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없는 전선 지지부진한 성과
곧 있으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3년째로 접어든다.(글 작성일 기준) 전쟁의 전반적인 상황은 러시아가 조금씩 진격하고 있기는 하나 전선의 큰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교착 상태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위 사진은 전쟁이 시작된 2022년 2월 24일부터 2024년 11월 14일까지의 전선을 나타낸 지도다. 북쪽의 파란색 지역은 2022년 4월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수복된 수도 키이우와 그 인근 지역이고 남쪽과 북동쪽의 파란색 지역은 하르키우주와 헤르손주로 2022년 9월과 11월 역공세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수복한 지역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진격 속도가 빨라 우크라이나의 전선이 급격히 붕괴하고 있다고 하며 심지어 2024년 12월 말 국내 언론에서는 포크로우스크 함락 위기설까지 보도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동부 전선 붕괴와 패배가 임박했음을 알렸다. 실제로는 어떨까? 아래 영상과 사진을 보자.
위 영상은 2025년 2월 한 달 동안 러시아군이 도네츠크주 포크로우스크 방면에서 진격한 정도를 보여주는 영상이다.
위 영상은 2024년 8월 1일부터 2025년 1월 12일까지 러시아군이 포크로우스크 방면으로 진격한 모습을 보여준다.
위 사진은 2024년 2월 12일부터 2025년 2월 12일까지 1년간 포크로우스크 방면에서의 러시아의 진격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이렇게만 보면 국내 언론들의 보도가 맞아 보인다. 이제 전반적인 점령지 양상을 보여주는 지도를 보자.
위 사진은 러시아군이 동부전선에서 공세를 가해 바흐무트를 함락시킨 2023년 12월의 모습을 보여준다.
위 사진은 바로 앞서 제시한 2023년 12월로부터 약 1년 2개월 이후의 시점인 2025년 2월 12일 러시아군의 전반적인 점령지 영상을 보여주는 지도다. 1년 2개월 동안 눈에 띄는 차이라고는 도네츠크주 방면에서 포크로우스를 향해 살짝 튀어나와 있는 돌출부가 전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주류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러시아가 쏟아붓는 것에 비해 전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우크라이나가 필사적으로 저항을 하고 있기에 러시아의 진격 속도는 투입한 물량에 비하면 느리다.
오히려 눈에 띄는 변화는 쿠르스크주 내 우크라이나의 점령지 축소다. 아래 영상은 2024년 8월 11일부터 2025년 3월 12일까지 쿠르스크주 내 우크라이나의 점령지 변화 영상을 보여준다.
4월 15일, 쿠르스크주 내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위 영상에서의 마지막 날짜인 3월 13일 때보다도 더 줄어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러시아라고 해도 무한정으로 병력을 투입하기 어렵다. 일단 위에서 언급한 빠른 소모 속도에 맞춰 병력을 추가 투입하려면 대규모 징병을 하거나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최소한 부분 징집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러기 위해서는 징집에 대한 금전적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러시아의 재정 상황에서 저 많은 징집병들에게 참전 대가 수당을 일일이 다 지급해 주기에도 무리가 있고(실제로도 제대로 수당이 지급되지 않아 반발을 산 사례들도 여럿 있었다.) 징집을 또 하면 다시 인재 유출과 노동력 유출이 일어날 것이 뻔하며 이러한 여러 요인들이 복잡하게 작용해 러시아 국민들의 반감을 살 수 있고 결과적으로 푸틴의 정치적 체면에 위험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러시아 입장에서는 무제한적으로 병력을 수급해 공세를 지속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즉, 러시아의 공세도 둔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북한과 포괄적 동반자 협정 즉 북•러 조약을 체결해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병력을 지원받고,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생활 용품, 군사 기술, 달러와 같은 외화 등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북한도 러시아에게 무한정 병력을 보내 줄 수 없고 러시아 또한 북한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북한도 러시아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아질 것을 알기에 러시아 입장에서도 북한으로부터 무제한적으로 병력을 보급받기 힘들다. 그렇기에 이러한 방법도 일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이란에게 손을 벌리기에는 최근 이란 내 중도 우파 성향이자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는 페제쉬키안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기에 대놓고 반서방 행보를 보이는 러시아를 지원해 주기 어렵다. 더욱이 트럼프가 당선된 상황에서 이란 미국 간의 핵 합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때문에라도 라이시 전 대통령처럼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해 주는 것도 사실상 힘들다.
중국에게 의존하자니 이 또한 힘들다. 전쟁 이후 서방 기업이 러시아에서 철수하면서 그 공백을 중국 기업이 채우자 러시아 경제가 중국 경제에 종속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푸틴 입장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적이었던(냉전 시기 중-소 국경 분쟁과 제국주의 시절 베이징 조약으로 인한 연해주 할양 등) 중국이 러시아 경제를 잠식해 가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중국 또한 미국이라는 공공의 적을 상대로 러시아랑 손은 잡고 있지만 같은 이유로 불편한 동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미국과의 장기적인 경제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현실(외화 보유량을 늘리고,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응해 여러 경제적 대비책을 마련하고, 늘어나는 지방 정부의 부채를 감당해야 하고, 트럼프의 당선으로 인해 전통적인 미국 동맹국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불안감을 이용함으로써 이들을 상대로 치열한 외교 전을 펴 미국과의 분란을 조장하는 등) 때문에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지원을 해주기가 더 까다로워졌다. 또한 중국은 이러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본인이 중재시켜 평화를 이룩해 미국을 상대로 도덕적인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 전쟁을 활용하려 하고 있으므로 실질적으로 러시아를 전적으로 밀어주는 것이 불가능하다.
인도, 브라질과 같은 제3세계도 외교적으로는 러시아를 두둔하고 있지만 전통적으로 이들은 중립•실리 외교를 통한 자국의 발전과 그러한 발전을 바탕으로 지역 강국(지역 패권국)이 되는 것이 목표이기에 러시아에 병력을 파견하거나 무기를 주는 등의 조치는 취하기가 어렵다. 만약에 그렇게 해서 서방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그건 그거대로 인도, 브라질에게 손해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도 또한 한국처럼 155mm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비밀리에 제공해 준 것이 드러났는데 이는 인도와 브라질과 같은 제3세계 국가들의 외교적 노선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인도가 러시아로부터 헐값에 천연가스를 사들여 비축함과 동시에 서방과의 관계도 고려해 서방이 요구한 대로 비밀리에 155mm 포탄을 지원해 준 사실은 서방, 러시아 둘 중 어느 세력의 눈 밖에도 나지 않으면서 이들로부터 경제적 투자와 지원을 받아 자국의 발전을 꾀하려는 인도의 복잡한 셈법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시리아 내 반군 세력 중 하나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알 아사드 정권의 정부군을 상대로 기습 공격을 감행해 시리아 내 제2도시인 알레포와 제4도시인 하마를 점령하고 수도인 다마스쿠스를 점령해 러시아가 지원하던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했다. 이러한 기습 공격이 성공한 이유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전력을 쏟아붓는 상황 때문이었다. 즉 러시아의 시선이 분산된 틈을 타 시리아 내 반군 세력이 저러한 공세를 펼 수 있었던 것이다. 러시아에게는 이게 또 다른 변수다. 첫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만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들 수 있다. 즉 전력을 분산시켜야 하는 것이다. 둘째, 시리아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포기하기에는 정치적•외교적 리스크가 너무 크다. 반대로 우크라이나 때문에 시리아를 포기하기에도 러시아의 외교적 입지와 체면 그리고 그 영향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손해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위와 같은 상황은 러시아에게 외교적 딜레마를 안겨다 줄 수 있으며 이러한 딜레마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게 만든다.(시간이 지난 지금 러시아는 시리아를 포기하고 우크라이나에 온전히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알아사드는 정권 붕괴 직후 러시아로 망명했고 러시아는 이를 받아줬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러 사실들을 감안해 보면 여러 언론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동부 전선이 붕괴해 갑자기 우크라이나가 패망한다는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이러한 상황이 도래할 경우 본인들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기 때문에 저런 상황이 벌어지도록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미사일 사거리 제한 완전 해제도 이러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 내 후방 기지를 공격할 수 있도록 해 우크라이나의 전선이 붕괴하는 것을 막고 현재의 전반적인 교착 상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다만 이러한 결정이 좀 많이 늦었다는 감이 있으며 자국 내 여론과 대선 결과에 따른 다분히 정치적인 판단이라는 것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 회의적인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이 모든 상황을 감안해 본다면 현재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완전 승리로 끝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패배로 끝나기도 어려우며 그렇게 끝내기에는 서방과 미국이 납득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안 그래도 불안정한 국제 정세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만족할 수 있을 만한 조건을 내걸면서 이와 동시에 서방과 미국 더 나아가 그 동맹국들이 용납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의 휴전 협상을 체결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적어도 변수가 생겨 우크라이나의 완전 승리로 또는 적어도 우크라이나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끝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협상을 진행할 수 있을까? 경제 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내거는 것도 일종의 방법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