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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Aug 26. 2022

바다반 교실의 3대 원칙

우리 반의 헌법

바다반에는 첫날부터 강조된 절대 3원칙이 있다.

마치 우리 반의 헌법 같은 존재랄까,

선생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 3가지라고 보아도 무방한 내용이자,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뼈저린 경험으로 얻은 배움이기도 하다.




이 절대 3 약속을 위반하면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고 배우는 시간을 가진다!

(혼난다는 뜻이다)

나는 매일 이 절대 3 약속을 읊었고,

아이들은 이 약속을 어겼을 때는 선생님께 꾸중을 들어도 억울해하지 않았다.



첫째, 위험한 행동 하지 않기!

사실 이 원칙은 모든 유치원 학급에 다 있을 만한 내용이다.

신체 조절이 미숙한 유아들이 쉴 틈 없이 돌아다니고, 좁은 교실에 수많은 놀잇감과 아이들이 있는

유치원 교실은 다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얼마나 위험 요소가 사방에 가득한지,

성인이고 교사인 내 다리에도 시퍼렇게 멍든 자국이 항상 있을 정도였다.


유치원 교사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누가 뭐래도

 '안전사고'이다.

유치원에는 응급처치를 해 줄 보건교사도 없고, 어린아이들은 사소한 충격에도 잘 다치는 데다가!


대부분의 학부모님처럼 "놀다가 다칠 수도 있죠"하고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면 감사하지만

안전사고의 탓을 유치원으로 돌리는 학부모님의 경우, 조금이라도 다친다면 특히 부위가 얼굴이라면...!


물론 학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속상하실지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이 모든 사고의 책임은 교사에게 돌아온다. 교사가 안전사고를 100프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아이가 넘어지거나 부딪히는 걸 막을 수 있는 초능력은 사람에겐 없다)

교사는 죄인이 되고, 교사의 자질을 의심받는다.


아이가 다치는 현장을 목격하고,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처치를 해주고 아이를 달랜 교사도 충격이 크고 속상한데,

학부모님께 질책까지 듣게 된다면 "이게 다 나 때문이야"라는 죄책감과 억울한 마음이 든다.

사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안전사고인데!


그래서 우리반에서는 '위험한 행동'

예를 들어 놀잇감을 던진다거나, 실내에서 뛰어다닌다거나, 레슬링 놀이, 칼싸움 놀이 등은 절대 금지다.





둘째,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기!

물리적 상처, 정신적 상처 모두를 포함하는 약속이다.

친구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 것,

절대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는 것,

친구가 들었을 때 속상할 말은 하지 않는 것,

친구를 무시하거나 내가 더 잘한다고 으스대지

않기. "누구나 더 잘하는 것과 덜 잘하는 것이 있다"



나는 '언어 표현'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다.

평소에 타인의 말에 상처를 받는 일이 많고,

내가 예민해서 상처를 받는 것이지, 상대방은 나를 상처 줄 의도가 없었던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나는 말을 할 때 좋은 말이던 싫은 말이던

최대한 부드러운 어조로, 둥글고 적절한 단어를 선택해 말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사람에게 말로 상처 주고 싶지 않고, 혹시 내가 말로 상처를 준다면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크다.



그리고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말을 부드럽게 할 수 있는 건 분명 장점이었다.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데 큰 도움이 되고,

내가 원하는 것이 있어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다.





셋째,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거짓말을 하는 건 절대 안 된다'

거짓말을 계속하면 사람들이 너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된단다!라는 것부터


여러 명의 친구가 함께 놀이하거나 생각을 나눌 때 솔직하게 자기표현을 하는 것에 큰 중점을 둔다.

그래서 우리 반의 이야기 나누기 시간에는,

모든 친구가 자신의 생각을 말해야 한다

(10명이라 가능한 일이긴 하다.)


부끄러워서 친구들에게 말하기 어렵다면 선생님께 미리 말해주고, 선생님과 함께 말해보도록 지도한다.


난 어릴 적 자기표현을 확실하게 하지 못하는 어린이였다. 타인이 나의 의견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신경 쓰며 '그냥 다 좋아요'라고 했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여러 사회생활을 해보니,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는 건 나 자신에게 굉장한 손해로 돌아오기도 했고,

사람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게 되는 큰 요인이었다.


그리고

집단 속에서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고 결정을 해야 할 때 구성원들이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표현하지

않고 침묵으로만 답변하는 경우에는,

추후 갈등이 발생하거나 결정을 못하게 되는 일들이 많았고! 나는 이런 상황이 매번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반에서 아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무언가를 할 때는 항상 모든 어린이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도록 지도했다. 부끄러우면 귓속말로라도!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게 더 세상 살기에 유리하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3대 약속을 다 지키며 사는 어른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약속을 제시한 나 조차도 살다 보면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분위기에 휩쓸려 내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어느 정도 적응한 뒤에는 이 약속들을 꽤 잘 지켰던 것 같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며 자주 느꼈던 바이지만

때로는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성숙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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