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춧잎과 김치
“고춧잎과 김치”
불러봐도 울어봐도 못 오실 어머님을 원통해 불러보고 땅을 치며 통곡해도 다시 못 올 어머니여 불초한 이 자식은 생전에 지은 죄를 엎드려 빕니다
손발이 터지도록 피땀을 흘리시며 못 믿을 이 자식의 금의환향 바라시고 고생하신 어머니여 드디어 이 세상을 눈물로 가셨나요 그리운 어머니!
이 가사는 고생만 하시다가 별세하시고 하늘나라로 떠나가신 어머님을 그리워하면서 부르는 노래제목의 가사이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시골 면 행정지역이 좁고 인구가 적어서 중학교가 소재하지 않아 인근 면에 위치한 장평중학교로 배정이 되지 않아, 집에서 15킬로 30리 멀리 떨어진 읍내에 소재하는 중학교로 배정되었다.
읍내에 소재하는 중학교이기 때문에 인근 면소재지에 중학교가 없는 안양면 부산면과 일부 유치. 대덕. 용산. 강진군 군동면에서도 읍내중학교로 입학하여 학년당 학생수가 500명이 넘고 전교 학생이 1,500명 이상된 큰 학교이다.
이렇게 학교까지 거리도 멀어 집에서는 도저히 학교에 다닐 수가 없어, 읍내에 월세방을 얻어놓고 부모님이 고향에서 숲이 울창한 산으로 올라가 솔나무가지와 땅에 떨어진 소나무 잎사귀를 갈퀴로 긁어모아 탄탄하게 만든 나무와 잎들을 나는 매주마다 고향에 가서 일요일이면 마대포대에 발로 꼭꼭 담아 어머님이 일주일 동안
먹을 쌀과 나무를 머리에 이고 십리길 고개를 넘어 머리에 이고 두 시간에 한 번씩 오는 완행버스를 타는 아들 모습을 보고 꼭 손을 흔들면서 완행버스가 저 멀리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드시다가 집으로 가시던 어머님이 그립다.
어둠이 깔린 읍내에 완행버스가 도착하면 어머니가 꽉 차게 채워준 나무와 쌀, 김치, 조선된장, 고추장, 깻잎을 등뒤에 지고, 자취방에 오다 보면 가난이 원망스러워 학교를 그만두고 빨리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배가 고파 보리가 많이 섞인 쌀을 씻어 밥솥에 넣은 뒤 아궁이에 나뭇가지에 성냥불로 군불을 지펴 저녁밥을 짓고 미지근한 온기가 드는 방바닥에 목화솜으로 만들어준 이불을 덮고 무더운 삼복더위를 보내면서 서럼움에 이불속에서 밤새도록 울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14세 소년 중학교시절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너무 힘들게 성장하면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점심때가 되면 도시락 대신 운동장 모퉁이 수돗가로 달려가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쓰라린
그 시절도 아련히 떠 오르지만 이제는 어머님도 형제들도 계시지 않고, 하늘나라로 떠나 코로나로 힘든 여름이지만 뵐 수 없는 어머님과 형제. 누나들이 너무나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