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봄 Jun 22. 2022

일곱 살 바다반의 급식시간

자율성과 책임을 기르는 시간

유치원생 아이들 10~20+@명이 모여 밥을 먹는 상황을 상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 상황에서 나 홀로 교사라면?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은 아찔함을 느낄 것 같다.

유치원의 급식 시간은 전쟁이다. 밥 전쟁.



나는 작년 7세 학급을 맡았다.

유치원의 가장 큰 아이 들인 만큼 5, 6세보다 식사지도가 덜 정신없지만, (그래도 7세 반은 교사가 눈치껏 자기 식사는 꾸역꾸역 해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일단 준비 과정부터 우당탕탕.

깨끗이 손 씻기를 지도하고, 가림판 설치와 소독 티슈로 책상 소독하기를 지도한다.


고맙게도 우리의 7살 친구들은 시범을 보여주었더니 가림판 설치와 책상 소독을 척척 해내었다.

(불안해서 항상 내가 한번 더 소독한 건 비밀)


모두 준비가 되면,

오늘의 식단을 보며 메뉴와 식재료, 영양소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방역 수칙 (식사 시 이야기하지 않기, 식사 중 이동할 경우 반드시 마스크 착용) 잔소리를 실컷 해대고는 배식을 시작한다.


그. 런. 데.

날이 갈수록 잔반이 너무하게 늘어나는 것이다.


나는 성인이고 교사이면서도 편식하는 편이라,

싫어하는 음식도 딱 한 입만 스스로 맛보면 노력했다고 인정해준다.


영양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짜인 식단이지만,

집에서 먹던 메뉴만 주로 먹게 되는(인스턴트의 비중이 많은) 요즘 아이들에게,

급식에 나온 낯선 음식을 다 먹는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라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걸 굳이 다 먹게 하도록 지도해야 하는 원의 교사는 더더욱 힘들다.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단호하게,

심지어 억지로 먹였다간 곧바로 아동학대범이 된다.


교육관에 따라 비교적 자유롭게 식사지도를 해왔는데, 점점 늘어나는 잔반을 보니 '내 지도 방식이 과연 맞는가?' 하는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고민의 결론은 '나 혼자의 노력만으론 잔반을 줄일 수 없다'였다.



 결국 나와 아이들이 함께 변화해야 하는 문제기에,

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너희가 먹고 남긴 잔반이
점점 많아지는데,
먹고 싶은 만큼만 음식을 먹는 건 괜찮지만
잔반을 많이 남기는 건
지구를 오염시키는 행동이에요

어떻게 하면 잔반을 줄일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그냥 다 먹어요! (쏟아지는 친구들의 원성)

선생님이 조금만 줘요! (그럼 계속 더 줘야 해서 선생님이 식사를 못하시는데?)

숨겨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먹고 싶은 만큼만 주세요!

"너희들은 어떤 생각이 가장 마음에 드니?"라고 물으니 압도적으로 '먹고 싶은 만큼만 달라'는 친구들이 많았다


띠로리.....

배식 시간이 3배는 길어질 듯한 불길한 예감.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제안을 했다.

그럼 너희들이 반찬을 스스로 먹을 만큼
생각해서 가져가 볼 수 있겠니?
국과 밥은 뜨거우니 선생님이 주시고,
대신 국, 밥은 남겨도 되는 걸로!

그리고 스스로 가져간 반찬은
내 선택에 책임을 지는 의미로 다 먹기!
할 수 있겠어요?


 이 귀염둥이들,

'스스로 가져간다'는 것 만으로 잔뜩 신이 났다.

아이들은 역시 자율의 기회를 참 좋아한다.


그날 이후,

우리 반의 잔반은 눈에 띄도록 줄어들었고,

내 사랑 장꾸들은 '자율에 따른 책임'을 배워나갔다.


가끔 스스로 가져간 반찬을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는 아이가 있으면,

교사보다도 친구들이 먼저 득달같이 달려들어 말했다.


네가 스스로 가져간 거니까 책임을 져야지!









이전 04화 차가운 남자에게 받은 따뜻한 사랑편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