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by 자봉

공영방송인 한국 방송 kbs의 교양프로(걸어서 세계 속으로) 크로아티아 편을 시청하고 있다

크로아티아는 자연경관이 너무 아름답다고 꼭

여행을 해 보라는 지인의 권유도 받았기에 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다


토요일이지만 아침 6시에 일어나 단풍잎들이 오색으로 물든 경의숲을 걷고 와서 티브를 켜니 해외를 소개한다

오늘 방송의 주인공은 큰누나와 함께 크로아티아로

여행을 함께 떠난 60대의 남매가 여행하는 내용이다


남매가 디오클레티아 궁전을 사이좋게 여행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부럽고 눈물이 나려고 한다

우리 집은 4남 3녀의 7남매로 형제애가 너무 좋았다

그러나 남동생 2명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20대 후반에 하늘나라로 먼저 떠나 버렸다

손위로 형님도 없고 누나가 한분 계셨는데

그 누나는 우리 집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중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국민학교만 졸업 후 바느질을 배우다가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농사일을 하시다가 지인들의 중매로 결혼을 해 고향 인근 농촌에 터전을 잡았다

누나도 농촌에서 생활기반인 터전을 잡기 위해 농사를

짓는 매형과 농업에 종사하다가 50대 초반에 불치병인 암에 걸려 극복하지 못하고 남동생들의 뒤를

이어 하늘나라로 가셨다


한 명뿐이었던 누님이 고향 근처에서 힘들게 농사를

지을 때면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나는 일 년에

8회 정도 자주 고향에 내려갔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어머님과 누나가 생존해 계셨기에

고향에 내려가면 호주머니 사정이 여유가 있었던 나는

누나가족과 부모님을 모시고 맛집에서 고기를 구워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했다



지나고 보니 불과 20년 전만 하더라도 어머님과 누나가

생존해 계실 때 가끔씩이라도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많지 않은 용돈이지만 뵐 때마다 어머님과 누나에게

드리면 누나는 농사를 지어 참기름과 고추, 단감을

보내주었다


이제 누나와 어머니는 추억과 그리움 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오늘 티브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누나와 함께

남동생이 해외여행을 하는 모습을 시청하니 부럽고

너무 좋아 보인다


동생과 동서, 처제도 있지만 살아있는 이들은

너무 이기적이고 욕심 많다 보니 쉽게 동화되지도

않고 어울리기가 어렵다


동생들은 동생대로. 처제와 동서. 처남들은 서로

형제들이 모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상습적인 거짓말이나 하고, 돈을 빌려가서도 고의적으로 갚지 않는 양심이 불량하니 형제자매들이 모이지 않고 서로 멀리하는 이상한 가족들이 되었다


아무리 도와주고 그냥 돈을 줘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이상한 친ㆍ인척들만 살고 있어 다른 가족들의 남매나

형제 ㆍ자매들이 서로 모이고 여행을 다니는 모습을

보노라면 많이 부럽다


그동안 오랫동안 근면하고 부 저런 하게 살아오면서

여러 차례 집도 매매하면서 돈을 모아 부채 없이

살아왔다


처갓집 가족이나 친가의 동생들에게 돈도 빌려 줘 보고

그냥 조건 없이 수백만 원씩 줬는데 빌려간 지 10년이 지나 채권시효 기간이 지났다고 고의적으로 돈을 떼먹는 처제나 사촌처남들과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버렸지만, 돈도 있고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갚지 않으려는 나쁜 마음은 무슨 마음일까!


그렇다고 친 자매와 처제ㆍ처남ㆍ형제들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고 그저 포기하고 왕래하지 않고

서로 살고 있지만ㆍㆍㆍㆍ


오늘 걸어서 세계 속으로 프로그램에 방송된 누나와

남동생 즉 남매가 60대가 되어 함께 크로아티아를

여행하는 모습을 시청하니 20년 전 너무 일찍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누나가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누나가 살아 계셨더라면 이제 꼭 70세 이고,

가난해서 국민학교 졸업이 전 학력이었던 누나가

고생하며 벼농사를 지으면서 영어 단어를 하나씩

물어보면 짪은 학력으로 가르쳐줬었는데. ᆢ


우리 남매는 이렇게 힘들게 고생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고 나 홀로 미지의 땅 서울에 맨손으로 홀로 올라와

경비원과 식당 종업원 일간신문을 배달하면서 녹음테이프를 빌려와 강의와 방송강의를 듣고

공개경쟁시험에 합격해 공직자가 되었다


늦은 나이이지만 승진시험에 다른 동료들보다 더

선두로 합격해 기관장이 되고 싶은 욕망으로 방송 통신대학 행정학과에 입학해 뚝섬과 혜화동의 대학본부를 오 가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행여나 은퇴 후 사회복지기관에 재 취업이라도 할 계획으로 50대 나이 지나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지만 은퇴 후 재 취업도 어려왔다


어느덧 은퇴를 하하고 벌써 70대에 이르니 지나간

세월은 번개 같고 형제자매나 처갓집 형제자매들이

수시로 모여 1박 2일이나 해외여행을 자주 가는

친구들이나 은퇴 동료들이 부럽다

오직 한 명뿐이었던 누나와 살아 있을 적 형이었던 내 말을 너무 잘 들었던 남동생들이 보고 싶고 그립고

자주 생각난다


먼저 가 버린 누나와 우리 형제들이 살아 있었다면

이제는 경제적인 여유와 시간적인 여유도 생겼으니

누나와 남동생들을 자주 만날 것인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너무 속상하다


우리 누나와 남동생이 내 곁에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지금처럼 도회지 생활에 자주 지치고 지겨울 때에는

농촌에서 살았던 누나네 집으로 마음이 울적하거나 슬플 때 기쁠 때 아무 때나 수시로 찾아 내려가

누나에게 용돈도 드리고 함께 여행도 하면서 맛집도

많이 다녔을 것인데 누나와 동생도 없으니 서글프다


이런 슬픔과 괴로움 때문인지 친구나 지인들 중 누나가 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럽다

내게도 누나와 형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나와 형이 있으면 인생길이 외롭지 않고

인생후반기와 황혼길이 행복길과 비단길일 것인데ᆢ

이것도 내 복이 아니니 어찌하리오!


우리 집 친가도 이런데 처갓집이라도 장모님만 생존해 계신다면 처제들도 처남들도 못된 행동들을 하지 않았을 것이며,

우리 집도 어머님만 살아 계셨더라면 아버지와 살아있는 동생들이 망나니짓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문전옥답들을 장남이고 큰 형인

나 몰래 아버지와 셋째 남동생이 속닥속닥해서 몰래 팔아먹지 않았을 것인데ᆢ

장모님과 어머님. 그리고 누님이 너무 먼저 돌아가시니 집안이 이렇게 흔들려버리고 형제자매 간에 우애도 우정도 끝나버린 것 같아 기가 막힌다


아버지는 장남인 내가 딸만 낳고 아들이 없다고 칠거지악 같은 놈. 낫으로 목을 쳐 버린다고 하고

모든 재산을 장남 몰래 팔아 아들 낳은 며느리와

손주에게 주더니 그 며느리는 모든 전답과 선산까지

팔아 남동생과 이혼해서 우리 집이 풍지박살 나 버렸다


누구를 원망한들 무엇하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것 같다


남들은 아버지와 연을 끊고 살아가라고 하지만

부모와 자식은 천륜인데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지만

부모님의 병원비 수천만 원도 장남인 내가 해결하고

집안의 어러운 일들을 공직생활 했던 경험으로 한 꺼풀

한 꺼풀 해결해 나가고 있다


먼저 떠나신 어머님과 누나 그리고 남동생은 내 마음을

이해하겠지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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