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는 법

인생 후반기

by 자봉

칠순에 가까운 삶을 나는 정신없이 살아왔다.

뒤돌아보면 쉼표가 거의 없는 문장처럼, 숨 가쁜 세월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손에 쥐기도 전에 나는 삶의 일터로 내던져졌다.


선택이라기보다는 형편이 밀어 넣은 길이었다. 또래들이 교복을 입고 운동장을 뛰어다닐 때 나는 작업복을 입고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67세까지, 45년이라는 시간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가 되었다.

젊음은 생각보다 빨리 닳았다.


월급봉투는 늘 고마웠지만, 그 안에는 내 시간과 체력이 함께 접혀 들어 있었다. 휴일은 짧았고, 피로는 길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가족을 책임져야 했고, 가장이라는 이름은 늘 나를 재촉했다. “조금만 더.” “한 해만 더.” 그렇게 미루다 보니 어느새 칠순의 초입에 서 있다.

거울을 보면 세월이 먼저 말을 건다.

머리는 희끗해졌고 숱도 많이 줄었다.


예전에는 빗질 한 번이면 단정해졌는데, 이제는 빈 곳이 먼저 눈에 확 들어온다. 눈은 침침해 작은 글씨를 오래 보지 못해 돋보기를 사용해야 하고, 계단을 오를 때면 무릎이 조용히 항의한다.


몸의 속도는 확실히 느려졌다.

처음에는 그 변화가 서운했다.

아직 마음은 젊은데 육신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못내 억울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은 쇠퇴라기보다 허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45년을 쉼 없이 일한 사람에게 육신이 건네는 신호, “이제 좀 쉬어도 된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제야 나는 멈추어 서서 내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가.

그리고 이제 남은 시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젊은 날의 나는 늘 ‘해야 할 일’에 쫓겼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떠올려본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해야 할 일은 의무였고, 하고 싶은 일은 설렘이었다.

그 설렘을 나는 오래 미뤄두었다.

그래서 칠순의 초입에서 작은 계획표를 만들었다. 거창한 인생 설계가 아니라, 소일거리로 채운 주간 계획표였다.


월요일에는 스크린골프를 간다.

처음에는 공이 마음처럼 날아가지 않았다.

힘을 빼라는 말이 가장 어렵다. 인생도 그랬다.

너무 힘을 주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골프채를 잡고 서 있으면, 공 하나에 내 지난 세월이 겹쳐 보인다.


방향을 잡고, 숨을 고르고, 천천히 스윙한다.

예전처럼 멀리 보내지 못해도 괜찮다.

똑바로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화요일에는 사우나와 찜질방을 찾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굳어 있던 근육이 풀리듯, 마음도 함께 풀린다. 헬스장에서 가벼운 근력 운동을 하며 나는 내 몸과 대화를 나눈다. “그동안 고생했다.” 무리하지 않겠다고, 천천히 가겠다고 다짐한다.


수요일에는 도서관과 평생학습관에 간다.

신문을 넘기고 책장을 넘기며 세상의 흐름을 읽는다. 한때는 일에 치여 활자를 멀리했는데, 이제는 글이 나를 붙잡는다. 노트 한 권을 꺼내 짧은 문장을 적어보기도 한다. 살아온 이야기가 문장으로 변할 때 묘한 위로를 받는다.

오후에는 당구장을 찾는다. 큐대를 잡고 각을 재며 공을 보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집중을 요구한다.

공이 부딪히는 소리가 고요한 오후를 깨우고,

그 소리 속에서 나는 아직 살아 있음을 느낀다.


목요일에는 코인노래방에 들른다.

젊은 시절 즐겨 부르던 노래를 다시 불러본다. 고음은 예전처럼 올라가지 않지만, 그 시절의 감정은 여전히 가슴에 남아 있다.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찾는 날도 있다. 천천히 걸으며 오래된 유물 앞에 서 있으면, 사람의 삶이 얼마나 덧없고 또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금요일에는 경로우대 50%를 할인받아 영화관에 간다.

어두운 상영관에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인생이 잠시 내 것이 된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근처 커피숍에 앉아 한동안 여운을 곱씹는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브런치스토리에 일상생활을

글로 옮기는 그것이 요즘 내게는 작은 사치다.


토요일에는 등산을 한다.

높은 산이 아니어도 좋다. 동네 둘레길을 천천히 걷는다. 숨이 차오르면 잠시 멈춰 서서 하늘을 본다. 예전에는 정상을 향해 서둘렀지만, 이제는 과정이 더 소중하다.

발걸음 하나하나에 살아 있음이 실린다.


일요일에는 성당에 간다.

조용히 앉아 지난 한 주를 돌아본다. 감사한 일과 아쉬운 일을 함께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기도는 거창하지 않다. 그저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게 해 달라는 소박한 바람이다.

이 계획표의 목적은 성취가 아니다.

잘하려는 것도 아니고, 남보다 앞서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꾸준히, 무리하지 않고, 즐기며 사는 것이다. 한 박자 느리게, 한 템포 쉬어가며 나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다.

나는 이제야 ‘느리게 걷는 법’을 배운다.


젊은 날에는 속도가 미덕이었지만, 지금은 균형이 더 중요하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이미 충분히 달려왔으니.

칠순은 끝이 아니라 전환점이다.

앞만 보고 달리던 삶에서, 좌우를 둘러보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삶으로 바뀌는 시기. 해야 할 일에 매여 있던 시간에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시간으로 넘어가는 지점이다.


머리숱은 많이도 줄었지만 생각은 깊어졌고,

눈은 침침해졌지만 세상을 보는 마음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몸은 느려졌지만 걸음마다 여유가 실렸다.

나는 이제 경쟁하지 않는다.

대신 음미한다.

오늘도 계획표를 펼쳐 들고 천천히 하루를 시작한다.

빽빽하게 채우지 않는다.

비워 두는 칸도 남겨둔다.

그 여백 속에서

나는 남은 삶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갈 생각이다.


칠순의 초입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위해 걷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욕심 없는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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