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아래 흐르는 물

꿈속에 보인 남동생

by 자봉

자서전을 쓰기로 마음먹은 날,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어느 제약회사에서 원고 부탁을 받고도 기쁘기보다 묘한 두려움이 앞섰다.


남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수월했으나, 내 삶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감출 것인가. 나는 과연 떳떳한가. 스스로에게 묻다가 늦은 밤이 되어서야 눈을 붙였다.

그날, 나는 삼십 년 전인 1997년 남동생이 29세 꽃 다운 나이 때 너무 일찍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어젯밤 남동생의 묘를 꿈에서 보았다.

누가 먼저 흙을 걷어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관이 모습을 드러냈고, 마치 오래된 시간을 열어보듯 뚜껑이 열렸다. 놀랍게도 두렵지 않았다. 관 속에는 이미 세월이 다 지나가고 뼈만 가지런히 남아 있었다.


그 장면보다 더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뼈 아래로 맑은 자갈이 깔려 있었고, 그 자갈 위로 깨끗한 물이 또랑또랑 흐르고 있었다.


물은 탁하지 않았다. 흙탕물이 아니라 산골짜기에서 막 흘러내린 듯한 맑은 물이었다. 햇빛이 비친 것도 아닌데 반짝이는 느낌이 들었다. 고요하고, 평화롭고, 이상할 만큼 깨끗했다.

나는 그 물소리를 한참 듣고 있었다.

남동생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알 수 있었다. 원망이 없다는 것을.

세월이 그를 더 아프게 두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의 형제 인연이 썩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장남이다

어린 시절부터 ‘형’이라는 말은 이름보다 먼저 따라다녔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 부모님의 근심을 조금이라도 덜어야 한다는 생각을 일찍 배웠다. 내가 일찍 서울에 먼저 자리를 잡았을 때, 나는 동생을 데리고 자취를 했다 좁은 방이었지만 함께 웃고 함께 밥을 먹던 시간이 있었다.


넉넉하지는 않았으나 마음만은 넉넉하려 애썼다.

남동생은 나를 잘 따랐다.

나는 그 눈빛을 잊지 못한다. 믿음과 의지가 섞인 눈빛이었다. 형은 강해야 한다고, 형은 흔들리면 안 된다고 나는 스스로를 다잡곤 했다.

그러나 세월은 내 의지대로 흐르지 않았다.

동생은 1997년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다.


삼십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먼저 보냈다’는 사실은 언제나 마음 한쪽을 서늘하게 만든다.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움,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은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꿈속의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뼈는 남아 있었고, 그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상징을 곱씹어 본다.

살은 사라져도 뼈는 남는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직함과 명예,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지만,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는 뼈처럼 남는다.

나는 삼십삼 년의 공직 생활을 마쳤다.

큰 탈 없이, 징계 하나 없이 마무리한 후 훈장도 수여받았다는 사실이 때로는 자부심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었다. 겉으로 단정한 이력서 뒤에는 형으로서의 책임, 가장으로서의 부담, 한 인간으로서의 고독이 있었다.

꿈속에서 본 남동생의 뼈와 맑은 물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형, 당신의 삶도 그 아래에서 흐르고 있다.”

자갈은 거칠다. 인생도 그렇다.

때로는 모난 돌에 발을 베이고, 때로는 넘어진다. 그러나 그 사이로 흐르는 물이 있다면, 그 삶은 썩지 않는다. 나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애썼다.


누군가 보지 않아도, 내 양심만은 속이지 않으려 했다.

어쩌면 그 물은 동생의 용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화해였는지도 모른다.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자랑을 늘어놓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관을 열어 뼈를 마주하는 일이다. 감추고 싶었던 시간, 부끄러웠던 선택, 후회되는 말까지도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아직 흐르고 있는 물이 있는지 스스로 묻는 일이다.

나는 잠에서 깨어 한동안 이불 위에 앉아 있었다.

두렵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맑았다. 마치 오래 묵은 먼지를 털어낸 느낌이었다.


동생은 말이 없었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많은 것을 전해주었다.

‘이제 써도 된다.’

‘당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적어도 된다.’

자서전의 첫 장은 그래서 동생의 묘에서 시작된다.

죽음으로 시작하지만, 그 아래에는 흐르는 물이 있다. 멈추지 않는 시간, 씻겨 내려간 후회, 그리고 여전히 살아 있는 인연의 뼈대가 있다.

나는 이제 그 물소리를 따라가 보려 한다.

형으로 살았던 시간, 공직자로 버텼던 세월, 가장으로 견뎠던 날들.

기쁜 날보다 힘겨운 날이 더 많았지만, 그 모든 것이 자갈이 되어 내 삶의 바닥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위를, 아니 그 아래를

맑은 물이 조용히 흐르고 있다.

이 자서전은 그 물의 기록이다.

사라진 것보다 남은 것을,

후회보다 책임을,

눈물보다 다짐을 적어 내려가려 한다.

삼십 년 전 교통사고로 떠난 남동생이

자서전을 쓰려는 밤 내 꿈에 다녀간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얼굴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안다.

우리의 시간은 아직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

그 흐름 속에

작가의 이전글안양천의 봄 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