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려

by 자봉

겨울이 깊다. 살을 에듯 불어오는 한파는 단순히 기온의 숫자가 아니라, 칠순을 목전에 둔 한 은퇴자의 어깨 위에 얹힌 삶의 무게로 다가온다.


3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공직자로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정년퇴직을 맞이했다. 국가에서 지급되는 연금과 그간 성실히 모아 온 예비 자금은 살아가는데 힘들지 않게 노후의 토대가 되어주어야 했다.


하지만 은퇴 이후의 삶은 생각보다 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다시 일을 해야 할까'라는 망설임 끝에 어제 찾아간 문래동 철강단지. 그곳에서 마주한 공기는 매서웠다.


기름 냄새와 쇳가루가 뒤섞인 찬바람은 살갗을 파고드는 물리적 추위를 넘어, 퇴직자라는 이름으로 서 있는 내 처지를 시리게 일깨웠다. 나는 왜 이 차가운 거리에서 다시 '생존'의 냄새를 맡고 있어야 하는가.

이 시린 마음의 틈을 타고 과거의 그림자가 고개를 들었다.


일찍이 일억 원이라는 거금을 시장에 묻어두고 보냈던 힘든 시간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확인하던 숫자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요동치는 붉고 푸른 선들에 내 하루의 기분과 생의 의욕이 저당 잡혔던 나날이었다. 명치끝이 아려오는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모든 것을 정리하며 나는 맹세했었다.


다시는 숫자의 노예가 되지 않겠노라고, 남은 생은 오로지 평온의 영토에서 살겠노라고.

그러나 인간의 결심은 겨울날 종이컵에 담긴 일회용 커피보다 빨리 식어버리는 법인가 보다. 몸살 기운이 엄습한 문래동의 퇴직자 연수실의 의자에 앉아, 나는 다시 금기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고등학교 친구 장근이가 추천해 준 종목의 유혹은 으스스한 오한보다 무거웠다.


천 주를 매수하고 얻은 오십만 원의 수익. 그것은 달콤한 보상이 아니라 독이 든 성배였다.

오십만 원을 벌었음에도 마음엔 평화가 없었다. '조금 더 버텼더라면 백만 원이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뱀처럼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잃으면 괴롭고 얻으면 더 얻고 싶은 것이 주식거래다


주식이라는 끝없는 굴레임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꼈다. 수익이 가져다준 것은 기쁨이 아니라, 내가 그토록 증오했던 '불안'의 재입장이었다.

그때 문득 삼여(三餘)라는 글귀를 떠올린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세 가지 여유로움이 있어야 한다는데, 하루는 저녁이 여유로워야 하고, 일 년은 겨울이 여유로워야 하며,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워야 한다고 했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겨울'이자 '노년'의 시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통장 잔고의 몇 자릿수 숫자가 아니라, 마음의 빈터에 내리쬐는 따스한 햇볕 같은 여유였다. 문래동의 찬바람보다 시린 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려 했던 비겁함이었음을 깨닫는다. 화면 속의 숫자는 결코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 오늘 밤 발 뻗고 잘 수 있는 고요한 잠자리와, 나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당당한 긍지야말로 진정한 '노년의 여유'인 것이다.

이제 다시 주식창을 닫는다. 오십만 원의 수익은 나를 다시 일깨워준 귀한 수업료로 치기로 했다. 따뜻한 차 한 잔으로 몸속의 한기를 몰아내며, 나는 비로소 숫자가 아닌 세상의 풍경을 바라본다.


인생의 해 질 녘, 가장 큰 자산은 흔들림 없는 마음의 고요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며, 나는 숫자의 감옥에서 걸어 나와 진정한 행복의 길로 찾아가기 위해 주식대신 인생 자서전을

집필하면서


하와이로 떠난 동창 장근이가 여행 잘하고 무사히 귀국하길 바라며 오늘도 방송국과 신문에 기고할 기구한 내 인생의 한 조각들을 하나하나씩 남겨

나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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