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현장에서 체험

by 자봉

일흔을 목전에 둔 나이, 남들은 산을 오르거나 공원 벤치에 앉아 소일할 법한 세월이라지만 나는 오늘도 서류 가방을 챙겨 들고 문밖을 나선다. 20대 청춘부터 몸에 밴 근면이라는 습관은 영하의 추위보다 무거웠고, 장기 계약직이라는 이름의 일터는 여전히 나를 살아있게 하는 유일한 심장 박동이다. 국가에서 실업급여를 챙겨줄 만큼 세월이 흘렀어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이고 싶어 현장으로 향한다.

어제는 유독 혹독한 한파가 영등포의 낡은 철공소 골목을 파고들었다. 내가 하는 일은 '중대재해처벌법'이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 사고의 위험 속에 방치된 5인 이상 50인 이하의 중소 제조업체들을 찾아가 안전 컨설팅을 해주는 일이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국가의 예산으로 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겠다는, 참으로 귀하고 선한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현실의 문턱은 동토(凍土)보다 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공짜로 해준다니까요. 사장님을 위해서, 사고 안 나게 도와드리는 겁니다.”



간절한 내 목소리는 기계 소음과 사장님들의 무관심 속에 힘없이 흩어졌다. 어떤 이는 바쁘다며 손사래를 치고, 어떤 이는 정부의 간섭이 싫다며 문전박대를 한다. 따뜻한 냉수 한 잔은커녕, 잡상인 취급을 받으며 돌아서는 뒷덜미로 한강의 칼바람이 사정없이 꽂혔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그저 귀찮은 불청객으로 보였을까.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정부를 원망하고 세상을 탓할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안타까움과 서글픔이 뒤섞인 긴 한숨을 내뱉었다.

오늘 아침, 결국 탈이 났다. 어제 무리하게 찬 바람을 맞으며 이곳저곳을 헤맨 탓인지 온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뼈마디가 쑤시는 몸살이 찾아왔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육신의 고통보다 나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은, 정작 현장에 필요한 정책들이 포퓰리즘의 파도 속에 겉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에서 현금이나 현물을 직접 쥐어줘야만 환영받고, 미래를 대비하는 안전 교육은 '귀찮은 것'으로 치부되는 이 풍토가 내 마음을 멍들게 한다.

자식들은 이제 다 커서 자기 앞가림을 하고, 아빠가 벌어다 주는 용돈 한 푼에 환하게 웃어준다. 그 웃음이 좋아 나는 오늘도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보며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보상은 돈 몇 푼이 아니다.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미리 대못을 박는 예방의 가치를 알아주는 건강한 공동체다.

주식 시장은 5,000포인트를 돌파하며 환호성을 지른다지만,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제조업의 현장은 여전히 영하의 기온이다. 친구가 추천해준 주식 한 종목에 작은 희망을 걸어보듯, 나 또한 내가 뿌린 안전의 씨앗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큰 나무가 되길 소망한다.



비록 몸살로 하루를 쉬어가지만, 나는 내일 다시 신발 끈을 묶을 것이다. 문전박대를 당해도, 냉대를 받아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나만이 할 수 있는 노병의 사명이라 믿기 때문이다. 부디 다음번 방문하는 공장에서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아닐지라도, 안전을 향한 진심 어린 고찰이 오가길 바랄 뿐이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면 반드시 봄이 오듯, 우리 사회의 안전 의식도 그렇게 조금씩 따스하게 녹아내리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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