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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Jul 28. 2022

사나이는 마음껏 울어도 돼!

남자아이들은 우는 것도 눈치를 본다.

우리 유치원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비좁은 놀이터 하나와, 비좁은 강당 하나뿐!

유아를 위해 설립되는 단설유치원치고는 시설이 굉장히 열악하다.


그나마도 놀이터는 조합놀이대가 큰 부분을 차지해 마음껏 뛰기엔 어려움이 있어서

우리 반 친구들은 강당 놀이를 훨씬 좋아했다.

강당 놀이를 할 수 있는 기회는 고작 일주일에 두 번뿐이었지만....!




그날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강당 놀이 날이었다.

나는 주로 공간이 필요한 신체활동 수업은 교구장을 다 벽으로 밀어버린 후 교실에서만 하고,

강당 놀이를 할 때는 스트레칭만 함께 하고, 자유놀이를 하도록 지도한다.


아이들은 '마음껏', '마음대로', '교실보다 넓은 공간에서' 놀 수 있는 강당 놀이를 아주 사랑했다!


평소처럼 강당 놀이를 위해 강당으로 내려왔는데,

어라? 강당 문이 닫혀있었다.

굉장히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고, 강당 안에서는 아이들의 신난 비명소리가 들렸다.

당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유치원에서 강박 및 불안증세를 보이던 나는 굉장히 불안해졌다.

아이들이 다칠 까 봐 주변의 모든 것을 신경 쓰고 조심하며 살았던 시절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강당 문을 열었는데...

세상에....

앞 반 친구들과 옆반 친구들이 어둠 속에서 야광팔찌를 흔들며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분명 우리 반 시간인데,

시간표를 잊고 계속 놀이하고 있던 것이다.


우리 반이 온 것을 확인한 옆반 선생님은 굉장히 미안해하시며 서둘러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돌아가셨지만, 이 광란의 파티의 주인이었던 것 같은 앞반 아이들은 올라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앞반 선생님은 나에겐 까마득한 선배 교사이시고, 앞반 아이들이 즐거워하며 한껏 흥에 취해 있는데, 나는 차마 앞반 선생님께 "저희 반 시간이니 시간표에 맞게 비워주세요"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우리 반 아이들도 친구들이 어둠 속에서 야광팔찌를 흔들며 뛰어다니는 걸 보고 몹시 흥분한 모습이었다.


불안하고 초조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던 말던, 여기 있다간 누군가는 반드시 다칠 것 같은 예감.

난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교사로서 아이들과 강당에 가기로 한 약속을 어길 수도 없고, 차마 그 위험한 놀이를 같이 할 자신은 없었다. 그때 앞반 선생님은 내 강박이나 불안 상태를 모르셨기에, 친절하게 우리 반 친구들에게도 야광팔찌를 채워주기 시작하셨다.


그렇다.

위험해 보이는 광란의 놀이에 함께하게 된 것이다.


앞반 선생님은 불을 끄셨고,

어둠 속에서 야광팔찌와 미러볼 불빛이 움직이며 우리 아이들은 미친 듯이 날아다니고 있었고,

그때 내 멘탈도 같이 날아갔다.

얘들아 어두워도,
주위를 잘 살피고 뛰어야 해!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었고 다칠까 조마조마한 마음에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미어캣처럼 살피며 두 손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내 손은 떨리고 있었다.

적어도 내 심리 상태와, 우리 반의 평소 규칙에 적용하면 아주 위험한 놀이었던 건 확실하다.


당장 이 놀이를 멈추고 싶었던 그 순간,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 앞반 아이의 턱과 우리 반 아이의 이마가 부딪힌 것이다. 우리 아이의 이마는 멍이 들 것 같았고, 다른 아이의 턱은 괜찮은 것 같았다.

다행히 항상 메고 다니던 토끼 가방에 멍 연고가 있어 바로 발라주었고, 괜찮다는 아이에게 어지럽거나 머리가 아프면 꼭 말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둠 속 불빛들과, 아이들의 비명소리와, 누가 어디서 뛰는 건지도 모른 채 초조해하며 바라만 보아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싫었다.

아까 선생님께 정중히 시간표 지켜달라고 말을 할걸.
난 아무리 즐거운 놀이여도 위험해서 결국 다치게 되면 그건 놀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어.


이 와중에 또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듣고도 알았다.

우리 반 아이라는 걸, 이 아이는 평소에 잘 울지 않는 아이라는 걸, 운다는 건 꽤 다쳤을 거란 걸.....


황급히 아이를 데리고 뛰쳐나왔다.

아이의 코와 입에서는 새빨간 피가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난 놀란 우리 아이를 지켜야 했다.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쏟아지는 피를 물로 닦고,

코를 꾹 눌러 지혈했다. 코를 지혈하고 있는데도 입안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놀라서 이를 모두 흔들어보니, 다행히 이는 다치지 않았고 앞니에 아랫입술이 찢겨 피가 입 안을 가득 채운 것이었다.


아이에게 양치하고 헹굴 때처럼 해보라고 하고 피를 씻어내니 다행히 입술 쪽 상처가 크지 않아 병원에 가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며 그제야 아이의 표정을 보았다.

겁에 질린 표정, 한껏 기가 죽은 느낌.


속으로 '내가 놀란걸 너무 티를 냈나? 아이가 나에게 혼날까 봐 눈치를 보는 걸까? 어둠 속에서 부딪혀 마스크 안으로 피가 흐르는 경험을 한 아이는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까, 눈물이 그렁그렁한 게 울고 싶은 걸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그제야 아이의 마음을 챙기기 시작했다


"코피는 코피 솜을 하고 있으면 이따가 다시 봐줄게. 선생님이 코를 꽉 눌렀는데도 아프지 않은 걸 보니 다행히 코피만 나고 코뼈가 다친 것 같지는 않는구나"

많이 놀랐지? 울고 싶으면 울어!!
이럴 땐 눈물이 나면 울어도 돼!!
사나이도 아플 땐 우는 거야 마음껏 울어!!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아이를 안아주고 나도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았다.

한참을 그 큰 체구의 아이가, 가장 작은 선생님인

나에게 안겨 울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주고는 바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앞반 선생님께 야광팔찌를 돌려드리고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라고 지도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로 올라갈 채비를 했다.

앞반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가져가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 팔찌를 굳이 돌려드렸다.


나는 그날 아픈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아프고 약한 만큼,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는 아무리 아이들이 좋아한다 하더라도, 교사로서의 내 소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

내가 아이들을 지켜줄 자신이 없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즐거운 놀이라도 함께하면 안 된다는 걸,

'결국은 우리 아이가 다친다는 걸'


아이는 다행히 펑펑 울고 난 뒤엔 다시 평소처럼 씩씩하게 지냈다.

점심시간에 입술 상처에 음식이 닿아 아플까 걱정했지만, 평소처럼 맛있고 복스럽게 두 그릇을 해치웠다.

어머니께 하원길에 아이의 입술을 보여드리고 상황을 설명드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어머님과 상담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 **이가 그때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눈물이 났는데, 선생님이 사나이는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해서 많이 울었더니 괜찮다고 집에 와서 이야기했어요.
선생님께서 평소에 친구들이 다치는 것을 싫어하는  같아서 혼날까  무서웠는데,
오히려 선생님이 화를  내고 마음껏 울라고 해서 울었더니 금방 괜찮아졌다고 하네요!

정신질환인 우울증을 안고 나약한 몸으로 교사로서 근무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나에겐,

절대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찬사였다.


우리 바다반 졸업하는 그날까지
잘 지켜 주어야지
나는 선생님이니까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단단히 잡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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