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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Jun 27. 2022

고기반찬 많이 주세요!

부탁의 방법과 태도

우리 반 아이들은 대식가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고기반찬과 면

특히 고기 킬러들이 몇 명 있었는데

고기반찬이 나오는 날엔 그 친구들의 식사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이 고기 킬러 3인방의 아침 루틴은

벽에 붙어있는 식단표를 확인하는 일이다.

오늘은 몇 월 몇일인지 확인한 뒤,

식단표 안에서 깨알 같은 글자를 찾아 척척 읽어내며

오늘의 식단을 가장 먼저 파악하고는 했다.


특히 킬러들의 마음에 드는 반찬이 나오는 날은

아침부터 축제 분위기.


친구들이 등원할 때마다 인사보다 먼저ㅎㅎㅎ

"오늘 돈가스 나오는 날이다!!!"를 외쳐댔다.


그러던 어느 날,

식단표를 보고 온 킬러 3인방이 나에게 물었다.

"멘치가스가 뭐예요?"

나는 고기를 작게 다져서 튀긴 음식인데 돈가스랑 비슷하지만 훨씬 부드럽다.

아마도 너희가 좋아할 만한 음식이라고 말해주었다.


처음 접해보는 음식이라 낯설었는지

자신들의 미래를 몰랐던(!) 킬러 3인방은 그날만은 축제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 지. 만.

점심시간이 되어 멘치가스를 한입 맛본 그들의 눈빛은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반짝였다.


역시나 그들의 입맛에 딱이었던 것이다.


그날 멘치가스를 남겨온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고, (심지어 입이 짧거나 튀긴 음식을 싫어하는 친구도!)

고기 킬러 3인방은 역시나 반찬 리필을 해가서 더 먹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애초에 양이 아주 많이 주어진 건 아니어서 킬러들이 원하는 만큼 줄 수 없었다.


다른 반에 전화로 수소문을 했지만

메인 반찬이 남을 리는 없었고,

조리실에 전화해 여쭤보았지만 남은 게 없다는 대답을 전달받았다.



다 먹은 후 고기 킬러들은 굉장히 속상해했다.

이 아이들을 매일 보는 나도 '얘네가 오늘 왜 이러지?'싶을 정도로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고기 킬러들에게

"오늘따라 아주 속상해 보이는데 혹시 멘치가스를 더 못 먹어서 그런 거니...?"라고 물어보았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네.... 아 진짜 맛있었는데.....(아련)"대답했다.


너무 귀여워서 크게 웃어버릴 뻔했지만 꾹 참고,

아이들에게

"얘들아 오늘은 이미 남은 멘치가스가 없어서 선생님이 더 구해주실 수 없네."

"하지만 다음번에는 멘치가스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는데,
너희 해 볼래?"라고 물으니

적극적으로 무엇이든 하겠다고 대답했다ㅎㅎ

"조리사님께 너희들이 멘치가스를 맛있게 먹어서 더 많이 먹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알려드리면 좋을 것 같아.
어떤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보고 오면 도와줄게"

이내 아이들이 다가와서는 조리사님께 편지를 쓰겠다고 했다.

고기 킬러 3인방은 옹기종기 모여 열심히 글을 적었다.


첫 번째로 써온 글은

"조리사님 맨치 가스 왜 이렇게 조금밖에 없어요? 너무 조금이에요 많이 필요해요 많이 주세요"

마치 민원글 같은 내용이었다.


'오늘 우리 장꾸들, 부탁하는 태도를 배워야겠구나'

라고 생각한 나는

"너희들 혹시 이 편지 쓸 때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니?" 하니

아이들은 "멘치가스 못 먹어서 화나서 많이 달라고 했어요"라고 대답했다


역시나. 민원글이 확실했다.

아이들에게 천천히 타이르며,

"선생님이 읽어 봐도 이 편지엔 너희들의 화난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

"그런데 조리사님이 이 편지를 받으신다면 어떤 기분이실까? 기분이 좋으실까? 다음번에는 멘치가스를 더 많이 주고 싶은 마음이 드실까?" 하고 물으니

장꾸들은 한참 생각을 하더니
조리사님도 더 주기 싫을 것 같아요

내가 가르치고자 하는 바를 다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자신들의 부탁하는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건 이해하는 듯했다.

이런 걸 가르치는 맛에 7살 담임을 한다:)


"그럼 조리사님이 이 편지를 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다음에는 멘치가스 더 많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다시 써 올래?"라고 하니 군말 없이

완벽하게 써왔다. 평소 하트라고는 그리는 일 없는 아이들인데 무려 하트를 그려 색칠까지 해 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희들 멘치가스에 진심이구나.....


다음날, 영양사님의 따뜻한 답장이 돌아왔다.

아이들의 부탁이 성공한 것이다!!

고기 킬러 3인방은 기뻐하며 "저희가 편지를 엄청 감동으로 썼나 봐요"하며 기세 등등했다.


부탁을 할 때는
부탁받는 사람이 기분 좋게,
부탁을 들어주고 싶게
친절한 태도로 말해야 한다


아이들은 오늘도 유치원에 와서 또 하나의 인생 꿀팁을 배워 갔다.


그리고 아이들은 지나가다 조리사님을 볼 때마다 외쳤다

"어제 돈가스 맛있었어요"

"저번에 우동도 엄청 맛있었어요"



조리사님은 우리 반을 "많이 먹고 예쁘게 말하는 기특한 반"으로 여겨 항상 남는 메인 반찬이 있으면

가장 먼저 우리 반을 방문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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