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모두 사랑이 고프다
내가 5세 반을 담임하던 시절,
우리 반 교실에서 내가 수업을 끝내면
곧바로 그 공간에서는 5-7세 혼합 방과후과정이
진행되었다.
방과후 반 선생님과 돈독한 유대를 갖고 있던 나는,
교무실이 힘들 때마다 자주 찾아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중에서도 유독 뾰족하고 차가운 남자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이다
이 친구는 항상 날카롭게 가시가 돋혀 있었다.
또래보다 지적, 예술적, 신체적, 언어적 능력이 뛰어났고 자신의 우월감을 과시하는 말을 자주 했다.
그 아이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또래로부터 처음에는 쉽게 인기를 얻었지만,
아쉽게도 공감능력이 부족한 친구였고, 친구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였기 때문에
뾰족한 말과 행동으로 점점 친구들은 그 아이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5-7세 아이들도 주로 둥글둥글한 성격의 친구를 선호한다!)
6살이었음에도 담임선생님 노려보기는 기본,
그 친구 주변에서는 언제나 아이들의 갈등과 불만이 끊이지 않았고,
담임선생님께서 갈등 중재에 개입하시면 날카로운 말로 선생님에게까지 상처를 주기도 했다.
유치원 각 반마다 있는 '담임의 입장에서' 참 힘들고 어려운 친구였던 것이다.
이 친구의 방과 후 시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항상 투덜대고, 부정적이고, 6살 아이의 입에서 나오기 힘든 험한 말을 하는 통에 형, 동생, 친구 할 것 없이 그 아이를 슬슬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언젠가부터 항상 혼자 책상에서 블록을 조립하거나, 종이를 접고 있었다.
그렇게 그 아이는 내 눈에 찍히고 말았다.
의사소통보다는 자신의 입장만을 표현하는 발화가 주된 대화방식인 5세 아이들 담임을 하다 보니
좀 더 큰 연령 아이들과의 소통이 고팠던 나는
그 친구를, 내 매력에 빠지게 만들 아이로 정했다:)
어찌 보면 장난의 표적이 된 셈이다.
나는 매일 그 아이의 책상에 찾아가
두 손으로 꽃받침을 하고......!
그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아이는 굉장히 황당해했다.
난데없이 자리에 찾아와서는 달콤한 눈빛이나 보내고 있다니 저 선생님은 대체 뭘 하는 걸까,
아이 입장에서 황당할 만했다.
그리고는 아이와 나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이어졌다.
아이: 왜 그렇게 보고 있어요?
나: 예뻐서
아이: (질색하며) 내가 뭐가 예뻐서요?
나: 그냥 예뻐서
아이: 거짓말하지 마요 다 티 나거든요. 선생님 아무한테나 다 그렇게 말하잖아요.
나: 그런데 선생님은 자리까지 찾아와서 이렇게 바라보지는 않는데, 이건 특별한 거야
아이: 왜요? 내가 싫어서요?
나: 아니 좋아서, 그냥 좋아서:)
그랬다.
아이는 이미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가치를 내면화한 것이었다.
아이의 무의식 안에
'모두들 날 싫어해. 모든 선생님들은 나를 혼내고 미워해.'라는 생각이 자리 잡은 듯했다.
나는 매일 그 아이를 찾아가,
다소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예쁘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내 사랑 000이라는 말을 뻔뻔하게 해댔고
그 아이는 투덜대면서도 절대 그만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ㅎㅎㅎㅎㅎ
그렇게 일방적인 애정공세 후....!
그 친구는 나에게만 덜 차가운 아이가 되었다.
아침에 등원을 하면 복도에서 내가 그 아이를 부른다. "해봄 선생님께 인사드려야지"
처음엔 싫다더니, 어쩔 수 없이 몇 번 찾아와 인사를 하고는, 인사를 끝낸 후엔 꼭 안아주고 보냈더니 매일 스스로 찾아와서 아침 인사를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투덜대며 인사하러 제 발로 찾아오는 그 아이의 서툰 애정표현이 퍽 사랑스럽다.
시간이 흘러 그 친구는 7세로 진급하였고,
무슨 인연인 건지 7세 담임이 된 내 학급에 배정받았다.
나는 내심 반가우면서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담임으로서 이 아이를 만난다면
학급의 질서를 위해, 평화로운 학급 분위기를 위해, 예전처럼 이유 없는 애정을 퍼줄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봄 선생님의 7세 반으로 등원하는 첫날부터,
그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에이 선생님은 참, 왜 나만 좋아하는 거예요!!! 하며 투덜대며 부끄러워했다.
앞으로 나에게 실망할 그 아이의 미래가 훤히 보여 마음이 아팠다.
그러던 그 아이가
개학한 지 2주가 채 되지 않아 등원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유치원을 옮긴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유는 공립유치원의 특성화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 아이와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이별을 하게 되었다.
허탈하고 아쉬우면서도
"차라리 잘 된 거야. 담임 선생님으로 나를 만나면 자신만 사랑해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을 테니 그냥 좋은 추억으로 남기자"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 아이의 짐을 싸며 짐 안에 짧은 쪽지를 넣어 보냈다.
"선생님이 널 예뻐한 것은 이유가 없단다. 꼭 무언가를 잘해야 사랑받는 것은 아니야. 00 이가 새 유치원에서도 사랑받고, 친구에게도 사랑을 주는 어린이가 될 수 있다고 해봄 선생님은 믿는다. 진짜로 사랑해"
짐을 가지러 오신 할머님께 꼭 쪽지를 아이에게 전달해 달라 부탁드렸고,
할머니께서는 아이가 선생님을 이상할 만큼 참 좋아하는데 엄마의 생각과 유치원 방침이 맞지 않아 그만두는 게 아쉽다고,
나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고 가셨다.
그리고 며칠 후 유치원으로 할머님이 방문하셔서 편지를 전해주고 가셨다.
무려 보고 싶다니,
그 차가운 아이가 하트를 그려 꽉꽉 칠해놓은 편지를 보내다니,
편지를 본 모든 선생님은 충격을 받으실 정도였다. 정말 그 친구가 쓴 게 맞는 건지 말이다.
나도 편지를 받고는 한동안 멍하게 쳐다보았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에게 수없이 많은 선물과 사랑고백 편지를 받는 게 일상이지만,
이 차가운 남자아이의,
이런 따뜻한 사랑편지는 정말 소중하고 특별해서 내 방에 고이 전시되어 있다.
이 차가운 아이가 나에게만 따뜻한 아이가 된 것은
절대 내가 훌륭한 교사여서가 아니다.
그저 그 아이에게 이유 없이 관심과 애정을 준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은 사랑이 고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담임교사는 절대 아이만의 단 한 사람이 되어줄 수 없다.
유치원 교실 안에는 너무 많은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 소재 공립유치원 교사 대 유아 비율은
5세 1:16
6세 1:22
7세 1:24
요즘 초등 1학년도 20명 이상 반이 구성되지 않는다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이다.
유치원은 분명
아이들이 긍정적인 자아개념과 인성을 형성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학교급이다.
입시에서 가장 멀기 때문에,
학습에서 가장 멀기 때문에,
아이들의 잠재력과 가소성이 큰 시기이기 때문에,
이 외에도 이유는 차고 넘친다.
유아교육의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간단하다.
*교사 대 유아 비율 줄이기*
그런데 이걸 유치원 교사들만 아는 것 같아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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