오르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께 "어... 저도 잘 모르겠는데,
지금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일단 병가를 쓰시는 걸 권해드리고요, 아마 지금
상태면 유치원에서 숨만 쉬는 것도 많이 힘드실
겁니다. 일단 근무량을 버텨내야 하니 약물치료는
아직 약하게 하는 걸로 할게요. 약 적응하는 것도
지금 환자분께는 큰 부담이 되겠네요."
그렇게 나는 본격적인 약물치료도 시작하지 못한 채 '버티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용량'의 약만 먹고
이 버거운 유치원 근무를 학기말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몸과 정신이 이 정도로 망가졌는데 왜 병가를 시도하지 못하는 걸까?
나도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아 매일 밤을 고민했다.
그렇게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고,
몇 번의 쓰러질 뻔한 큰 위기가 있었고,
누가 봐도 병가를 쓰는 게 맞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겨울방학 직전에는 의사 선생님 말처럼
유치원에 존재하는 것조차 힘이 들어 일할 거리를
챙겨 조퇴해버린 후 집에서 일을 했고,
운영계획서를 작성해달라는 부장님께 멍한 눈빛과
말투로 '급한 일이 아니니 방학에 집에서 해서 드릴
게요.'라고 뻔뻔하게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절대 내 할 일을 미루지 않는 내가
뻔뻔하게 일을 미루겠다고 하는 걸 보고,
머릿속이 쿵 울렸다. 나 정말 제정신 아니구나.
교실에서도 엉망진창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제자들 앞이라고 교무실에서보다는 훨씬
상태가 괜찮았고 표정관리를 잘하고 있었지만,
24시간 내내 구역감과 숨 막힘을 기본으로 하고,
때때로 찾아오는 어지럼증과 오한, 랜덤으로 찾아
오는 이명 근육 떨림 두통 등은 아무리 아이들
앞이라고 해도 완전히 눌러버릴 순 없었다.
아이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정상 상태에 비해 버거우니 나는 새 교구를 왕창 사서 아이들의
관심을 나 대신 놀잇감에게로 돌리고,
'레고 릴레이'라는 명목 하에 오늘의 레고를
완성하면 내일은 더 어려운 새 레고를 내어주는
방식으로 학급운영을 이어나갔다.
아이들은 당연히 즐거워하고 유치원 오는 것을
아주 좋아했지만 나에게는 교사로서 상호작용도
충분히 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이 나날이 커져갔다.
그래. 이건 순전히 내 욕심이야.
아이들에게도 아픈 나보단 낯설더라도 건강한 선생님이 나을 것 같았고, 동료 교사들도 옆에서 아픈
티가 팍팍 나니 신경 쓰였을 거고, 무엇보다 내 몸이 점점 아파가는데, 이건 욕심이었다.
그런데 나는 2021학년도의 바다반을 내 손으로
끝낸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토록 원하던 7세였고, 교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지옥이었지만 바다반에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직업만족도 최상이었다.
아이들과의 합도 정말 좋았다. 우리는 친구 같으면
서도, 사제관계가 확실한 사이였다.
내 교사 인생이 여기서 끝나더라도 바다반이 마지막
이라면 미련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교권침해 한번 치명적으로 당했다고 해서
우울증이 심각하게 찾아왔다고 해서
포기하고 싶지 않을 만큼 바다반에서의 한 해가
좋았다. 마지막까지 이 교실의 교사는 나여야 했다.
그래서 나는 욕심을 내 버렸다. 욕심내기로 했다.
이번만은 욕심내고 싶었다.
그래서 병가를 사용하지 않고 육체와 정신을 갈아
넣어 버텼고, 그런 이유에서인지 아닌지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차도가 없지만
나는 억지로 버틴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욕심을 낸 걸 후회하지 않는다.
나도 한 번쯤은 욕심이란 걸 내 보고 싶었고,
바보 같은 선택이고 배려 없는 행동이지만
내 마음대로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교직생활이 여기서 끝난다 하더라도
나의 마지막이 바다반이었으니,
아름답게 무사히 잘 마무리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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