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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Jul 28. 2024

무거운 마음

퇴직 이후 자원봉사 활동과 평생 학습관에서의 배움 그리고 소일거리를 조금씩 하면서 인생 후반기의

즐거움을 맛보면서 살아가고 있다.


60대와 70대에 다시 일을 하는 것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는데 하늘이 도운 탓인지 운이 좋은 탓인지

지인의 소개로 서류전형을 합격한 후 현장을 다니면서 재미있고 보람차게 일을 시작한 지도 보름째

되어간다.


이렇게 늦게나마 일자리를 찾았으니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활력이 차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생의

재미를 느껴 가는데, 갑자기 목포에서 간호원 생활을 하고 있는 여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전화 내용은 "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계시니,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 더 내려와서 아버지 얼굴을 보라"는 내용이었다.

(고향집과 외갓집)


뼈대 있는 우리 가문에서 아버지는 종손이고 장손에 장남이다.

장남인 나 역시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종손이고 장손에 장남이다.

우리 부부는 어머님 생존해 계실 때  자식으로서 많은 효도를 하고, 부모님을 공경했기에 명절이나 휴가

또는   시간이 생기면 수시로 고향을 방문하다 보면 이웃이나 친지들이 종손인 나와 종부인 내 아내를 많이 칭찬했었다.


이렇게 음식도 깨끗하고 맛있고 정갈나게 준비하며 명절 차례상이나 조상님 기 제사를 정성스럽게

모시는 아내를 고모님과 어머님은 항상 만족해하시면서 "종부는 하늘이 내리고,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타고난 것"이라며 내 아내를

칭찬하고 치켜세웠다


어머님이 생존해 계실 때에는 아버지로부터 종손인 우리 부부가 아들을 못 낳고 딸 둘을 낳았다고 핍박과 천대를 받았다ㆍ

아버지는 아들 못 낳은 나에게 보란 듯이 내 몱이었던

논과 산 그것도 부족해 보상받은 현금까지 아들 낳은

남동생 부부에게 장남인 나 몰레 현금을 줘버렸다


그것도 부족해 모든 논ㆍ답을 나 몰래 팔아서

남동생 부부에게 현금으로 줘 버리고

임야는 네 살짜리 남동생 아들에게 비싼 세금을

내면서 그것도 나 몰래 증여해 줘 버렸다


나중에 보니 선산이 포함된 모든 임야는

이혼 후 친권자로 되어 있는 남동생의 아들 찬혁이의

친권자이고 모친 즉 남동생 부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분할측량해서 전부다 현금을 받고 팔아 돈은

가져가 버렸다


집안꼴이 개판으로 되어 조상님들 제사도 지내지

않아 화가 난 나는 남동생 부부에게 사람노릇 좀

하라고 전화로 꾸지람을 했더니 별별 허위사실과

소설을 써서 검찰청과 경찰에 허위진정과 고발을 해

이틀 동안 경찰서와 검찰에 출두하여 하루종일

조서를 받았는데 그때 심정은 미칠 지경이었다


증거를 가지고 가 또박또박 반박해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아버지나 숙부님이나 머리가 이상해졌는지

나를 모함해 억울한 누명을 벗 느라 정말 말할 수 없이

고생했다


나를 알고 있는 지인들은 아버지나 숙부 동생을

남이라 생각하고 연락을 완전히 끊고 살아라고

하는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숙부님은 주식을 해서 큰 손해를 보고 나서

툭하면 나에게 돈 좀 빌려 달라고 수백 번씩 전화하더니

끝내 돈을  빌려주지 않자  허위로 나한테 돈을 빌려줬는데 갚지 않는다.  고 허위투서를 해서

친조카인 나를 못살게 힘들게 했다


내가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는 형제가 없는 독자인데

할아버지의 작은아버지가 같은 마을에 사시면서

금전적인 문제. 등 여러 가지 사 유료 장손이고 종손이고

큰 조카인 할아버지를 못살게 귀찮게 했다


할어버지는 종손인 어린 나에게 너도 나중에

너의 작은아버지들이 귀찮게 하지 않으련가 모르겠다고 하시더니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열심히 살아 집을 두채

장만한 나에게. 돈을 뜯기 위해 작은아버지가 거의

1년간 나를 못살게 하고 힘들게 했다

모든 것들이 무혐의로 끝나고 공금을 횡령해

중간퇴직한 숙부를  고발하라고 했지만

인륜을 쳐 버릴 수 없어 고발도. 하지 않고

참고 견뎠다


숙부님이 근무한 금융기관에서는 진정서를

제출하면 숙부님을 공금횡령으로 고발해서

구속시킨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아버지와 남동새 부부 작은아버지한테 이렇게

당하고 참고 인내했다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치매가 와 버리고 요양원에

3년 동안 계시다가 10여 년 전에 어머님은

말도 못 하시고 듣지도 못하시다가

 별세하시고 나니, 아버지께서는 종손이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우리 부부에게 "조선시대에는 아들도 못 낳으면 칠거지악"이라고 아들을 낳은 남동생 부부 앞에서 모욕을 주고 많은 차별을 했다


어디 그뿐이었던가?

할아버지 내외분과 조상님 산소에 벌초를 하러 가서 산소 앞에 가 막걸리나 소주 한잔을 올리려고 하자

아버지께서는 나를 밀면서 "너는 술 올리지 말고, 갈퀴로 벌초한 풀이나 겪어 모아라"라고 말하면서

아들을 낳은 남동생과 항상 차별을 했다.


어머님이 교통사고로 치매와 기억력을 상실하자, 아버지는 장남인 나 몰래 논 20마지기는 아들 낳은

남동생에게 전부 팔아 현금으로 다 주고, 나중에 토지대장을 발급해 보니 74,000평방미터나 되는

거대한 선산 임야의 문전옥답들은 네 살 먹은 남동생의 아들 찬혁이에 개 비싼 증여세까지 납부하면서

증여 등기를 해 주었었다.


시골 상, 하수도 신축과 관련하여 우리 집 임야 일부가 포함되어 보상받은 2500만 원은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남동생에게 차를 새로 구입해 주고, 500만 원은 둘째 숙부님 소송비에 보태라고 현금으로 줬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제사와 명절차례 조상님을 모시고 있는 장손과 종손인 입장에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서운했다.


아버지가 20여 년 전에 불치병에 걸려 대학병원인 조선대와 전남대학교 병원에서 "아버지는 바로

돌아가실 것이니 장례를 준비하라" 면서 입원을 해주자 않아 광주에서 민간 응급 구급차를 40만 원에

 빌려 구급차에 아버지를 싣고 옆자리에 앉아 서울대학교 병원까지 달려와 40일 동안 

입원치료 후 아버지를 살려 드렸다.


아들을  못 낳았다고 차별하고, 재산도 주지 않아 서러움을 많이 당했다.

어머님 병원비가 없어 우리 남매들이 다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손해 사정인을 구해 교통사고를 당해 피해를 본

어머님의 병원비 수천만 원을 해결하고, 위로금 1,250만 원까지 받아 배우자인 아버지 통장으로 입금해 주었으나 그 돈도 아들을 낳은 남동생에게 전부 줬다고 한다.


이제 병원비와 아버지 장례비까지 걱정되는데 아버지 옆에서 살고 있는 여동생이 아버지 통장을 관리하고

있는데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몰라도 아버지 통장에 돈이 없어 장례비가 걱정된다고 전화했다.


아버지 때문에 경찰서와 검찰청에 소환되어 피의자로 하루종일 조사도 받아보고, 아들 못 낳았다고 냉대와

서러움을 많이 받았는데, 94세이신 아버지가 산소호흡기를 꽂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는 여동생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고향집으로 내려가 일을 보고, 목포에 입원해 계신 아버지를 찾아뵜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슬픔이 만감이 되어 교차하는데 애증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내 눈에서

눈물이 나오니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이란 어찌할 수 없는 하늘이 맺어준 부모와 자식 간의 떼일 수 없는

운명인가 본다

인륜이고 천륜은  어찌할  없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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