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간이역은 언제나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내 생의 가장 눈부셨던 한 페이지를 펼치면, 그곳엔 1987년의 뜨거웠던 여름과 시린 겨울이 교차하던 중앙선 양평역 근처의 작은 간이역이었던 국수역이다.
당시 내 나이 스물여덟. 서울지방철도청의 제복을 입은 청년 역무원이었던 나는, 기찻길 위에서 삶이라는 열차에 몸을 싣고 청춘의 서사시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그 시절 국수역은 투박한 비둘기호 완행열차만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쉬어가는 고즈넉한 간이역이었다. 역사는 낡았으나 그 안을 채운 사람들의 온기만큼은 뜨거웠다. 총 열 명의 직원이 24시간씩 격일제로 반반씩
가족처럼 부대끼며 근무했다.
40년 지난 내 기억 속엔 아직도 그들의 이름과 얼굴이 어제 본 듯 생생하다.
언제나 인자한 미소로 우리를 품어주셨던 주복록. 이민 역장님.
그리고 실질적인 살림꾼이자 우리들의 든든한 멘토였던 권혁원 부역장님은 청춘의 서툰 발걸음을 잡아주던 나침반이었다. 권 부역장님은 빈틈없는 업무 처리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열차 시각표가 엉킬 때면 누구보다 가슴 졸이셨고, 상황이 해결되면 묵직한 손으로 어깨를 툭 치며 “고생했다”는 투박한 진심을 건네던 분이었다. “인생도 기차처럼 제 속도가 있는 법이다”라며 조급해하던 우리를 다독이던 그의 조언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야 비로소 삶의 철학으로 내 가슴에 와닿는다.
함께 밤을 지새우며 청춘의 고뇌를 나누었던 입사 동기생인 강우성과 서경수, 그리고 잠시 머물다 지방행정
공무원이 되어 떠난 이일환 과의 시간도 잊을 수 없다.
에너지가 넘치던 우성이는 간이역 근처 초라한 한옥집에 방을 얻어 자취를 하는 미혼이었다.
그는 밤샘 근무의 적막을 기상천외한 농담으로 깨뜨리곤 했다. 기차를 놓쳐 상심한 승객에게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아니겠습니까”라며 능청스럽게 위로를 건네던 그의 유머는 국수역의 비타민이었다. 반면, 우직한 경수는 비상 상황마다 침착하게 매뉴얼을 지켜내던 신뢰의 상징이었다. 깊은 밤, 플랫폼 끝에서 별을 보며 사색에 잠기던 그의 옆모습을 보며, 나 역시 말없이 기적 소리를 들으며 묘한 유대감을 느끼곤 했다.
우리의 일과는 단순했으나 숭고했다. 매일 아침 단정한 근무 복장으로 매표창구에 앉아 에드몬슨식 승차권에 날짜를 찍었다. “청량리 한 장이요”라고 말하며 표를 받아 가던 주민들의 손끝에는 저마다의 삶과 꿈이 묻어 있었다. 사무실에 앉아 빼곡한 장부를 정리하고 월별 결산을 맞추기 위해 머리를 싸매던 밤들, 열차가 연착되거나 입환작업이라도 하는 날에는 온 역사가 비상에 걸려 한마음으로 움직이던 그 긴박했던 순간들이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떠 오른다.
부역장을 포함한 다섯 명이 매일마다 출근하면서 집에서 각자 반찬을 두 종류씩 싸가지고 와서 연탄불에 점심과 저녁을 지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함께 먹었던 식사는 아주 맛있었다.
저녁식사 후 잠깐 여유 시간이 생기면 인근 가계에 가서 마시는 커피 한잔의 맛은 또 어떠했던가!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내고, 인근 양평역에서 근무하던 동기 삼열이에게 전화를 걸어 서로의 고충을 수다로 풀어내던 그 시절. 20대 후반의 청년들이 나누었던 대화들...
이제 국수역의 옛 모습은 사라지고 세월의 먼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내 가슴속 국수역은 여전히 청춘의 기적 소리를 내며 달리고 있다.
나를 이토록 성장시킨 것은 선배들과 형제처럼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과 동기생들이었다.
완행열차만 하루 몇 번씩 정차하는 그곳에서 막간을 이용해 팔당댐 상류 지천으로 나가 거칠고 큰 조개를 주워 와 서너 번씩 뜨거운 물로 끊어 된장을 풀어 칼로 잘게 썰인 조개를 된장국으로 만들어 먹었던 첫 발령지 간이역인 국수역을 잊을 수가 없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기찻길 위로 아련한 환청이 들려온다. 권 부역장님의 자상한 목소리와 우성이의 웃음소리, 그리고 밤하늘의 별을 닮았던 경수의 눈빛이...
그들이 있었기에 나의 스물여덟은 외롭지 않았고, 그 시절의 국수역은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간이역으로 남을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는 것은, 아마도 그곳에 두고 온 젊은 날의 낭만과
추억이 아닐는지...
2년 6개월 동안 제복을 입은 철도 공무원의 생활이 내 인생 경력의 일부분이지만 미혼이었던 내가 이제는 두 자녀와 배우자를 둔 가장으로 은퇴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서 그리운 간이역을 그리워해본다.
이제 몸은 70대이지만 마음은 항상 청춘인데 가는 세월들이 야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