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유독 시린 계절이 있다
20대 초반의 나에게는 봉천동 비탈길,
현대시장 길목 옥상 옥탑방 300만 원 전세 단칸방에 살던 그 시절이 그렇다
3층 옥탑방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녹슬고 낡은 철계단을 거쳐 올라다니는데 오르고 내릴 때마다
항상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무섭고 떨어질까 두려웠다
여름이면 무덥고 겨울이면 추웠던 그 작은 옥탑방은 단순한 주거 공간만은 아니었다
젊은 날 야간 경비근무를 하면서 땀방울을 한 방울씩 모아 굳힌 그날들이 내 삶의 가장 정직한 결실이자 유일한 안식처였다
하지만 세상은 때로 가장 정직한 사람에게 가장 가혹한 시험대를 내민다 ㆍ
그토록. 믿었던 초등학교 때 줄곧 반장 직책을 도 맡았던 동창의 부탁, 그리고 이어진 도망과 배신.
그가 남기고 간 빚의 멍에는 고스란히 경비원 생활로 돈을 벌어 공부하고 일상을 살았던 제 몫이 되었다
군대생활 3년을 복무 후 전역하여 단칸방 문 앞에 붙은 압류 딱지와 월급 10만 원 통장의 차압 소식을 들었을 때, 세상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돈은 그저 숫자가 아니라, 내가 가족과 함께 누려야 할 최소한의 인간 존엄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였음을 그때 절감했다. 돈이 없다는 것은 너무 힘들고 앞이 캄캄하고 생활이 불편함은 당연했다
나의 성실함이 부정당하고 내 소중한 일상이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탈취당한 것이 보증이다
그럼에도 '사람'을 놓지 않으려 했던 젊은 시절의 인간관계와 고통스러웠던 것은 잃어버린 돈과 우정이었다
사회 초년생으로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사람에 대한 신뢰'를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왔는데 사기를
당해보니 고통과 괴로움만 계속되었다
가장 가깝다고 하는 시골 고향 죽마고우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을까"라는 원망이 밤마다 목을 죄어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모진 월급과 재산 압류의 시간을 견디게 한 것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다독여준 직장 동료들의 온기였을 것이다
진정한 부 는 '무너지지 않는 마음'에 있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씩 압류를 당하곤 한다
때로는 사기로 돈을 잃고, 때로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건강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의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사람만이 아는 진리가 있다
"전 재산을 잃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정직한 근육이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부자다."
비록 300만 원이라는 전세금은 사라졌을지언정, 그 시련을 뚫고 오늘날의 삶을 일궈낸 나 자신의
성실의 역사는 그 누구도 압류할 수 없는 가장 거대한 자산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혹독했던 20대 초반의
봉천동 옥탑방의 겨울은 나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 용광로가 되었다
사람에게 속아 눈물 흘려본 사람만이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전 재산을 잃어본 사람만이 돈의 무서움과 고마움을 동시에 알게 된다. 그 아픈 기억은 이제 50여 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
사기와 횡령을 당해 모진풍파와 고생을 겪었던 봉천동의 가슴 아픈 20대 시절이 쉽게 잊어지지는 않지만 치열하게 살아온 나를 강한 사람으로
만든 것은 분명하다
지금도 20대 젊을 적 돈을 벌면서 미래의 꿈을 설계했던 봉천역에 지하철을 이용해 종종 가본다
40년 전 봉천동이 너무나 많이 변해 버렸지만 청룡시장과 현대시장 근처 내가 손수 밥을 해 먹고
자취생활을 했던 세 곳을 들려본다
두 곳은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해 흔적도 없이 변해
버렸고 한 곳은 재건축을 하기 위해 빈집으로 초라하게
남아 있었다
서민들이 많이 살았던 봉천동에서 20대 청춘을 살았던
나에게는 추억이 많은 장소이다
구두를 수선하는 가겟집 아저씨가 해남 출신 소녀를
소개해주고 정규직은 아니었지만 우체국에 근무했다는 소녀와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원을 소개받았던 그곳들이 이곳 봉천동이다
철도 공무원으로 신규 발령받아 봉천동 단칸방에서
자취할 적에 대전에서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던 아내를
소개받아 약혼 후 내 자취방으로 왔던 곳이 바로 봉천역 근처 봉천동이다
결혼식 전에 신혼생활을 할 곳으로 경기도 부천의
단독주택을 방 두 칸을 650만 원에 전세를 구해 이사를 했지만 봉천동은 4년 동안 자취생활을 하면서 내 청춘과 애환이 쌓여있는 추억과 그리움이 많은 지역이다
육신은 힘들었어도 나의 20대 젊은 청춘이 추억으로 간직된 봉천동에 지금은 가깝게 지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이 수십 년 동안 살고 있어 더 방문해 보고 싶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