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폴란드의 전성기와 몰락 그리고 재기

by 성주영


겉으로 보면 샌드위치다.


맛있을까? 아니 맛없다.


그럼 왜 샌드위치일까?


그곳의 위치가 샌드위치기 때문이다.


참 복잡하다. 그러면서 비극적이다.


한 때는 평원을 휘젓고 다녔으나


대홍수 이후 몰락의 길을 걸었다.


압제, 학살, 재건이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저러한 경험 때문일까?


평원에서 잘 나가던 시절을 회상하며 열심히 정진한 결과


현재 대륙 내 6번째로 큰 보고가 되었다.


지정학적으로도 금고와 같은 존재가 되었고, 고슴도치처럼 더욱 단단해졌다.


이제 이곳에는 영원한 번영과 지속적인 강대함만이 불꽃처럼 열렬히 살아남아


평원을 휘젓던 그 시절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해설: 이 작품의 제목을 샌드위치로 정한 것은 폴란드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폴란드는 동쪽으로는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남쪽으로는 오스트리아랑 튀르키예와 마주 보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러시아와 마주 보고 있었다.


현대 유럽/폴란드 동쪽에 러시아, 서쪽에 독일, 남쪽에 오스트리아가 더 아래로 내려가면 튀르키예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7세기 당시 유럽/하늘색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기준으로 서쪽: 분열되어 있는 신성로마제국, 서남쪽: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국, 동쪽: 루스 차르국, 남쪽: 오스만 제국
18 세기 당시 유럽/세 차례에 걸친 폴란드 분할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소멸했음을 알 수 있다. 빨간색 원은 현재 폴란드의 대략적 위치를 의미한다.
19세기 정확히는 프로이센이 독일 통일을 이룩한 1871년 당시 유럽/여전히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없다. 그리고 현재 독일 지역에는 독일 제국이 들어선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어떻게 탄생해서 어떻게 소멸했고 언제 다시 폴란드가 탄생한 것일까?


1386년에 폴란드 왕국의 여왕 야드비가와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대공 요가일라가 결혼해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을 결성하면서 야기에우워 왕조가 들어선다. 이후 1569년 루블린 연합을 통해 폴란드-리투아니아 동군연합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바뀌나 1572년 지그문트 2세의 사망으로 야기에우워 왕조는 단절된다.


이후에는 스테판 바토리와 안나 야기엘론카가 결혼해 공동 왕위에 오르고 안나 야기엘론카는 수도 크라쿠프에서 내치에 힘쓰고, 스테판 바토리는 후사르를 중무장시켜 윙드 후사르라는 정예 기마 부대를 창립한다. 이후 단치히가 연방에서 이탈하는 것을 무력으로 막고 1577년에는 리보니아를 습격하는 루스 차르국에 대해 공세를 가해 러시아 내지로 진격한다. 전쟁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흐르자 루스 차르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1582년 얌 자폴스키 조약을 체결해 루스 차르국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리보니아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한다.(이로 인해 이반 4세는 일생의 목표였던 발트해 진출에 실패해 정신병에 걸리고 나중에는 자기 아들마저 때려죽이는 미치광이가 된다. 참고로 이반 4세는 국명을 모스크바 대공국에서 루스 차르국으로 개명시켰고, 아스트라한 칸국과 카잔 칸국을 정복해 시베리아 확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스테판 바토리가 죽고 안나 야기엘론카가 단독 군주가 되지만 그녀가 나이 때문에 통치하기 힘들다고 선언하자 국왕 선거를 실시한다. 그 결과 지그문트 3세가 왕위에 오른다. 이 시기 왈라키아 공국의 미하이 2세가 몰다비아 공국의 공위까지 겸하고 1599년부터 1600년까지 왈라키아, 몰다비아, 트란실바니아 세 지역을 모두 통일한다. 중심지인 이아시에는 정교회 수도원을 건축하고 루마니아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하지만 1600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간섭으로 망한다. 이후 지그문트 3세는 1605년부터 폴란드-러시아 전쟁을 통해 루스 차르국의 동란 시대(루스 차르국 내에서 기존 류리크 왕조가 단절된 1598년부터 로마노프 왕조가 들어선 1613년까지 왕위가 공석이었던 시기, 이 시기 중 1601년부터 1603년까지는 러시아에 대기근이 들어 당시 전체 인구의 1/3 가량인 200만 명이 죽는다.)를 틈 타 러시아 전역을 휩쓸었고 1610년부터 1612년까지는 모스크바를 점령하기도 한다. 이러한 팽창 정책은 1618년까지 지속된다.


같은 해 유럽에서는 30년 전쟁이 발발하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귀족 의회인 세임의 결정으로 30년 전쟁은 피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30년 전쟁이 한창인 1620~1621년까지 남부 국경에서 오스만 제국이 자신의 봉신국인 크림 칸국을 앞세워 몰다비아 공국을 계속 공격하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결국 몰다비아 공국에 대한 영유권을 철회한다.(1차 폴란드-오스만 전쟁) 이후에는 1626년부터 1629년까지 북부에서 스웨덴과 전쟁을 치른다. 치열한 접전을 벌인 결과 알트마르크 휴전 조약이 체결되고 스웨덴은 프로이센 항구를 점령하고, 발트해에서의 무역 관세권을 확보해 발트해 재해권 장악에 성공한다. 또한 폴란드는 리보니아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한다.(제4차 스웨덴-폴란드 전쟁)


1632년 지그문트 3세가 승하하고, 브와디스와프 4세가 왕위에 오른다. 1632년부터 1634년까지 루스 차르국의 차르 미하일 로마노프가 자신의 옛 영지였던 스몰렌스크를 되찾기 위해 미하일 셰인(당시 루스 차르국 장군)을 앞세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쳐들어오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루스 차르국을 상대로 스몰렌스크 전쟁을 치른다. 그리고 한창 스몰렌스크 전쟁을 치르던 중 1633년부터 1634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지원을 받던 크림 칸국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쳐들어와 2차 폴란드-오스만 전쟁이 발발한다. 결국 2차 폴란드-오스만 전쟁에서는 양측 다 무승부로 끝나지만 스몰렌스크 전투에서는 결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승리하고 폴랴놉카 조약을 체결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스몰렌스크에 대한 영유권을 들고 간다.(위키피디아에는 스몰렌스크 전쟁이 30년 전쟁의 일부라고 되어 있으나 역사적으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30년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적이 없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스몰렌스크 전쟁의 기간/1633-1634이 30년 전쟁의 기간/1618-1648과 겹쳐서 위키피디아에서는 스몰렌스크 전쟁을 30년 전쟁의 일부라고 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역사적으로 30년 전쟁에 개입한 적이 없다. 이 점을 유의하며 읽기를 바란다. 참고로 스몰렌스크 전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소 전쟁의 일부였던 스몰렌스크 전투와는 완전히 다르다. 혼동하지 말 것.)


이후 폴란드 귀족인 슐라흐타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한 가혹한 수탈 때문에 1648년 보흐단 흐멜니츠키는 흐멜니츠키 봉기를 일으키고 본인을 중심으로 한 헤트만국을 건국한다. 이때부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쇠퇴기라 할 수 있는 대홍수가 시작된다. 이후 브와디스와프 4세는 아들을 잃은 상실감 때문에 충격사하고 얀 2세가 새 국왕으로 선출된다. 1649년 흐멜니츠키는 즈바라즈 공성전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무너뜨리지 못 하자 즈보리우 조약을 체결해 휴전하나 1651년 재차 봉기를 일으켜 바토흐 전투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정예군을 괴멸시킨다. 그리고 1654년 루스 차르국의 알렉세이 1세와 페레야슬라프 조약을 체결해 동맹을 맺는다. 그 결과 1654년부터 1667년까지 루스 차르국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쳐들어와 13년 전쟁(제1차 북방 전쟁=루스 차르국-폴란드 전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13년 전쟁이 한창이던 1655년 스웨덴 제국이 대홍수로 혼란스러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왕위를 목표로 쳐들어 온다. 제2차 북방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이 전쟁은 1660년까지 계속된다. 결과적으로 스웨덴 제국이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위는 얻지 못했지만 리보니아에 대한 영유권은 들고 간다. 1667년에는 13년 전쟁(루스 차르국-폴란드 전쟁=제1차 북방 전쟁)이 루스 차르국의 완승으로 끝나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루스 차르국과 안드루소보 조약을 체결해 드니프로강을 기점으로 좌안 우크라이나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우안 우크라이나는 루스 차르국이 들고 간다. 이 말인즉슨 루스 차르국이 1654년에 헤트만국과 맺은 페레야슬라프 조약을 어기고 헤트만국을 배신한 것을 의미한다.(이 내용들이 대홍수 중 일부다.)


대홍수의 결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인구의 1/3을 잃었으며 1668년 얀 2세는 프랑스로 망명한다. 1669년 미하우 코리부트 비시니오부에츠키가 왕위에 오른다. 1672년에는 폴란드- 오스만 전쟁(3차 폴란드-오스만 전쟁)이 발발한다. 1673년에는 미하우 코리부트 비시니오부에츠키가 사망하고 1674년에 얀 3세가 왕위에 오른다. 1676년에는 폴란드-오스만 전쟁(3차 폴란드-오스만 전쟁)의 결과로 주라프노 조약이 체결되고 오스만 제국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치하의 좌안 우크라이나 대부분을 들고 간다. 1683년 4차 폴란드-오스만 전쟁이 발발하고 이 과정에서 제2차 빈 공방전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얀 3세가 직접 윙드 후사르를 이끌고 오스만 제국 군대를 격파해 오스트리아 제국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구원한다.


1697년 얀 3세가 사망하고 아우구스트 2세가 왕위에 오른다. 그는 4차 폴란드-오스만 전쟁을 카를로비츠 조약(1699년에 체결)을 통해 끝냄과 동시에 주라프노 조약의 결과로 빼앗긴 좌안 우크라이나를 되찾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1700년~1721년 표트르 1세 치하 루스 차르국과 스웨덴 제국 간의 대북방 전쟁이 시작된 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루스 차르국을 도와 스웨덴 제국을 공격한다. 하지만 스웨덴 제국이 나르바 전투에서 루스 차르국을 꺾어버린 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대해 공세를 시작하고 결국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수세에 몰린다. 결국 1704년 스타니슬라프가 왕위에 즉위하면서 아우구스트 2세는 왕위를 잃었고 스타니슬라프는 대북방 전쟁에서 스웨덴 제국 편에 가담해 싸운다. 하지만 폴타바 전투에서 스웨덴 제국이 패배해 러시아 제국에게 전쟁이 유리하게 돌아가자 이때를 틈 타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은 아우구스트 2세가 스타니슬라프를 몰아내고 1709년에 다시 왕위에 오른다. 대북방 전쟁 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러시아 제국의 봉신국으로 전락한다.


1733년 아우구스트 2세가 죽고 스타니슬라프가 다시 왕위에 오른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자국에 적대하는 노선을 탈까 우려했던 러시아 제국은 아우구스트 3세를 왕으로 내세우며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1733~1735)을 시작한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완패했고 그 결과 세임이 스타니슬라프를 왕위에서 축출한다. 결국 러시아 제국이 원하는 대로 아우구스트 3세가 왕위에 오른다. 이 사건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분할의 시초가 된다.


1772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오스트리아 제국(요제프 2세&마리아 테레지아), 러시아 제국(예카테리나 2세), 프로이센(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1차로 분할당하고, 1793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오스트리아 제국(프란츠 1세), 러시아 제국(예카테리나 2세), 프로이센(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에 의해 2차로 분할된다. 1795년에는 오스트리아 제국(프란츠 1세), 러시아 제국(예카테리나 2세), 프로이센(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에 의해 3차로 분할된다. 그 결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지도상에서 사라진다. 이후 1807년 나폴레옹의 독일-폴란드 원정으로 바르샤바 공국이 건국되어 폴란드가 잠깐 부활하나 1815년 나폴레옹 몰락 이후 빈 조약이 체결되어 빈 체제가 들어서자 바르샤바 공국은 분할되어 소멸된다.(4차 폴란드 분할)


시간이 지나 1차 대전이 끝나기 전인 1918년 3월 3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체결되어 소련이 폴란드를 독일에게 떼어주나 같은 해 11월 11일 협상국의 승리로 인해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고 독일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통해 얻은 폴란드를 잃자 폴란드가 독립한다. 그러고 나서 폴란드는 1919년부터 1921년까지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을 통해 리가 조약을 체결한 후 서우크라이나와 서벨라루스를 들고 간다. 하지만 1939년 나치와 소련이 상호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9월 1일 나치가 폴란드를 전면 침공하자 소련도 상호불가침조약을 근거로 참전 폴란드를 나치와 함께 분할한다.(5차 폴란드 분할) 1941년 나치가 독-소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소련 치하 폴란드까지 점령하나 소련의 반격으로 소련군이 바르샤바 인근까지 진격한다. 1944년 소련군이 바르샤바에 진입하여 자신들을 도와줄 줄 알고 폴란드는 이에 맞춰 나치에 대항해 바르샤바 봉기(1944년 8월~10월)를 일으키나 소련이 바르샤바 코앞에서 진격을 멈춰버리는 바람에 바르샤바 봉기는 실패로 돌아가고 나치는 이를 빌미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다.


이후 2차 대전에서 소련이 승리하자 폴란드는 냉전 동안 소련의 위성국(소련 주도의 경제 기구인 코메콘과 집단 안보 기구인 바르샤바 조약 기구=WTO=Warsaw Treaty Organization의 회원국/WTO=World Trade Organization과 다름.)이 되었다. 1979년부터 계속되어 온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인한 자금난으로 소련은 경제 위기를 겪는다. 그러다 전쟁이 한창이던 1985년에는 고르바초프가 취임한다. 1987년에 그는 동유럽 불간섭을 선언한다. 결국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난 해인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를 시작으로 동유럽에서 냉전 완화가 한창인 1990년에는 폴란드 자유노조 연대의 바웬사가 대선에서 당선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1997년 나토와 러시아 사이에서 <나토-러시아 상호관계 및 협력, 안보에 관한 기본 협정>이 체결되고 그 결과 1999년에 폴란드는 나토 가입에 성공한다. 2004년에는 EU에도 가입함으로써 완전히 친서방화된다.


2016년 영국이 브렉시트를 한 이후 동유럽으로 대표되는 폴란드는 EU 내에서 본인들의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서유럽으로 대표되는 독일•프랑스와 경쟁하고 있다. 이렇듯 폴란드가 서유럽과의 경쟁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폴란드의 경우 동유럽 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으로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 자유화•발전 이 세 가지 모두를 이룩한 국가이며 EU 내에서도 경제 규모로 따지면 명목 GDP 기준 6위에 해당하는 경제 강국이자 육군력과 공군력 역시 강력한 동유럽에서 몇 안 되는 군사 강국이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동유럽의 안보 구조가 서유럽 중심에서 동유럽 중심으로 바뀌는데 있어(서유럽을 비롯한 유럽의 안보 방파제) 우크라이나와 함께 선두 역할을 맡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에게 기존의 무기를 주고 한국으로부터 무기를 사들여 국방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추세이며 이를 바탕으로 유럽 방산 업계에서 독일을 견제해 유럽 내 폴란드 역할의 중요성을 확대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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