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와 목련들이 서로 앞 다투어 피어나는 계절 봄이 우리 곁에 찾아왔다.
이렇게 즐거운 봄 3월과 4월이 다가오면 즐거움과 기쁨도 많지만 봄 날처럼 즐겁기보다는 외로운 순간들이
많아진다.
이렇게 기쁨보다는 순간순간 외롭고 슬플 때가 많은 것은 먼저 떠난 누나와 남동생 둘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꽃피는 4월이 반갑기도 하고 보고 싶은 남매에 대한 그리움으로 순간순간 울적해진다.
50년 전 한적한 시골에서 초가집도 없애고 비포장도로도 확장하던 1960년대 새마을 사업이 한창이던 시절, 시골 사람들은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논, 밭농사를 지으며 힘들게 살아갔다.
그 당시는 노동력이 부족한 탓인지 한 가정에 보통 자녀들을 5~6명씩 낳아 힘들게 키우던 시절이었다. 우리 집도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예외일 수 없었다. 집은 가난했지만, 우리 부모님도 4남 3녀의 형제자매를 낳아 키우셨다. 나는 장남이고 위로는 누나가 한분 동생들이 5명이었다. 그렇다 보니 가난한 우리 집은 항상 먹을 것도 부족하여 누나는 초등학교 졸업, 여동생들은 중학교 졸업, 남동생은 간신히 고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태어난 고향은 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자그마한 산골 마을이었다. 고개를 들면 하늘만 보이는 심산유곡의 땅, 앞을 봐도 뒤를 돌아봐도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이다 보니 초등학교와는 거리가 10리 길이요, 읍내와는 30리 길이었다. 어쩔 수 없이 중학교 입학 후 읍내에서 자취생활을 하게 됐다. 매주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면 농사를 짓던 고향으로 가기 위해 완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산속 길, 언제나 무서워했던 묘지 옆을 지나 고향마을에 들어서면 가족들은 참 반갑게 나를 맞이해 줬다.
어린 형제, 사촌들과 함께 논밭에서 비료를 뿌리고 잡초를 뜯고 뙤약볕에서 농약을 치던 아버지가 든 분무기 줄도 잡아 드렸다.
이렇게 들녘에서 일하다 해 질 무렵 키우던 소를 끌고 나이 어린 동생들과 소 꼴을 하러 가던 그 시절이 몇 년 전 같은데 벌써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너무 빠르고 야속하기만 하다.
검정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지만, 농사를 짓던 부모님을 도와 드려야 하니 공부는 뒷전이었다. 무쇠솥에 밥을 짓고 아궁이에 나무를 집어넣어 성냥으로 불을 지펴 군불을 모아 잠을 자는 방바닥이 따습도록 온기를 넣어야 했다. 지게와 갈고리를 들고 산으로 가 소나무 잎을 모아 키보다 더 큰 나뭇짐을 메고 동생들과 함께 힘겹게 집에 돌아오곤 했다.
어린 나이에 동생들과 함께 일을 하고 나면, 금방 허기지고, 배가 고파 고구마와 감자를 삶아 먹고, 구워 먹고, 농번기에 군말 없이 힘들게 일하셨던 부모님 일을 도와줬던 누나와 동생들이었는데 지금은 함께 하지 못한다. 누나는 암과 투병하다가 교통사고로 남동생과 막냇동생은 교통사고로 20여 년 전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이렇게 꽃들이 피어나고 완연한 봄날이면 60대 중반인 나는 누나와 동생들과의 어렵고 힘들었던 어린 날들의
추억을 그리워하며 몇 남지 않은 사진으로 대화를 나눠본다. 고사리 같았던 손으로 함께 추수와 탈곡, 새끼꼬기. 풀베기 산에 가서 낫으로 풀을 베어 지게를 지고 집에서 키우는 일소들을 먹이기 위해 소꼴을 베어 왔던 일들........
여름 시작 전 함께 했던 모내기, 겨울이면 고드름 따먹기, 가을엔 추수하기 , 날씨가 화창한 날에 하던 자치기 놀이, 숨바꼭질, 알밤 줍기 모두 그 손짓 눈빛 하나하나가 엊그제 같은데 자꾸 생각이 나고 가슴이 아리도록 그립기만 한다. 추수 끝난 논, 밭에 나가 벼 이삭 줍기, 고구마와 감자 캐고, 참깨 털던, 배는 고팠지만, 추억이 많던 그 시절들이 왜 이렇게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고사리 같이 몸이 약했던 우리 남매들! 가슴 저리도록
그립고 보고 싶다.
아직 살아있었다면 막냇동생 병희도 결혼해서 50대 초반이고, 누나는 고희인 70세 일 것인데....
따사로운 봄볕을 쬐니 가족들은 승용차를 타고 봄꽃놀이를 많이들 가는데 우리 7남매 중 3남매와 부모님은
영영 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 버려 다 함께 모일 수가 없고, 남녘부터 북상하는 봄꽃들과 봄소식에 기분은
들뜬데, 매 순간마다 먼저 떠난 부모님과 3남매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고 보고 싶고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