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아이들은 우는 것도 눈치를 본다.
우리 유치원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비좁은 놀이터 하나와, 비좁은 강당 하나뿐!
유아를 위해 설립되는 단설유치원치고는 시설이 굉장히 열악하다.
그나마도 놀이터는 조합놀이대가 큰 부분을 차지해 마음껏 뛰기엔 어려움이 있어서
우리 반 친구들은 강당 놀이를 훨씬 좋아했다.
강당 놀이를 할 수 있는 기회는 고작 일주일에 두 번뿐이었지만....!
그날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강당 놀이 날이었다.
나는 주로 공간이 필요한 신체활동 수업은 교구장을 다 벽으로 밀어버린 후 교실에서만 하고,
강당 놀이를 할 때는 스트레칭만 함께 하고, 자유놀이를 하도록 지도한다.
아이들은 '마음껏', '마음대로', '교실보다 넓은 공간에서' 놀 수 있는 강당 놀이를 아주 사랑했다!
평소처럼 강당 놀이를 위해 강당으로 내려왔는데,
어라? 강당 문이 닫혀있었다.
굉장히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고, 강당 안에서는 아이들의 신난 비명소리가 들렸다.
당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유치원에서 강박 및 불안증세를 보이던 나는 굉장히 불안해졌다.
아이들이 다칠 까 봐 주변의 모든 것을 신경 쓰고 조심하며 살았던 시절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강당 문을 열었는데...
세상에....
앞 반 친구들과 옆반 친구들이 어둠 속에서 야광팔찌를 흔들며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분명 우리 반 시간인데,
시간표를 잊고 계속 놀이하고 있던 것이다.
우리 반이 온 것을 확인한 옆반 선생님은 굉장히 미안해하시며 서둘러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돌아가셨지만, 이 광란의 파티의 주인이었던 것 같은 앞반 아이들은 올라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앞반 선생님은 나에겐 까마득한 선배 교사이시고, 앞반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한껏 흥에 취해 있는데, 나는 차마 앞반 선생님께 "저희 반 시간이니 시간표에 맞게 비워주세요"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우리 반 아이들도 친구들이 어둠 속에서 야광팔찌를 흔들며 뛰어다니는 걸 보고 몹시 흥분한 모습이었다.
불안하고 초조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말던, 여기 있다간 누군가는 반드시 다칠 것 같은 예감.
난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교사로서 아이들과 강당에 가기로 한 약속을 어길 수도 없고, 차마 그 위험한 놀이를 같이 할 자신은 없었다. 그때 앞반 선생님은 내 강박이나 불안 상태를 모르셨기에, 친절하게 우리 반 친구들에게도 야광팔찌를 채워주기 시작하셨다.
그렇다.
위험해 보이는 광란의 놀이에 함께하게 된 것이다.
앞반 선생님은 불을 끄셨고,
어둠 속에서 야광팔찌와 미러볼 불빛이 움직이며 우리 아이들은 미친 듯이 날아다니고 있었고,
그때 내 멘탈도 같이 날아갔다.
얘들아 어두워도,
주위를 잘 살피고 뛰어야 해!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었고 다칠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미어캣처럼 살피며 두 손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적어도 내 심리 상태와, 우리 반의 평소 규칙에 적용하면 아주 위험한 놀이었던 건 확실하다.
당장 이 놀이를 멈추고 싶었던 그 순간,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 앞반 아이의 턱과 우리 반 아이의 이마가 부딪힌 것이다. 우리 아이의 이마는 멍이 들 것 같았고, 다른 아이의 턱은 괜찮은 것 같았다.
다행히 항상 메고 다니던 토끼 가방에 멍 연고가 있어 바로 발라주었고, 괜찮다는 아이에게 어지럽거나 머리가 아프면 꼭 말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둠 속 불빛들과, 아이들의 비명소리와, 누가 어디서 뛰는 건지도 모른 채 초조해하며 바라만 보아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싫었다.
아까 선생님께 정중히 시간표 지켜달라고 말을 할걸.
난 아무리 즐거운 놀이여도 위험해서 결국 다치게 되면 그건 놀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어.
이 와중에 또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듣고도 알았다.
우리 반 아이라는 걸, 이 아이는 평소에 잘 울지 않는 아이라는 걸, 운다는 건 꽤 다쳤을 거란 걸.....
황급히 아이를 데리고 뛰쳐나왔다.
아이의 코와 입에서는 새빨간 피가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난 놀란 우리 아이를 지켜야 했다.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쏟아지는 피를 물로 닦고,
코를 꾹 눌러 지혈했다. 코를 지혈하고 있는데도 입안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놀라서 이를 모두 흔들어보니, 다행히 이는 다치지 않았고 앞니에 아랫입술이 찢겨 피가 입 안을 가득 채운 것이었다.
아이에게 양치하고 헹굴 때처럼 해보라고 하고 피를 씻어내니 다행히 입술 쪽 상처가 크지 않아 병원에 가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며 그제야 아이의 표정을 보았다.
겁에 질린 표정, 한껏 기가 죽은 느낌.
속으로 '내가 놀란걸 너무 티를 냈나? 아이가 나에게 혼날까 봐 눈치를 보는 걸까? 어둠 속에서 부딪혀 마스크 안으로 피가 흐르는 경험을 한 아이는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까, 눈물이 그렁그렁한 게 울고 싶은 걸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그제야 아이의 마음을 챙기기 시작했다
"코피는 코피 솜을 하고 있으면 이따가 다시 봐줄게. 선생님이 코를 꽉 눌렀는데도 아프지 않은 걸 보니 다행히 코피만 나고 코뼈가 다친 것 같지는 않는구나"
많이 놀랐지? 울고 싶으면 울어!!
이럴 땐 눈물이 나면 울어도 돼!!
사나이도 아플 땐 우는 거야 마음껏 울어!!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아이를 안아주고 나도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았다.
한참을 그 큰 체구의 아이가, 가장 작은 선생님인
나에게 안겨 울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주고는 바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앞반 선생님께 야광팔찌를 돌려드리고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라고 지도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로 올라갈 채비를 했다.
앞반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가져가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 팔찌를 굳이 돌려드렸다.
나는 그날 아픈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아프고 약한 만큼,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는 아무리 아이들이 좋아한다 하더라도, 교사로서의 내 소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
내가 아이들을 지켜줄 자신이 없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즐거운 놀이라도 함께하면 안 된다는 걸,
아이는 다행히 펑펑 울고 난 뒤엔 다시 평소처럼 씩씩하게 지냈다.
점심시간에 입술 상처에 음식이 닿아 아플까 걱정했지만, 평소처럼 맛있고 복스럽게 두 그릇을 해치웠다.
어머니께 하원길에 아이의 입술을 보여드리고 상황을 설명드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어머님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 **이가 그때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눈물이 났는데, 선생님이 사나이는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해서 많이 울었더니 괜찮다고 집에 와서 이야기했어요.
선생님께서 평소에 친구들이 다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아서 혼날까 봐 무서웠는데,
오히려 선생님이 화를 안 내고 마음껏 울라고 해서 울었더니 금방 괜찮아졌다고 하네요!
정신질환인 우울증을 안고 나약한 몸으로 교사로서 근무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나에겐,
절대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찬사였다.
우리 바다반 졸업하는 그날까지
잘 지켜 주어야지
나는 선생님이니까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단단히 잡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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