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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Jun 25. 2024

나의 병영생활

사병복무 33개월



오늘은 동족 간의 전쟁이 반발했던 6.25 전쟁 반발 74주년이 되는 날이다.

아버지는 전쟁에 참전해 강원도 동부전선 양구지구 뻔치볼에서 공산군과 치열하게 전투하다가

총상을 입으셨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남인 나도 논산 훈련소에서 강인한 훈련을 마치고 동부 전선 12사단 강원도

인제 원통에 자대 배치되어 휴전선을 사수하고 전방 부대에 병기를 지원하는 군 생활을 33년 복무하였다

봄이면 분기측정과 사격훈련, 여름이면 att훈련과 일주일간의 유격훈련, 겨울이면 얼었던 땅을 파고 진지를

구축해 야전 천막을 치고, 추위를 극복하고 야전에 적응하기 위해 5일간의 동계훈련, 치우고 치워도 계속

쌓이는 눈과의 싸움 제설작업, 뻬치카에 연탄가루와 물을 섞어 내무반에 온기로 겨울을 나면서 군 복무를

했던 지난날의 젊은 청춘 군생활이 생각난다


79년 대통령 서거와 80년 신군부의 정권찬탈을 위한 유혈 전투로 죄 없는 군인들이 생을 달리하던 시절에

아무런 정보도 부족한 사병으로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 미치겠구나"  라는 인제 원통으로 자대

 배치되어 대간첩 작전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들이 그립다.


지금은 어느 땅 어느 하늘아래에서 무엇을 하고, 잘 살고 있을까....



 *. 6.25 전쟁은 6·25 사변이라고도 하며, 국제적으로는 한국 전쟁이라 불린다. 소련의 지원으로 군사력을 키운 북한이 38˚선 전역에서 남침하여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였다.
국군은 북한의 앞선 병력과 무기에 밀려 한 달 만에 낙동강 부근까지 후퇴하였다. 이어 미국 주도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가 열려 유엔군이 파병되었다. 유엔군의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서울을 되찾고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다. 하지만 북한의 요청으로 중국군이 개입하자 다시 서울을 빼앗겼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전투가 계속되었다.
3년 동안의 전쟁으로 인명 피해가 약 450만 명에 달하고, 남한의 43%의 산업 시설과 33%의 주택이 파괴되었다. 남북한은 휴전 상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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