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성

하나가 된다는 것의 모순

by 성주영


세계화… 귀가 따갑도록 뉴스에서 많이 봐왔던 그 단어…


현존하는 80억 명의 인구에게 세계화는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에게는 좌절을


누군가에게는 실패를


누군가에게는 슬픔을


누군가에게는 기회를


누군가에게는 성공을


누군가에게는 기쁨을 줬을,


누군가에게는 적군이고 누군가에게는 아군일


세계화


이제 이 단어는 개개인을 넘어서 국가라는 거대한 유기적 생명체에게까지도 영향을 끼친다.


한 나라가 아프면 다른 나라도 아프고


한 나라가 무너지면 다른 나라도 무너진다.


한 나라가 분쟁을 선택하면 청소기처럼 다른 나라도 분쟁에 휘말린다.


한 나라가 외교를 선택하면 거울처럼 반사적으로 다른 나라도 외교를 선택한다.


어쩌면 세계화는 아래와 같이 정의될 수 있겠다.


’동전의 양면‘…


‘양날의 검’…


전 세계 193개의 나라와 80억 명의 인구가


양날의 검, 동전의 양면이라는 좁디좁은 공간에서


각축전을 벌이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 모습은 마치 개미와 같다…




해설: 1980년대 자유지상주의의 등장, 능력주의의 급부상,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데탕트 시대 즉 냉전 완화가 겹치면서 전 세계가 무역을 통해 하나로 모이는 현상인 세계화가 가속화되었습니다.(레이거니즘과 대처주의가 그 대표적 사례죠.) 특히나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미국과 유럽의 단극 질서로 인해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그 결과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FTA(자유무역협정) 등이 국가 별로 체결되며 관세를 축소하거나 아님 사실상 무관세로 국가와 국가가 무역하는 것이 대세인 시절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SNS와 온라인 플랫폼 등의 발달로 세계 각국의 젊은 세대 즉 MZ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생 세대를 통칭하는 단어/영미권에서는 Generation Z 줄여서 GenZ나, Millenial이라고 부름)는 문화 교류•시공간을 초월한 소통 등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국적을 불문하고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히 일어납니다. 그렇게 인류는 산업혁명 이래로 전례 없는 발전을 목도하며 삶의 질이 향상됩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간의 빈부 격차는 커졌습니다. 특히나 선진국들의 다국적•초국적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하고 규제가 덜하며 풍부한 원료와 자원을 가진 개발도상국에 공장을 설립하며 경제 활동을 하면서 여기서 나오는 막대한 경제적•물질적 이익을 선진국 즉 자국으로 가져가면서 19세기 제국주의 이후 또 다른 형태의 수탈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개발도상국들이 몰려있는 남반구와 선진국이 몰려있는 북반구 간의 경제적 격차를 낳았습니다. 이를 남북문제라고 합니다. 거기에 더해 북반구에 있는 선진국들의 경제 활동으로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자 상대적으로 그 피해가 남반구의 글로벌 사우스 즉 개발도상국들로 집중되면서 남반구 국가들과 북반구 국가들 간에 외교적 마찰을 빚기도 합니다. 실제로도 이러한 구조와 남반구 국가들의 ‘제국주의‘라는 역사적 피해 경험 그로 인해 빚어진 ‘민족주의적 감정’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사우스의 국가들은 북반구 국가들 특히나 서구와 미국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커져가는 실정입니다. 이런 문제가 심화됨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 수정주의 국가들은 이를 틈 타 기존의 서구 중심적 자유주의 체제에 균열을 내기 위해 글로벌 사우스들의 이런 불만을 이용하고 있죠.


미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이러한 세계화가 자유주의 국가 내부에서 정치적 갈등을 초래했다는 점입니다. 북반구 국가들 특히 미국과 유럽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 내 중•하층 노동자들은 세계화로 인해 자국 기업들의 공장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자신들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생각하며 이를 예방하기는 커녕 방관하는 현대 진보계열 정당에 대한 불신이 쌓입니다. 이 상황에서 세계화가 진척되며 무비자 입국이나 입국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어 그 나라의 일자리마저 대신 꿰차는 일이 생기면서 미국과 유럽 내 중•하층 노동자들과 일부 고소득층자들의 불만은 더욱 상승합니다. 이때부터 이들은 우파적 포퓰리즘(일자리를 자국 내로 유치하는 것,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것, 보호 무역 주장 등)을 선호하며 보수 정당을 지지하기 시작했고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스웨덴•핀란드•이탈리아•프랑스•독일•미국 내 극우와 보수 정당의 반등입니다. 특히나 미국의 러스트 벨트 사례는 이를 잘 보여주죠.


미국의 러스트 벨트는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습니다. 민주당은 원래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미국 정계에서 공화당을 상대로 싸워왔습니다. 그래서 2008년 미국 대선과 2012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정부를 뽑는데 큰 역할을 했죠. 하지만 이후 세계화가 진척되면서 민주당의 초점이 점점 러스트 벨트의 노동자들에서부터 소수자 인권 문제, 기후 변화 등 자신들과는 무관한 이슈로 옮겨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이에 실망감을 느낀 러스트 벨트 노동자들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선출해 줬고 2024년 대선에서 다시 한번 트럼프를 뽑아줬습니다. 그렇게 미국 내 중•하층 노동자들과 일부 상위층들을 중심으로 보수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죠.


여기에 추가로 자유지상주의와 능력주의가 결합해 세계화가 진척됨에 따라 정부의 역할 축소와 경쟁을 중시(레이거니즘과 대처주의가 대표적)하며 사회적 소외 계층에 대한 낙인, 기업의 인력 감축과 구조조정에 대한 방관•묵인 등이 자행됩니다. 또한 이를 사회적 약자 계층이나 중하층 소시민들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해 경쟁에서 도태되었다는 담론으로 포장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과도한 능력만능주의와 엘리트주의의 탄생을 초래했고 이로부터 흔히 비엘리트로 대표되는 중하층 일반 소시민•노동자들과 엘리트를 비롯한 상류층 간의 갈등이 파생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습을 현대 진보계열 정당(대표적으로 미국의 민주당) 내 엘리트들이 도덕적 우월감과 자신들이 ‘교육받은‘ 엘리트라는 사실을 기반으로 중하층과 무관한 PC주의와 정체성 정치를 자행하며 답습합니다. 결국 이에 대해 중하층 노동자와 소시민들의 분노가 쌓였고 미국과 유럽 내 보수 세력들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센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말했듯 이러한 현상은 공동체적 가치와 연대감을 약화시키고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켜 결과적으로 사회적 결속력을 감소시켰습니다. 앞서 언급한 러스트 벨트의 사례와 연결 지어 보면 이해가 갈 겁니다.


이외에도 세계화는 세대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1960-70년대 생 즉 기성세대는 세계화 이전의 시대에 태어난지라 애국심, 공동체주의적 성향이 강한 편이고 신자유주의와 능력주의 그로 인한 세계화가 막 시작된 시점인 1980년대 생들은 비교적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이후 세계화와 자유지상주의, 능력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1990년대와 2000년대 그리고 2010년대 생들은 개인의 자유, 개인의 삶, 개인의 권리 등이 공동체나 국가보다 더 중요해진 세대입니다. 이렇듯 각기 다른 시대에 나고 자란 각 세대들은 가치관에 있어 차이가 클 수밖에 없고 이러한 것들이 항상 두 개 이상의 여론의 존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민주주의의 정치적 특성과 결부되면서 국가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이견이 폭발적으로 분출되는데 한몫합니다. 그 결과 민주주의 국가 내 정치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으며 이는 국가 내부의 단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모든 사실들이 한데 모여 자국 내 여론 통제와 그로 인한 사회적•정치적 단결이 잘 되는 권위주의•수정주의 국가들에 비해 자유주의•민주주의 국가들이 신냉전에서 수세에 몰리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세계화의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입니다. 그래서 제목 역시 ‘이중성‘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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