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는 취미로
교사 시절 아이들이 장래희망을 물어볼 때마다,
“선생님은 플로리스트 할머니가 될 거야. “
라고 대답하곤 했다.
‘우리 선생님이 좋아하는 것=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은, 작은 만들기 선물이나
편지를 써 올 때마다 꽃 그림을 함께 그려오곤 했다.
그런데 플로리스트 할머니는 못 될 것 같다.
꽃을 워낙 좋아해 내 모든 물건은 꽃무늬였다.
꽃무늬에 꽃무늬를 매치하려니 난감한 게 문제였을
정도로 꽃무늬 물건이 많았다.
지금도 온갖 꽃무늬 아이템을 잔뜩 가지고 있다.
고속터미널 꽃 시장에 자주 놀러 갔다.
그 시절엔 시세도, 좋은 꽃 고르는 법도, 상인들과
대화하는 방법도 몰랐지만 그저 향기가 좋았다.
꽃 시장 특유의 싱그러운 향기.
그 향기 속에 들어가는 순간 내 몸 전체가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꽃꽂이를 배운 건 대학 졸업쯤이었다.
그리고 반해버렸다.
잎과 줄기를 컨디셔닝 하는 단순하지만 섬세한 작업,
생각과는 달리 너무 어려워서 당황했지만
내 취향을 온전히 담은 작품,
작품을 만드는 동안 오롯이 꽃에만 집중하는 시간,
내 작품을 감상하고 예뻐라 하는 시간,
모든 시간이 그저 행복했다.
그리고 꽃꽂이는 내 호화스러운 취미가 되었다.
‘플로리스트 할머니‘라는 그럴듯한 소망도 생겼다.
하지만 꽃 선생님과 가까워질수록,
내 몸이 점점 약해져 갈수록 그 소망은 사라졌다.
플로리스트는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고, 넘쳐나는
플라워샵 중에서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보통 감성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겉보기와는 달리 플로리스트는 참 억척스러운
직업이었다. 그걸 취미로 하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만든 작품 하나 드는 것도 쉽지 않았고,
취미 클래스를 듣고 싶어도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시기에는 취미반조차 참여할 수 없었다.
플로리스트 할머니는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신 꽃꽂이가 취미인,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꽃 선물을 할 수 있는 할머니는 되고 싶었다.
그래서 여전히 꽃을 아주 놓지는 않고 있다.
역시 취미는 취미일 때 가득 행복한 법이다.
얘들아, 너희가 만약에 놀러 오면 꽃집은 없겠지만
꽃 선물은 해 줄 수 있는 할머니 선생님이 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