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검의 등장과 활약
총검의 경우 장창에서 기원을 한 거였는데 애초 장창이기병의 공격을 막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알렉산더 대왕이 운용했던 장창병(창의 길이만 5m)과 그리스 시대의 중장 보병(창의 길이가 2~3m)이 있다 화약 무기가 등장한 이후인 17세기에도 장창병은 존재했는데 이들은 포수를 기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존재했었다. 17세기 당시의 보병용 총기는 전장식 소총으로 장전 속도가 느려 연사력이 느렸고 반동도 심해 거치대에 놓고 쏘았기에 휴대성과 정확도도 많이 떨어졌다. 그렇기에 말을 타고 빠른 속도로 돌격해 오는 기병에 대항해 응사할 시간이 부족하여 스스로를 지킬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장창병 덕에 기병들은 포수들에게 접근할 수 없었고, 창에 찔리거나 적 포수의 사격에 맞기 전 짧은 시간 안에 휠락 머스킷을 쏘거나(카라콜 전술) 칼로 벤 후 본진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18세기 때 총기 성능이 향상되어 반동이 적어져서 흔들림이 덜해져 거치대를 없앴고 그와 동시에 경량화/소형화를 거치면서 휴대성이 증대되어 총기 끝에 검을 부착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장창병은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총기의 사정거리 문제 때문에 전투 발생 시 50~100m가량 접근해 쏴야 했고, 이렇게 근접할 때까지는 군악대의 음악에 발맞춰 오와 열을 맞춘 상태에서 진격해야만 했다. 그러다 50~100m 안에 들어오면 서로 응사를 반복하다 총검을 부착한 뒤 백병전을 치른 후 사기가 먼저 떨어져 대열이 무너지거나 먼저 후퇴하는 쪽을 기병이 쫓아가 섬멸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치렀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병에 대항할 방법은 없었을까? 있었다. 총기 끝에 검을 부착해 사각방진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병이 타고 있던 말은 총끝에 부착된 날카로운 칼날을 보고 섣불리 접근하지 못해 허둥대다가 말에 타고 있던 사람을 떨어뜨리거나 아니면 되돌아가거나 사람의 말을 안 듣고 이리저리 폭주하여 대열을 흩트려 놓았다. 그리고 이에 더해 다가오는 기병에게 총을 몇 번만 쏘면 말이 총성을 듣고 놀라 자빠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러한 방식이 먹히는 이유는 말은 시각•청각적으로 예민하기 때문이다. 이 단점을 활용한 것이 바로 저러한 전술인 것이다. 이럴 경우 결국 기병은 사각 방진만 뱅뱅 돌다가 적 한 번 격파해 보지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영상물이 러시아 데카브리스트 봉기를 다룬 <구제 동맹>이라는 영화와 미국 독립 전쟁을 다룬 <패트리어트>라는 영화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을 다룬 <전쟁과 평화>라는 다큐멘터리다.
현대전에서도 총검은 여전히 근접전 무기로 잘 쓰인다. 오죽하면 총검술을 아직도 가르칠까… 총검과 총검술은 탄약이 소진됐을 때 전쟁터에서 우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근접전•백병전할 때도 필수다. 그렇기에 총검은 전쟁터에서 뗄래야 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