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놀이가 필요해
장마철이 시작되면,
모든 사람들이 물 먹은 솜처럼 지치지만
그럼에도 에너지가 폭발할 것만 같은 곳도 있다.
바로 유치원 교실이다.
비 오는 날 아침,
교실에 들어와 가장 먼저 이 눅눅한 공기를 없애고 싶어 제습 모드를 가동한다.
기회는 오직 한번뿐, 지금 제습해두지 않으면 하루 종일 더 이상의 습기를 없앨 기회는 없다.
아이들이 움직이면 아무리 제습을 틀어도 소용없다.
아이들이 등원하자마자 교실은 정신이 없다.
오는 길에 양말이 젖은 친구,
가방 속 물건을 다 빼고 가방부터 말려야 하는 친구,
오는 길에 어머니께서 해주신 예쁜 머리가 습기에 다 망가져버려 속상한 친구,
심지어 비 오는 날은 지각하는 친구도 많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젖은 지각생이 등장한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마음을 다잡는다.
'비 오는 날은 사고 나기 딱 좋다. 오늘 정신 똑바로 차리자'
하지만 교사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장마철에는 무언가 평소보다 집중되지 않는다.
그래서 난 더 불안했다.
역시나.
자유놀이 시간이 시작하자마자 아이들은 미처 발산하지 못한 에너지를 뽐낸다.
10시 방향에는 누워서 뒹굴거리는 아이들
12시 방향엔 미술 재료로 파티 중인 아이들
3시 방향에는 블록을 바닥에 밀고 뛰어넘는 놀이를 하는 중 (달리지 못하게 했더니 제자리에서 점프만 한다고 주장하며... 논리 왕 일곱 살,)
7시 방향에서는 멀리까지 날아온 블록에 놀이가 방해된다며 짜증을 내는 친구들
5시 방향에서는 마치 악상이 떠오른 천재 음악가처럼 피아노로 벼락 소리 만드는 중
하...... 정신이 없다
눈앞에 아지랑이가 피는 것 같다
소리가 울리고 또 울려 뇌 속에 메아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고민이 된다
'이렇게 정신없다간 일 날 것 같은데, 한번 조용히 시켜야 하나?'
vs
'며칠째 밖에서 뛰어놀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할까. 저렇게라도 에너지를 풀게 둬야 하나'
한참 고민하다.
'장마철 안전 수업을 하기 위해' 놀이를 중단한다.
"해봄반 친구들, 긴 바늘이 6에 가면 정리할 거예요.
놀이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긴 바늘이 어디에 있니? 6이 되었다! 이제 부지런히 정리 시작하세요"
이 와중에 여름 감성을 포기할 수 없으니,
딱 두 번만 연주하고 정리시간 끝이라며 엄포를 놓은 뒤 히사이시 조의 'summer'를 정리 음악으로 연주해준다.
아이들은 반주 리듬에 따라 통통통통 노래를 부르며 정리한다.
그래 이렇게라도 에너지가 조금은 발산되기를!
그리고 장마철, 비 오는 날 안전교육을 진행하는데
아이들이 평소보다 착석을 너무 힘들어한다.
그래, 나도 눕고 싶은데 7살인 너희는 오죽하겠니...
빠르게 수업을 마무리해버린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외쳐댔다
"바깥놀이 가고 싶어요" (비 와서 놀이터 못 가잖니)
"강당 놀이 가고 싶어요" (오늘은 우리 반이 강당 쓰는 날이 아니란다. 나도 참 안타까워.....)
우리 유치원은 학급수가 9 학급임에도 불구하고
강당은 한 반이 쓸 크기 정도로 하나,
놀이터도 한 반이 쓸 크기로 하나뿐이다.
이 말은 매일 어딘가에서 뛰어놀 수 없고, 교실에만 있어야 하는 날도 많고, 날씨가 안 좋으면 꼼짝없이 교실에 갇힌다는 것이다.
그렇게 놀이를 중시하면서
'공간도 없는 곳에 9 학급이나 인가를 내다니! 이런 탁상행정!'이라 생각하며 교육청을 원망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아이들을 좀 더 실내에서 움직이게 도와주는 것뿐.....!
그게 너희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큰 마음먹고, 숨겨두었던 체육 매트를 꺼내 펼친다
아이들에게
"오늘은 이 매트 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른 반 친구들도 써야 해서 하나밖에 못 가져왔는데 여기서 뭘 하면 좋겠니?"
나는 실컷 점프하겠다! 이 정도로만 예상했는데
답은 기상천외했다.
구를래요!!! 저는 옆돌기도 할 수 있어요!!!!!!!
K-태권도장에서 단련된 우리의 일곱 살들은 어마어마한 체육인들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여기서 내가 선생이니, 다치지 않고 하는 법을 알려준답시고 시범을 보여주었지만....
내가 제일 못하는 것은 몸 쓰는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처참하게 앞구르기 실패.
다행히 옆돌기까지 가능하다는 친구가 나와 안전하게 구르는 비법을 전수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구르고 또 굴렀다.
심지어 질서 정연하게 줄을 서서 자기 차례가 되면 구르고, 구른 친구가 매트에서 사라지면 다음 친구가 굴렀다.
아주 안전하게 굴러대고 있었다.
아이들은 장마가 끝날 때까지
매일 구르고 또 굴러댔다.
"안 어지럽니?" "안 힘드니? 너 지금 땀 아주 많이 나고 있어." "너희들 데굴데굴 구르는 바퀴 같아", "이러다 쓰러질 것 같아서 걱정돼"
아무리 말을 걸어도 멈추지 않는 그들의 에너지.....!
그렇게 장마기간 내내 구르기만 했다.
이 귀여운 장꾸 쇠똥구리들.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