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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봉 Jul 09. 2024

누 나

매년 이맘때쯤이면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누나가 그리워진다.



가정 형편상 누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과 함께 논과 밭에 나가 농사를 지었다. 친구들은 중학교에 진학해서 공부하는데, 들녘에 나가 잡초를 뽑고 비료를 뿌리며, 농약을 치면서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30리 떨어진 읍내 중학교에 진학해 자취하면서 매주 토요일 시골집에 오면 가장 먼저 어머님과 누나가 마당에서 맨발로 뛰쳐나와 나를 반겨 주었다. 내 고향은 마을이라야 여섯 가구가 다 친척 일가로 전부고, 농촌이라기보다 천지가 울창한 숲과 우거진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은 누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오는 남동생의 교복을 세탁해 다려 주면서 “너는 우리 집의 장손이고, 장남이니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해야 한다”라고 수없이 신신당부했다.



누나는 20대 초반 울산 현대조선소에서 근로자로 일했던 매형을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이후 초등학교만 졸업했다는 사실을 매형이 알고는 많이 무시하고 괄시했다고 한다. 설움도 많이 받고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다는 것을 훗날 누나에게서 들었다.

(누나의 초등학교 6학년 사진. 1970년)



그 당시 누구나 다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나 또한 경제적으로 고단했다. 간신히 고교 졸업 후 국가의 부름을 받아 현역병으로 3년간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해 울산에서 신혼살림 했던 누나 집에서 기거했다. 아침이면 누나가 해준 밥을 먹고 점심과 저녁 도시락 2개를 싸서 누나 집과 가까운 사설 독서실에 가서 밤새도록 공부했다. 누나의 보살핌 덕분에 철도청과 우체국 그리고 지방 행정직 공무원에 합격해 공직생활 32년을 마치고 정년 퇴직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누나는 그토록 고생해서 모은 돈으로 논도 조금 사서 고향에 내려와 농사를 짓던 중, 우등생이었던 딸이 고3 때 백혈병에 걸려 서울 아산병원에서 1년 동안 치료하다가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다.



결국 딸의 간병 후유증인지 누나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사랑스러운 딸이 하늘나라로 떠난 지 몇 년 후 불치병인 암이 찾아와 영영 다시 올 수 없는 딸 곁으로 가버렸다.



그렇게 한 많은 세월을 살았던 누나가 50대 초반에 하늘나라로 간 지 벌써 10여 년이 흘러간다. 남자들은 아내가 죽으면 화장실에 들어가서 웃는다는 진담 아닌 농담이 있는데, 매형은 누나가 떠난 지 1년이 되자마자 사돈 어르신과 가족들의 권유로 홀로 된 여자와 재혼해서 가정을 꾸렸다. 그토록 한 많은 세월을 살다 저 멀리 떠나버린 사랑스러운 누나가 불쌍해 가슴이 미어 터진다.


누나는 떠났지만 누나가 낳은 아들이 이제 40세가 되었는데,  결혼이라도 했으면 하는 바람인데 세상일은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장마철이라 비가 오락가락 내린다.

이런 날은 누나집에서 밀가루로 부침개를 먹었던 25년 전 추억들이 그리워지고 뇌리를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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