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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님

by 자봉

세월은 흘러가는 물처럼 빨리 지나간다고 하여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한다. 어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가 직장에서 정년퇴직하고 70대에 다다르니 인생무상과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했던 추억에 젖게 되는가 보다. 평생 고생만 하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농촌에서 산도라지를 채취하고 밭일을 하시면서 큰손자이자 장손인 나를 유독 예뻐하고 사랑해 주셨다.

(그리운 할머님)


할머니는 97세에 노환으로 1년 동안 고생하시다가 17년여 전 하늘나라로 떠나셨고 할아버지는 내가 결혼하던 1988년에 별세하셨다. 할머니는 노환으로 걷지를 못해 양로원에 계시다가 운명하셨다.



양로원에 할머니를 찾아갔을 때 장손인 나에게 “아들이 없다고 기죽지 말고 딸도 잘 키우면 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만 원짜리 지폐 2장을 손주 며느리인 내 아내 손에 꼭 쥐여주며 눈물을 흘리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할머니께서 눈을 감으시면서 나와 내 아내 손을 잡으시고 눈물을 흘리시길래 나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왈칵 울어 버렸던 그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7년여 전 일이 돼버렸으니 지나간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자식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할머니께서는 당신의 자식인 아들과 며느리보다 손주인 나와 손부인 내 아내를 더 예뻐하셨고, 증손녀인 우리 두 딸을 더 많이 사랑해 주셨기에 그리움이 더욱더 큰가 보다. 장남이나 장손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기 때문에 부모님 사랑보다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을 많이 받는다는 말이 있다. 나도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어른이 된 후에도 부모님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더 좋아하고 할머니에 대한 좋은 추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기 전인 여섯 살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할아버지 방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잠을 자고, 화롯불의 온기 속에 옛이야기를 들으며 할아버지와 기나긴 밤을 지새웠던 옛 추억들을 잊을 수가 없다. 또한 중·고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고향에 내려가 할아버지가 심심하실까 봐 할아버지를 따라 집에서 키우던 소를 몰고 동네 앞산과 뒷산으로 가서 소에게 풀을 뜯기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시골 고향마을의 초가집에서 살던 어린 시절애는 아궁이가 딸린 안방에서 여동생과 누나와 할머님이

주무셨다.

밭에 목화를 심어 수확해 솜을 틀어 이불을 만들던 귀하고 어려운 시대에 이불 하나로 대 여섯 명의

가족들이 이불을 덮었다

이불을 덮다보면 가장자리에 자는 가족들은 서로 잠꼬대를 했기에 이불도 없이 잠을 자다가 한기를

느껴 중간중간에 일어나 추워서 이불을 서로 끌어당기곤 했다.

잠을 곤히 자다 보면 흙벽을 타고 천장과 방 안으로 들어온 쥐를 부지깽이로 잡으면서,

쥐를 보면 징그러워 어린 우리 남매들은 서로 피했는데, 할머님은 손수 쥐를 잡아 마당으로 치웠던

힘들었던 지난날들도 생각난다.

그 당시에는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이 세월 지나 지금 되돌아보면 아련한 추억이다

(조부모님과 남동생도 하늘의 별이 되었다)


어디, 그뿐이랴!

학창 시절에 자취하면서 토요일이나 방학 때 고향 집에 내려와서, 할머니를 따라 산도라지를 캐러 심산유곡으로 들어가 칡넝쿨로 둘러싸인 옹달샘을 찾아 목을 축이던 시절이 생각난다.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하늘나라로 떠나셨고, 어머니와 동생들도 뒤를 이어 하늘나라로 가시니 그 시절이 더욱 그립다. 이렇게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아내도 할머니를 무척 좋아했고, 증손녀인 우리 두 딸도 이제는 성장해 직장인이 됐지만 증조 부모님이셨던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무척 좋아했다.


이제는 길거리를 걷다가 연로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보노라면 생전에 큰손자라고 나를 예뻐하고 사랑해 주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더욱더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큰 고모 결혼식때의 조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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