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렸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옆을 살필 틈도 없었다.
젊은 날의 나에게 삶은 전쟁터였고, 근검절약은 유일한 무기였다.
그렇게 땀방울로 일궈온 시간들이 어느덧 정년이라는 종착역에 닿았을 때, 나는 비로소 멈춰 서서 숨을 고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퇴직 후에도 10년, 나는 또다시 세상의 부름에 응하며 노년의 입구까지 쉼 없이 걸어왔다.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거울 속의 사내를 본다.
수필 속 냉혹한 조언들처럼, 거울 속에는 화려한 청춘 대신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은 노병(老兵) 한 명이 서 있다
사람들은 100세 시대라며 70을 '청년'이라 치켜세우지만, 내 몸이 느끼는 진실은 다르다. 아침마다 삐걱거리는 관절과 예전 같지 않은 기력은, 이제 인생이 '공격'이 아닌 '수비'의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서늘하게 일깨워준다.
인생의 후반전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과정이다.
젊은 날에는 하나라도 더 가지려 애썼고, 자식들에게 내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품 안의 자식은 결국 제 갈 길을 찾아 떠나는 타인이며, 그들에게 보냈던 과한 기대를 거두어들이는 것이 나를 지키고 자식의 행복을 약속해 주는 길임을 말이다.
서운함이 밀려올 때마다 나는 수필의 문장을 되새긴다.
끝까지 내 곁을 지킬 사람은, 미우나 고우나 내 투박한 손을 잡아줄 사람은 아내와 자식뿐이다 ㆍ
돈은 노년의 품격이며, 건강은 삶의 마지막 예의다.
평생을 아끼며 살아온 덕에 난파선 신세는 면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자본주의의 냉정한 바다 위에서 경제력 없는 노년이 겪어야 할 멸시를 생각하면, 젊은 날의 고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그러나 그 돈도 건강이라는 그릇이 깨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제 나에게 건강 관리는 선택이 아닌 생존이며, 가족에 대한 마지막 배려다.
내가 내 몸을 건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의 노년도 존엄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0의 노을은 아름답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의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나의 즐거움'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뜨거웠던 대낮의 태양은 강렬했지만 눈이 부셔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했다.
(젊음의 상징 군인때와 철도 재직 시)
하지만 해가 뉘엿뉘엿 지는 이 시간의 빛은 부드럽고 온화하다.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겼고, 작은 꽃 한 송이, 시원한 바람 한 줄기에 감사할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
수필은 말한다. 오늘이 내 남은 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라고. 그렇기에 나는 오늘을 비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독한 현실을 직시했기에, 남아있는 온기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앞으로의 시간은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남편, 어느 직장의 일꾼이 아닌, 오로지 '나 자신'으로 살아가려 한다.
비록 몸은 낡고 걸음은 느려졌을지언정, 내 마음속의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차가운 현실을 인정하되 그 속에서 나만의 온기를 품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평생을 성실로 버텨온 내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70이라는 문턱을 넘는 가장 아름다운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