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저만큼 깊어만 간다
스크린골프장을 운영하는 친구와 은퇴 후
강화도에 250평 밭을 매수하여 온갖 식물들과 꽃.
고구마와 감자 배추 상추 등 계절마다 채소들을 바꾸어
심고, 인생 후반기를 알차게 보내고 있는 중학교 동창 3명이 7호선 까치울역에서 만났다
오후 1시 점심시간에 맞춰 양천해장국 식당으로 가보니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점심시간이 지났는데 그 많은 좌석이 꽉 차 만원 성시를 이룬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해도 먹는장사는 잘 되는가 본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식사를 마친 후 근처에 있는
부천수목원으로 들어가니 65세 이상 경노는 무료입장이다
수목원 초입에 들어가니 오색잎으로 예쁘게 물든
단풍들이 내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
걷다 보니 커피판매점도 있어 누가 뭐랄 것 없이 커피
한잔씩을 주문해 따뜻한 커피를 받아 들고 나무테크와
아름답게 조성된 탐방로를 따라 사진도 찍어가면서
깊어가는 가을날에 중학생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수목원 입구)
두세 시간 한 바퀴 돌면서 주차장으로 나오니 강화도에서 취미생활로 농장을 하는 친구는 고구마를
심어 20박스를 수확했다고 두 상자에 가득 담아와
나눠줬다
차를 가지고 가지 않아 골프장을 운영하는 친구의
차에 고구마 한 상자와 올해 농사를 지으면서 받아놓은
갓 씨앗부터 여러 가지 채소와 꽃씨를 부천 친구가 비닐봉지에 담아 주기에 소중하게 받아왔다
골프장 운영이 잘되어 돈도 잘 버는 친구차를 타보니
벤츠 신형이라 그런지 내 차보다 승차감도 훨씬 좋다
목동역에 내려 고구마 상자를 양손으로 들고 지하철을
타고 힘들게 집에 들어와 고구마를 쪄 보니 너무 맛이
좋다고 아내와 딸들이 좋아한다
계절은 가을로 접어들어 들녘과 산, 가로수들은 형형색색으로 단풍이 들어가고 바람이 살살 불 때마다
단풍잎들은 바람에 떨어져 나 뒹군다
떨어지는 단풍잎들은 대지위에 쌓여 낙엽이 되고
해가 바뀌어 내년 봄에 다시 소생할 것인데 우리네 인생은 늙고 쇠퇴해 한번 가면 그만인 것을 우리는
왜 서로 이해관계에 섞여 아등바등 살아가는지 ᆢ
아스팔트와 회색빛 건물들이 즐비한 삭막한 도시에서
조금 시간을 내 경기도 지방으로 나오면 아름다운
고운 빛깔의 단풍들도 구경하고 눈이 맑아져 힐링이
절로 된다
(형형색색의 단풍잎새들)
단풍으로 물든 오솔길을 걷노라니 50년 전 광주
무등산 증심사 입구 학운동 단칸방에서 자취할 때
마당 수돗물가로 쌀을 씻으러 갈 때면 주인집 딸이
전남여고 1학년이었는데 창문을 열고 나를 쳐다보면
그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해서 바보처럼 말도 못 하고 피했던가?
오색으로 단풍잎이 물들었던 1970년대 가난해 돈이
없던 그 시절, 검정 교복 한벌과 교련복을 입고 신문
배달을 하면서 연탄불에 쌀을 씻어 밥을 찧고 운암동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다녔던 허기지고 배고팠던 고교 학창 시절이 지금은 그리워진다
시골 깡촌의 촌놈이 너무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 전남여고 1학년이던 주인집 딸이 우연히 집에서
마주칠 때면 오빠라고 부를 때 가슴이 두근두근 심장이
멈출 것 같아 말도 못 하고 피해 다녔던 바보 같은 고등학생시절이 가을이 깊어져 가니 문득문득 뇌리를 스쳐간다
10대 후반에 1층 슬라브 단독주택 문간방에서
자취를 하면서 연탄불은 자주 꺼지고. 새벽마다
두부라고 외치는 리어카로 장사하는 두부장사에게 두부 한모를 사 와 멀건 수돗물에 된장 한 숟가락을 풀어 두부를 잘게 썰어 미원과 조선간장을 조금 넣어 반찬 없이 국물과 설익은 아침을 먹고 다녔던 나의 소중했던 학창 시절ㆍ
건물 주인은 장성농고 교사이고 아들은 껄렁껄렁해서
공부는 하지 않아 부모에게 자주 혼난 것 같았는데
나보다 한 학년 아래인 딸은 예쁘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공부는 잘한 것 같았다
밤늦도록 공부하느라 전등불이 켜져 있으면 나도
자존심이 발동해 전등불을 밤늦도록 켜놓고
공부한 것처럼 시늉을 냈는데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 인사를 해도 고개도 들지 못하고 빨리 자취방으로 들어와 버렸던 바보 같았던 지나간 시절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얼굴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나보다 1년 후배이고 전남여고에 다녔던 고씨 성이었다는 것만 기억난다
세월 지나고 보니 깡촌에서 태어나 깡촌에서 자라
이웃에 친구나 동창이 없다 보니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 여학생들이 말을 걸어오면 대답도
못하고 피해 버렸던 못난이 같은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렇다 보니 학창 시절의 추억은 별로 없지만
까까머리 그 소년은 수줍음을 많이 타면서도 현역사병으로 3년간 늠름하게 군대도 다녀와
쥐꼬리만 한 봉급을 받으면서 공직자가 되어 은퇴를
한 후 곱게 물들어가는 오색단풍들을 바라보며
인생 후반기를 잘 보내고 있지 않은가!
이제 인생 후반기를 보내면서
주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면 얻고 싶은 것은 오로지
건강과 행복인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삶은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러가다 보니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못 견디게 삶이 고달파도 피해 갈 수 없다면
어차피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자
(일산의 대형 브런치 카페에서)
인생살이 못 마땅하더라도 넘치면 넘치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췌장낭종도 없어지겠지!
고단한 삶을 억지로 살려고 하지 말고 주어진 운명에
아름다운 내 삶을 맡기리라
나에게 주어진 삶과 운명을 묵묵하게 걸으면서
열정적으로 열심히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어느 누구에게든지 부담과 피해를 주지 말고 인생
후반기를 조금씩 손해 보고 베풀면서 살아아겠다
일 년 내내 농사일로 고생해 수확한 농산물을 친구들에게 나눠준 부천 친구와 사업이 잘 되면
잘되는 데로 안되면 안 되는 데로 베풀줄 아는 문래동
의 카카오골프 사장인 친구에게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