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봉 May 31. 2024

어머님 영전에 바치는 훈장

      -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며-

우리나라의 상훈을 살펴보면 대상자의 공적내용, 그 공적이 국가사회에 미친 효과의 정도와 지위 등을

 참작하여 훈장과 포장으로 결정한다.

상장과 훈장은 공적의 내용뿐만 아니라 대상자의 사회적 지위 및 신망도, 연령, 특정분야에서 일한 기간 등

 매우 다양한 면들을 고려하게 된다.


 상장과 훈장은 그 영예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동일한 공적에 대하여는 훈장을 거듭 수여하지 아니하며, 전투 참가하여 뚜렷한 무공을 세운 경우이거나, 간첩수사로 국가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미 받은 훈장(포장 포함)과 동일종류의 동일등급 또는 그 하위등급의 훈장(포장 포함)을 다시 수여하지 않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훈장과 포장은 이렇게 개인들에게는 큰 영광이라고 할 수 있다.

영광스러운  훈장을 받게 된 사연은 내가  현역 사병으로 군 복무기간을 포함하여 공직 경력이 33년 이상되고 징계규정에 의해 징계 한건 없고, 형사처벌 전력도 없는 엄격한 심사를 거쳐 국가에서 대통령 명의로 훈장을 수여받았다.

또한, 훈장이란 기관장 표창과 장관 표창, 국무총리 표창, 대통령 표창, 포장, 그리고 최고의 영예인

 훈장이 있다.

훈장을 받게 된 사유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혼란하고  어려웠던 1980년대 강원도 동부전선에서

군 복무 34개월을 현역사병으로 복무하고, 가난을 극복하고 성실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보고자 공직의 길을 걷고 싶은 동기부여가 있었다.


공무원이 되고자 무조건 되는 것도 아니었기에,

공부를 할 돈도 필요했기에 행사장과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주차안내와 건물경비, 그리고 음식점과

운전기사들이 시간이 쫓겨 밥을 해결하는 기사식당에서 그릇을 닦고  허드렛일을 하면서 연탄으로 난로를 태워 온기가 있는 종로구 청진동

  사설독서실에서 숙식을 하면서 시간을 쫌쫌히 만들어 책상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경찰직과, 법원직, 검찰직, 지방행정직 등

심지어는 사법고시까지 닥치는 대로 공부하고 시험을 쳐서 경찰직과 법원, 김포국제공항  관리공단 등에 필기시험은 합격하였으나 면접과 최종시험에

낙방하여, 결국에는 철도운수직과 , 체신행정, 지방행정직 시험에 필기와 면접시험에 합격하여 이곳에서 두루 근무하면서 행정을 배우고 경력을 쌓으면서 30여 년 근무하였다.


지금은 컴퓨터가 있어 행정업무를 쉽게 처리할 수 있지만, 80년대 초에는 사무실에 타자기가 한대이어 모든 공문기안은 볼펜으로 작성하고 주민등록과 선거 관련 업무는 새벽 1시까지 종이사이에 먹지를 대고

볼펜으로 한글과 한문을 혼용해서 그림 그리듯 한자를 사용했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지방행정의 최 말단인 동사무소에서 전입과 주민등록, 예비군, 새마을. 서무업무들을 보면서 장마 때

폭우가 쏟아지면 비옷을 입거나 그냥 옷을 젖으면서 침수된 단독주택과 도로로 뛰어나가 양수기와 삽으로

막혀버린 빗물받이와 하수구를 뚷고 침수된 물들을 뿜어내고 흘러가도록 24시간 밤새도록 일을 했다.


어디 그뿐이었던가..

폭설이 내려 도로에 쌓이면 비상근무를 하면서 쌓인 눈을 밤새도록 쓸고 리어카에 실어 눈을 실어 날리고,

봄과 가을이면 상급기관의 환경정비 심사를 받느라 집에도 못 들어가고 장사가 끝난 주택가와 도로가 점포들의 지저분한 간판들을 청소하기 위해 물걸레를 수없이 삘고 쨔서 깨끗한 간판을 만들어 환경정비 점검에서

통과했던 일들,  행정직 공무원이 관공서에 발령받아 행정업무 처리만  줄 알았는데 빽 없는 행정공무원은

대부분 말단기관인 동사무소에 무조건 발령을 받아 주간에는 사무실 업무를 옆에 앉은 직원들에게 맡기고

남자직원들은 펜대신 리어카와 삽, 곡괭이를 들고 주민들이 몰래 버려 언덕처럼 적치된 쓰레기와 연탄을

치우고 퇴근시간 이후에는 밥 10사까지 밀려있는 보고사항이나 행정업무 처리를 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시간 외 수당이나 초과수당을 받지도 못했지만, 그 당시 모든 공직사회가 다 그랬었기에

불평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근무했다.


이렇게 행정직공무원으로 공개채용시험에 합격해 공무원의 길을 시작하면서 여러 해 재직하였으나

잘못된 제도들이 눈에 가시처럼 많이 보였다.

떳떳하게 부지런히 공부해 공개채용을 거쳐 시험에 합격되어 공무원이 된 행정직 공무원은 행정조직의

최말단기관인 동사무소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청소를 하고 각종 캠페인과 행사장에 동원되었지만,

각종 백과 특혜로 시험도 보지 않고 기능직이나 고용직으로 입직한 직원들은 좋은 정권을 만나고

노동조합이 만들어져 으싸으싸 하고 단결권이 생겨 사측인 임용기관에 요구하는 것도 많아져 결국에는

자기들의 밥을 찾아먹는 상급기관에 근무한다고 목에 꽤나 힘을 줬던 이들이 언제부터인가는 행정직으로

전환 후 동장이나 과장 국장까지 승진해 관복을 누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공무원도 관복이 있어야 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행정직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대다수의 수험생들이 노량진학원가에서 수험공부를

하면서 종이컵에 컵밥을 먹으면서 힘들게 공부해 행정직 공무원으로 입직했는데.......


친, 인척의 배경과 관운이 좋아 정상적인 경로가 아닌 곳으로 공직에 임용되어 행정직 공무원으로 특별

전직되어 관리자로 승승장구했으니 조상복과 관복 그리고 하늘복을 타고난 운 좋은 공무원들도 참 많다.


일을 하다 보면 평등하지 않고 불평등한 것이 평등한 것처럼 보편화될 때도 있지만 이러한 잘못된 제도들이

개선되기는커녕 근래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니 잘못된 것은 확실히. 잘못된 것이다.

제도를 고치고. 상식에 맞게. 변화되어야. 한다


내가 속해있는 군은. 무늬만 행정직 공무원이지

하는 일은 기능직보다 못한 잡급직 일을 하고 있어 실망스러웠다ㆍ


 사표를 던지고 나오고 싶은생각이 수없이 많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참고 견디면서  힘들고 슬픈 과정들을 거쳐  오랜 세월을 보내다 보니 그래도 성실했는지 계 이력과 형사처벌도 없다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재직하였다는 징표로 정부에서 행정 5급 4급 공무원인  사무관과 서기관 급에 수여하는 녹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

훈장을 수여받았다는 것은 공직생활을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근무하였다는 징표로 대한민국 정부의  

가장 큰 상이고 보람도 크다.


내 인생에 가장 보람 있고 자랑스러운 훈장을 받으니 지금은 보고 싶어도 뵐 수 없는 어머님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어려운 형편에도 나를 평생 사랑으로 키워주신  어머니를 찾아뵙기 위해 훈장증과  훈장, 손목시계를

준비하여 어머님이 잠들어 계신 광주 영락공원 추모원으로 내려갔다.

어머니는 2012년 이륜차 사고에 의해 요양원에

계시다가 2016년 추석 무렵에 별세하셨다.


보이는 곳은 하늘뿐인 산골 오지에서 공무원이 된

큰아들을 항상 자랑하면서 즐겁게 사셨던 어머님

이셨는데  공직생활을 영광스럽게 끝내고

정년퇴직한 아들의 인사를 받은 어머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좋아하실 것 같았다.


정년 때 받은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훈장을 우리 집 벽에 걸어 놓고 항상 정직하고 바르게 살자고

마음 되새겨 본다,  값진 훈장이라 너무 좋다




작가의 이전글 부부간에 이혼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하지 말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