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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Jul 27. 2022

어서 와, 일곱 살은 처음이지?

사실 선생님도 일곱 살은 처음이야

바다반을 만나기 전, 나는 5-6세 반만 맡아 왔다.

절대 내가 원해서가 아니다.

난 매년 7세 반을 희망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항상 어린 연령의 반에 배정되었다.


이번에는 꼭 7세를 맡으리라 결심하고,

연령 및 업무분장 희망서에 7세를 1순위로 적고

그 아래에 "업무는 아무거나 주셔도 상관없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렇게 드디어 꿈에 그리던 7세 반 담임이 되었다.

코로나19 담당 업무(사실상 보건교사)와 함께^^



7세를 맡게 되었음을 알게 된 순간부터,

초임교사 시절의 열정과 의욕이 다시 피어올랐다.

방학 중 쏟아지는 업무 폭풍 속에서도

7세들만 할 수 있는 창작동요 반주들을 연습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7세 학급운영 사례를 찾아보고,

환경 구성 자료를 만들고,

어떤 방법으로 아이들을 성장시켜줄지 고민했고,

무려 무지개 악보까지 직접 그려 준비했다.

이제야 정말 '교사'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개학 전날, 아니 당일까지

교사로서의 체력과 멘탈 관리가 되어있지 못했다.

내 상태는 겨우 힘을 짜내 출근한 사람이었다.


이유는,

겨울방학을 포함해  시간 개원 준비를 하느라

체력적, 심리적으로 많이 소진되었고


무엇보다 개학 전날까지 교실 공사가 미흡했다.

아이들 없는 새벽까지 공사를 이어나가겠다며

고민 끝에 구성해둔 교실 구성을 바꿔놓아야 한다고  9시에 전달을 받았을 ,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내일 생기 있는 모습으로 첫 만남을 하고 싶은데,

몇몇 선생님들은 공사가 개학 전까지 완료되기 어렵다는 걸 한참 전부터 충분히 눈치채고 있었는데,

여러 번 말씀을 드렸음에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국 개학 전날 밤까지 의미 없는 노동과 감정 소모를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서러웠다.

교사가 공사와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아이들 맞이할 준비가 되지 못했다는 것에 화가 났다.



나는 분노의 피아노를 연주하며 화를 잠재우고,

이 공사장에서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이제라도 가서 쉬고 체력을 준비해 오겠다며,

발칙하게 이야기하고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퇴근해버렸다.


나에겐 내일 바다반과의 첫 만남이 가장 중요했다.찍히는 것? 그런 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집에 와서는 쉬기는 무슨,

어설프게라도 첫날의 사진 한 장 남겨주고 싶어서 포토존 구성할 이미지를 편집했다.

'내 금손 실력에 이렇게 허술하게 맞이하고 싶지 않았는데...'라는 마음에 착잡했지만

시간이 없으니 허술하게라도 해주자 마음먹고 머릿속에 포토존을 구상한 뒤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그리고 일찍 일어나 무려 한 시간을 일찍 출근했다.

공사 후 엉망으로 놓인 교구장을 다시 배치하고,

빛의 속도로 이미지를 잘라 화이트보드 벽에 붙이고,

유치원에 있던 조화 뭉치로 꽃다발을 만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교실 정비를 하고

빠듯하게 교무실에 내려와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어디서 그런 초능력이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일찍 출근한 한 시간 동안 엄청난 일들을 했다.



이윽고 등원 시간이 되었고,

그 시절에는 미처 몰랐지만 나의 유치원 교사 생활 마지막 제자일지도 모를 아이들이 등원했다.


아이들은 오자마자 한 글자씩 더듬더듬 포토존에 붙여둔 "어 서 와 일 곱 살..." 문구를 읽더니 자기들끼리 까르르 웃어댔다.

아마도 본인들이 정말 일곱 살 반에 왔다는 걸 실감하고 마냥 그저 즐거운 것 같았다.


어젯밤까지 예민하고 화난 사람, 오늘 아침까지 정신없고 멍한 사람이었던 나에게도 미소가 번졌다.


진심으로 어서 와,
일곱 살은 처음이지? 정말 기대되는구나!

유치원 교사 생활 처음으로 앞으로 다가올 날들이 기대되었던, 벅찬 경험이었다.

"우리 바다반, 선생님과 한 해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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