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해 전, 건설관리과에서 함께 보냈던 동료가 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폐에 물이 차올라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한 달간의 투병 끝에, 그는 끝내 대학병원 차가운 침대 위에서 생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일흔 고개를 넘기지 못한 나이다
칠순이라는 나이가 인생의 마침표가 되기에는 너무도 억울한 시절이다.
은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비로소 ‘나의 인생’을 살아보려 했던 그 홀가분한 10년조차 채우지 못하고 떠난 동료들.
그들의 부고가 들려올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는 휑한 바람이 분다.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이 이토록 허망한 것이었던가. 돈이 많고 건강을 자신한들, 이 좋은 세상을 더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랴 싶어 가슴이 저릿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 자신과 내 소유를 위해 쌓아 올렸던 성벽이 허물어지는 과정이다.
젊은 날, 아등바등 움켜쥐었던 것들은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결국 남는 것은 ‘나’라는 존재의 앙상한 본질뿐이다.
그런데 그 본질마저 이별 앞에서 이토록 무력하다.
문득 노학자 김형석 교수의 말씀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는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젊은 날이 아닌 60세로 돌아가고 싶다 했다. 젊음은 눈부시지만, 먹고사는 일에 치여 생각이 얕았고 행복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미숙한 노동’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65세에서 85세까지를 인생의 황금기라 불렀다. 매운맛과 쓴맛을 다 본 뒤에야 비로소 삶을 음미할 수 있는 깊이가 생기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는 시기. 그 시기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절정기라는 것이다.
김형석 교수가 말한 노년의 행복은 화려한 성취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함께 고생하는 것'이었다. 사랑이 깃든 고생이 곧 행복이라는 그 역설적인 진리는, 백 년의 세월을 살아낸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맑고 투명한 경지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깊은 서글픔이 밀려온다.
우리는 이제야 비로소 생각이 깊어지고, 무엇이 참으로 소중한지 알게 된 ‘황금기’의 입구에 서 있는데, 왜 함께 그 길을 걸어야 할 친구들은 하나둘 곁을 떠나가는 것일까. 인생의 가장 빛나는 절정기를 눈앞에 두고, 왜 누구는 먼저 하직 인사를 건네야만 하는가.
상승기라 믿었던 이 시기가 누군가에게는 벼랑 끝이 된다는 사실이 못내 아프다. 먼저 떠난 이들은 어쩌면 우리가 이 황금기를 얼마나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고 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미처 보지 못한 내일의 태양과, 그들이 마저 나누지 못한 사랑의 고생을 남겨진 우리가 대신 짊어져야 한다는 숙명 같은 슬픔이 어깨를 누른다.
오늘도 나는 떠난 동료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불러보고 명복을 빈다
"이 사람아, 이 좋은 세상을 뒤로하고 어디로 그리 급히 갔나."
인생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우리는 여전히 절정의 시간을 살고 있다지만, 먼저 간 이들과의 이별은 남겨진 자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남긴다.
서글픔은 피할 수 없으나, 그 서글픔마저도 우리가 살아있기에, 그리고 서로를 깊이 사랑했기에 누릴 수 있는 인생의 ‘아픈 맛’일 것이다.
그 아픔을 음미하며, 나는 오늘 하루를 그들의 몫까지 더 깊게 살아가야겠다
이제 3일 후면 16년전에 함께 일 했던 동료들과 스크린
골프를 치는날이다 기달려진다
밤사이 겨울바람도 심하게 불었고 시내버스도 기사들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파업해 버려 아무런
죄가 없고 성실한 시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도로에는 어제 내린 눈 으로 살얼음이 생겨 미끄럽지만
세상을 떠난 옛 동료가 좋은곳으로 가시기를 애도하면서 오늘도 조용하니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