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1•2

노르웨이의 특징과 탄생 그리고 지속

by 성주영


들어가기 전: 오늘은 내용의 연속성 때문에 특별히 2개의 작품을 연달아 업로드했습니다. 재미있게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제목: 오로라 1


저기 북쪽으로 가보자.


그럼 뭐가 나올까?


흔히들 “북극이 나오겠지.”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북극이 아니다.


어쩌면 북극보다 더 고결한 것을 나는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로라가 참 예쁜 곳


썰매와 순록, 통나무로 이루어진 집, 번화한 도시


이러한 이질적 풍경이 이질감 없이 어우러진 이곳


연어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곰은 이를 잡아먹으며


그곳 사람들은 이 모습을 커피 한 잔과 함께 여유를 가지며 지켜본다.


장엄한 호수와 뽀얀 눈송이가 곁들여진 피오르


마치 살짝 녹은 팥빙수와 같아 보인다.


인공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


참으로 우아하고 아름답다…





제목: 오로라 2


지금의 오로라 왕국은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과거사가 불륜만큼이나 꽤 복잡하다.


북방의 사자, 시베리아 호랑이, 철십자를 꿰찬 독수리, 유럽의 정복자 등


수많은 존재가 눈독을 들였고 그때마다 파괴와 부활을 반복했다.


그래서 그럴까?


이곳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마치 호저와 같다.


단단하면서 예리하고 예리하면서 날카롭다.

여유 있는 듯하면서 결단력까지 갖췄다.


자원의 보고를 발판 삼아 내실도 갖췄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외딴섬이 하나 나온다.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아는 그곳


그곳에서 시베리아 호랑이와 오로라 왕국은 서로 으르렁 거리고 있다.


최근 자작나무 숲과 북방의 사자가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자 여기에 함께 빨려 들어간 오로라 왕국


과연 겨울 왕국을 연상케 하는 이 오로라 왕국은 안전해질 수 있을까?



해설: 위 작품은 노르웨이와 관련된 작품입니다. 노르웨이는 그 특유의 자연환경으로 유명하죠. 노르웨이의 자연 경관 하면 크게 두 가지가 있죠. 첫째, 오로라이고, 둘째, 피오르 지형입니다. 노르웨이에서 오로라가 관측되는 이유는 태양에서 방출된 태양풍이 지구의 자기장에 이끌려 북극 지역 대기권으로 진입하면서 공기 분자와 충돌하여 빛을 내기 때문입니다. 피오르 지형의 경우 빙하가 침식한 U자형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와 생기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노르웨이 북해와 인접해 있고 빙하도 눈도 많은 곳이죠. 그래서 노르웨이가 피오르 지형으로 유명한 것입니다. 노르웨이는 또한 연어로도 유명합니다. 노르웨이는 차가운 북극해 해류와 따뜻한 멕시코 만류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덕에 연중 일정한 수온과 깨끗한 바닷물을 보유하고 있죠. 거기에 더해 노르웨이는 엄격한 품질 관리 체계까지 갖추고 있어 연어 양식에 있어 최적화된 곳입니다 게다가 노르웨이는 극지방이라 북극곰과 불곰의 서식지로도 유명합니다. 오로라 1은 노르웨이의 이러한 자연적•지리적 특징에 초점을 맞춘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르웨이는 어떻게 형성된 걸까요? 시간은 거슬러 올라가 칼마르 연맹까지 올라갑니다. 칼마르 연맹은 현재 북유럽 3개국(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연맹입니다. 오늘날의 북유럽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때는 14세기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내우외환(한자 동맹과의 경제적 이권 다툼, 귀족들 간의 정치적 내분 등)을 겪고 있던 시절 덴마크에서는 마르그레테 1세가 이로한 혼란기 와중에도 왕권을 강화 중이었고, 노르웨이의 경우 후계자 문제로 정치적 내분이 심화되어 국력이 약화된 상황이었으며 스웨덴의 경우 귀족들의 정치적 분열과 한자동맹(뤼베크, 함부르크 등의 거점 도시들을 중심으로 북해•발트해 무역을 주도한 독일 상인 조합이다.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때 지중해 장거리 무역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가진 상인 조합이었다.)을 통한 독일 상인의 영향력 확대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때를 틈 타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1세가 1387-1389년까지 덴마크와 노르웨이 왕위를 겸임하고 스웨덴에서도 귀족들의 내분을 이용해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1397년 스웨덴의 칼마르에서 조약이 체결되어(이를 칼마르 조약이라고 부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이 3개국이 영구적 연합에 동의, 한 명의 왕이 3개국의 왕위에 오르며, 각국의 법과 제도는 존중한다는 특이한 연맹 체제가 탄생합니다. 이게 바로 칼마르 연맹인 것입니다. 이렇게 오래갈 것 같았던 칼마르 연맹은 얼마 안 가 스웨덴의 불만을 균열의 조짐이 보입니다.


당시 한자 동맹은 발트해•북해 무역(주로 광물, 목재, 모피, 곡물 등을 사고 팜.)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스웨덴의 귀족들과 상인들은 자국 내 팔룬 구리 광산에서 나는 구리를 한자동맹과 교역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덴마크는 이러한 한자동맹의 영향력을 줄이고 스웨덴과 한자동맹 간의 무역 활동에서의 이권을 독점하려 했고 이를 위해 통제를 강화•무역과 관세 체계를 자국 중심으로 개편했습니다. 이에 더해 덴마크는 스웨덴 내 자원(광물, 목재 등)을 수탈했고, 스웨덴 귀족의 자치권을 침해하며 요새•영지 등을 몰수•접수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스웨덴의 귀족과 상인 그리고 한자동맹은 덴마크의 이런 조치로 자신들의 이익이 줄어든다고 판단해 불만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불만이 누적되던 중 스웨덴의 독립을 초래한 결정적 사건이 발발합니다. 1520년에 ‘스톡홀름 피바다‘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당시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 2세가 스웨덴 귀족 약 80여 명을 학살한 사건) 이로 인해 스웨덴의 민심은 완전히 돌아섰고 스웨덴의 구스타브 1세 바사가 독립군을 이끌고 봉기(스웨덴 독립 전쟁/1521-1523) 여기에 한자동맹 특히 뤼베크라는 도시가 군자금과 무기 함선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줍니다.(덴마크의 패권을 견제하고 스웨덴과의 무역 정상화를 위해서이다.) 결국 스웨덴은 독립하고 구스타브 1세 바사가 스웨덴의 초대 왕으로 등극하자 그는 한자동맹에 경제적 특권을 대거 부여합니다.(세금 감면, 관세 혜택 등) 스웨덴이 떨어져 나간 후 칼마르 연맹은 사실상 해체 이후 스웨덴은 나중에 스웨덴 제국으로(북방의 사자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통치하는 그 스웨덴 제국입니다.) 성장하고 남은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연합왕국으로 탈바꿈해 이로써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이 탄생합니다.


이후 덴마크-노르웨이 연합 왕국은 신성로마 제국에서 페르디난트 2세의 친카톨릭 정책으로 30년 전쟁이 발발하자 첫 번째 타자로 참전합니다. 당시 국왕은 크리스티안 4세로 참전 명분은 신성로마제국 내 개신교 세력을 도와주겠다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종교 내전으로 신성로마제국이 혼란한 틈을 타 신성로마제국의 북부 영토를 장악해 발트해의 제해권을 쥐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은 신성로마제국의 카톨릭 세력에 의해 패배하고 결국 뤼베크 평화 조약을 체결 전선에서 이탈합니다. 이때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이 평화 조약에서 신성로마제국이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에 전쟁 배상금을 물리지도 않았고, 포로 즉시 교환 등의 조건을 내걸며 선처해 주자 이에 감복한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은 신성로마제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위해 30년 전쟁 내도록 중립을 지키거나 혹은 카톨릭 세력 측에 참전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30년 전쟁에서 프랑스의 참전으로 개신교 세력이 승리해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고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은 별 소득 없이 30년 전쟁을 마무리합니다.


이후 제2차 북방 전쟁(1655-1660)에서 대홍수(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겪었던 정치적•외교적 내우외환)로 정신없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왕위를 노리고 침공(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겪었던 대홍수 중 일부)하자 반스웨덴 국가라 할 수 있는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이 독일의 여러 제후국들과 루스 차르국과 손을 잡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편에 서서 싸웁니다. 그 결과 스웨덴은 폴란드 왕위 확보에는 실패하나 리보니아에 대한 영유권은 들고 갑니다. 그리고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은 스코네를 스웨덴 제국에 의해 빼앗깁니다. 또한 칼 11세 구스타브 시절 스코네 전쟁(1674-1679)에서는 지나친 원정과 대외팽창으로 경제적 위기에 빠진 스웨덴 제국과 루이 14세의 프랑스 왕국이 동맹을 맺고 독일 북부에서 전쟁을 일으켰으며 이에 위기감을 느낀 반스웨덴 국가였던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은 네덜란드와 동맹을 맺고 이에 대항하여 함께 싸웁니다. 스코네는 원래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의 영토였지만 제2차 북방 전쟁에서 스웨덴에게 빼앗겼고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은 이런 스코네를 스코네 전쟁을 통해 탈환할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1678년 스웨덴과 네덜란드 간에 체결된 메이헌 조약으로 네덜란드가 이탈하고 1679년 프랑스 왕국의 중재로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과 스웨덴 간에 퐁텐블로 조약이 체결되어 휴전합니다. 그 결과 스코네에 대한 스웨덴의 지배권은 국제적으로 재차 인정되어 사실상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의 패배이자 스웨덴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8세기가 되자 대북방 전쟁(1700-1721)이 시작됩니다. 스웨덴 제국의 칼 12세 구스타브가 루스 차르국의 표트르 대제를 상대로 발트해의 제해권 확보를 위해 격돌합니다. 나르바 전투에서 스웨덴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격파하고 이때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도 역시나 패배합니다. 이후 스웨덴은 폴타바 전투에서 우크라이나 코자크 세력인 이반 마제파와 함께 러시아 제국에 대항하지만 실패합니다.(우크라이나의 코자크 세력은 이미 루스 차르국에 종속된지라 스웨덴을 등에 업고 독립하고자 싸움. 하지만 패배함으로써 오히려 종속이 강화되는 계기가 됨.) 그 결과 칼 12세 구스타브는 오스만 제국으로 피신합니다 그리고 당시 오스만 제국의 술탄 아흐메트 3세와 동맹을 체결하고 오스만 제국의 원조로 프루트강 전투에서 승리하나 오스만 제국이 루스 차르국과 단독 강화를 맺어 동맹에서 이탈한 후 프로이센 왕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루스 차르국, 등의 반격으로 스웨덴 제국은 결국 패배합니다. 이때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 역시 이 반격에 동참합니다. 그 결과 스웨덴 제국은 발트해에 대한 제해권을 상실했고 루스 차르국이 발트해에 대한 제해권을 들고 갑니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 시기 나폴레옹은 1806년부터 1807년까지 독일-폴란드 원정을 단행합니다. 이때 러시아 제국은 나폴레옹 휘하 프랑스한테 대패하고 틸지트 조약을 체결해 명목상 프랑스와 동맹국이 됩니다. 이 시기 스웨덴은 발트해에 대한 제해권을 들고 오기 위해 대프랑스 동맹에 가담하지만 1807년 틸지트 조약으로 프랑스와 명목상의 동맹을 체결한 알렉산드르 1세 치하 러시아 제국이 스웨덴 제국으로부터 핀란드를 빼앗아 옵니다.(핀란드 전쟁) 나폴레옹은 틸지트 조약에 근거해 이를 묵인합니다. 하지만 대륙 봉쇄령(베를린 칙령)을 어긴(1810년)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를 응징하고자 나폴레옹이 1812년 러시아 원정을 단행해 보로디노 전투를 함으로써 러시아 제국과 사이가 안 좋아지고 러시아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대프랑스 동맹에 가담하지만 스웨덴은 여전히 러시아에 의해 빼앗겼던 핀란드를 돌려받지 못합니다. 1814년 나폴레옹이 서서히 몰락하자 나폴레옹 치하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던 덴마크-노르웨이 연합왕국은 덴마크 왕국과 노르웨이 왕국 둘로 쪼개지고 대프랑스 동맹에 가담했던 스웨덴이 핀란드 대신 노르웨이를 들고 갑니다. 이리하여 1814년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이 탄생합니다. 하지만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은 1905년에 해체되고, 양국은 각자의 길을 걷습니다.


이렇게 노르웨이는 덴마크, 스웨덴과의 지긋지긋한 공생 관계를 끝내고 홀로서기에 들어갑니다. 노르웨이가 스웨덴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 9년이 지난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노르웨이는 곧바로 중립국을 선언 협상국과 동맹국 양측에게 자원을 공급하며 경제적 이익을 취하면서 별 탈 없이 1차 세계대전을 잘 넘깁니다. 하지만 문제는 2차 세계대전 때였습니다. 나치는 1940년 덴마크를 6시간 만에 함락시키고 곧바로 베저위붕 작전을 통해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를 장악합니다. 그 결과 노르웨이의 피난민들은 스웨덴으로 몰려들었고 당시 노르웨이의 국왕 호콘 7세는 국내에서의 친나치 세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침공 초기 항전을 지속하며 나중에는 영국 런던으로 망명해 망명 정부를 세우고 항전을 이어갑니다.(이런 이유로 호콘 7세는 지금도 노르웨이에서 항전의 아이콘입니다./여담으로 당시 영국은 유럽에 남은 마지막 연합국이었기에 망명 정부의 집합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드골의 망명 정부가 있죠.) 이런 호콘 7세의 항전에 응하듯 노르웨이 내부에서도 레지스탕스들이 조직되었고 나치에 대한 저항을 이어갑니다.(우리가 레지스탕스 하면 프랑스만 생각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가 가장 규모가 크고 체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지스탕스는 당시 나치의 지배에 들어간 유럽 국가들 거의 대부분에 존재했습니다.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폴란드 등 말이죠. 여담으로 레지스탕스는 영어로 저항을 의미하는 resistance의 프랑스식 발음입니다.) 그런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940년부터 1945년까지 5년 간 노르웨이는 나치 점령기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1944년 6월 6일 서부전선의 연합군에 의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시작으로 같은 해 8월 프랑스가 해방되고 이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도 나치로부터 해방됩니다. 그 결과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지하 벙커에서 자살하고 동부 전선의 소련군이 베를린에 입성하자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는 비로소 패망합니다. 그리고 노르웨이 역시 해방되죠.


이후 곧바로 냉전이 시작되자 트루먼 독트린의 일환으로 노르웨이 역시 마셜 플랜을 통해 경제 원조를 받고 전후 재건에 착수합니다. 얼마 안 가 1949년에 NATO가 창립되자 여기에 초기 회원국으로서 가입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현재의 노르웨이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노르웨이는 1960년대부터 개발된 북해 유전으로 석유 역시 풍부한 산유국이고 지하자원 역시 풍부한 자원의 보고입니다. 이 덕에 높은 수준의 1인당 GDP를 포함해 탄탄한 경제력을 갖춘 노르웨이는 투명한 정치 체제 그로 인한 국민과 정치인들 간의 탄탄한 신뢰와 함께 수준 높은 복지가 제공되고 있으며 이러한 복지 정책과 북유럽 특유의 포용성과 관용 그리고 다양성과 개방성으로 항상 행복 지수 순위에서 7-8위 정도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발발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핀란드•스웨덴과 함께 다시 한번 안보적•지정학적 위기에 처했고 여기에 더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노르웨이 수산물에 15%의 관세 부과를 공표하면서 노르웨이의 평화애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NATO 회원국들을 향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방위비 분담•국방비 증액 요구까지 겹치면서 노르웨이 역시 스웨덴•핀란드와 함께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러시아가 북해(북극해)에서 해군 활동을 늘리며 북해에 위치한 노르웨이령인 스발바르 제도 인근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방위비 분담과 국방비 증액 요구에 응해 노르웨이 역시 해군 확장 등의 군비 증강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노르웨이가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에 따라 북유럽과 동유럽의 안보 환경과 지정학적 위기 역시 변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노르웨이에 관심이 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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