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권 확보

우크라이나의 중요성

by 성주영


우크라이나가 이번 전쟁에서 이겨야 하거나 또는 최소한 전쟁을 좀 더 진행한 후 협상에서의 주도권을 들고 가야 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우크라이나는 세계에서 5번째로 큰 곡창 지대다. 어느 정도냐 하면 전쟁 이전 우크라이나의 연간 곡물 생산량은 6000만~7000만 톤이었는데 이 중 90% 그러니까 5400만~6300만 톤이 우크라이나에서 수출된다. 이렇게 세계의 식량 공급자 역할을 하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침공당한 후 세계는 급작스럽게 식량 위기에 시달리게 되고, 국제 곡가도 크게 상승하게 된다. 하지만 2022년 7월 22일 곡물 수출 합의가 이뤄지자 국제 곡가는 다시 하락했다. 이렇듯 식량 문제에 있어서 우크라이나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만약 이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넘어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이는 러시아에게 무기를 하나 더 쥐어주는 것과 같다. 러시아는 EU를 상대로 천연가스를 무기화해 수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유럽 국가들은 가스 사용량을 15%가량 줄이는 등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천연가스만 해도 이 정도인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손에 넣는다면 우크라이나의 곡물은 러시아의 소유물이 되며 러시아는 이 곡물을 무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 대부분을 점령하며 얻은 원자재 매장지가 있는데 이 매장지는 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티타늄, 철광석 매장지일뿐만 아니라 미개발 리튬 및 대규모 석탄 매장지라고 전해진다. 캐나다 싱크탱크 세크데브에 따르면 러시아가 압수한 매장량의 가치는 12조 4000억 달러(한화로 약 1경 6000조 원)이라고 한다. 만약 러시아가 곡물에 이어 매장지 아래에 있는 원자재마저도 무기화한다면 결국 이는 국제 사회에게 또 다른 잠재적 위협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 사진은 우크라이나 내 지역별 자원 매장량을 돈으로 환산한 가치를 제시하는 사진이다. 출처: BBC


또한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도네츠크, 루한스크)은 소련 시절 공업 공장의 40%가 몰려있는 곳이다. 즉 이 지역은 소련 시절부터 제철소와 공장이 몰려있어 우크라이나 중공업의 핵심지이자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곳인데(철강, 기계 공업, 화학 등) 여기를 돈바스 지역 아래에 묻혀있는 풍부한 철과 석탄 등을 비롯해 러시아가 들고 가게 된다면 우크라이나의 산업 역량이 약화되고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군수산업과 중공업 역량을 키워주게 된다. 뿐만 아니라 현재 러시아 점령지는 대부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와 더불어 남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비롯해 여기를 전부 가져가게 되면 우크라이나의 흑해 수출로가 막히고(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남부 점령지에는 흑해를 통해 지중해로 나갈 수 있는 베르댠스크, 마리우폴 등 주요 항구 도시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 러시아는 흑해에 대한 재해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흑해에 대한 제해권을 장악하면 러시아는 튀르키예의 다르다넬스 해협과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해 지중해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애초 러시아의 1차적 목표는 우크라이나 남부 점령지와 몰도바 내에 있는 친러시아 분리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의 필사적인 저항으로 미콜라이우 주로의 진격이 막히자 러시아는 1차적 목표를 수정했고 그 결과 러시아 본토와 돈바스 그리고 크림 반도를 잇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만약 러시아의 1차적 목표가 달성됐더라면 몰도바가 위험에 빠졌을 것이다. 몰도바는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처럼 나토 회원국이 아닌 데다 친러 분리주의 세력을 영토 내에 가지고 있다. (가가우지아와 트란스니스트리아) 만약 러시아가 미콜라이우 주를 점령하는 데 성공해 트란스니스트리아까지 육로를 연결하는데 성공했더라면 러시아가 몰도바까지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지아처럼 무력으로 굴복시켜 트란스니스트리아와 가가우지아를 합병하거나 트란스니스트리아와 가까운 몰도바의 수도 키시너우를 점령해 현재 몰도바의 친서방 정권인 마이아 산두 정부를 붕괴시키고, 친러 정권을 수립하는 등)


또한 유출된 기밀 문건에 따르면 2030년까지 푸틴은 벨라루스를 러시아 연방에 병합할 계획이다. 이렇듯 국제 사회에서 러시아는 본인의 몸집을 키워 중국과 손을 잡고 미국에 대항해 미국의 단극 체제를 무너뜨려 본인의 입맛에 맞게 국제 질서를 재편하거나 또는 미국의 패권을 빼앗아 올 계획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푸틴은 러시아를 다시 한번 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을 계획이었다. 다시 말해 러시아가 이기면 러시아는 이러한 자국의 목표에 한 발짝 더 다가갈 것이며 이는 곧 러시아의 서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위에서도 말했듯 몰도바가 위험해지고 그다음은 벨라루스와 인접한 발트 3국과 폴란드이며 이에 자신감을 얻은 푸틴은 우크라이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조지아(그로지야)까지 재침공해 무력으로 재차 복속시킬 수 있다. 2008년 조지아-러시아 전쟁의 재현인 것이다.



조지아(그로지야) 내 친러분리주의 세력인 압하지야, 남오세티야의 위치


몰도바 내 친러 분리주의 세력인 가가우지아와 트란스니스트리아


수바우키 회랑은 나토의 최대 약점이다.


이 수바우키 회랑이 러시아와 나토 교전 시 러시아에 의해 점령당하면 발트 3국은 고립무원이 되고 육상 보급로가 차단당한다. 그러면 북쪽의 핀란드에서 해상 보급을 받아야 하는데 자체 군대 없이 나토군의 순환 배치로 안보 보장을 받는 발트 3국이 얼마나 오래 버틸지는 미지수다.


왼쪽 사진에서의 빨간색 선은 러시아-핀란드 국경선, 노란색 선은 노르웨이-러시아 국경선


핀란드의 나토 가입으로 러시아는 핀란드와 1200km에 달하는 국경선을 맞닿게 되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런 핀란드를 견제하기 위해 군사 기지 건설과 국경 지대 무장에 나섰다. 핀란드 국경에서 57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미개발지인 카멘카에 2025년 2월부터 병력 약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군용 텐트 130개 이상이 블록처럼 빽빽하게 들어섰고, 무르만스크주에 있는 군사 지역인 세베로모르스크-2에서는 개조된 공군기지와 활주로를 따라 비행하는 헬리콥터 여러 대가 확인됐다. 게다가 핀란드 국경에서 약 160㎞ 떨어진 페트로자보츠크에서는 새로 지어진 대형 창고 3개가 포착됐는데, 군사 전문가들은 대형 창고의 정체가 장갑차 보관소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제도가 위치한 북해 및 인근 지역에서 군사 훈련을 강화하고 있으며, 특히 북극 지역에서의 작전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노르웨이 역시 최첨단 대잠초계기(적의 잠수함을 탐색하고 공격하기 위해 개발된 무기체계. 초계기, 해상초계기라 부르기도 한다.) 5대를 도입하고, 수상함(자체 무기와 군대를 가지고 수면에서의 전쟁을 위해 설계된 해군 전함의 부분 집합이다. 잠수함의 반대말)을 4척에서 6척으로 증강하며, 4척의 잠수함을 6척으로 증강할 계획이다. 위에서 노란색으로 표시된 노르웨이-러시아 간의 국경과 북해(북극해) 그중에서도 바렌츠해 그리고 여기에 위치하는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를 감안해 보면 노르웨이의 해군 증강이 말이 안 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유럽이 왜 러시아의 서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 슬로바키아의 피초 총리 등의 친러 세력의 훼방 그로 인한 EU와 NATO 내 분열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까지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버티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우크라이나가 미-러 두 강대국들 특히 푸틴과 트럼프라는 두 스트롱맨 사이에서도 지금까지도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초반 유럽의 군사적 지원과 중•후반 유럽의 외교적 지지 덕분이다. 일각에서는 전쟁의 피로감 때문에 유럽 역시 외교적 지지를 철회할 것이라는 입장이 우세했는데 현실은 이 주장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럽이 앞서 언급한 슬로바키아의 피초, 헝가리의 오르반, 폴란드가 선거철에 맞춰 우크라이나와 농수산물 문제로 잠깐 갈등을 빚은 적 외에는 웬만하면 여전히 우크라이나 측에 서고 있다. 당연히 이때까지 줄곧 언급해온 안보 문제 때문에라도 유럽은 우크라이나 측에 설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전쟁이 장기화되고 변곡점 없이 소모전만 일어난다 할지라도 말이다. 언론과 다수 전문가들이 유럽의 외교적 지지 철회•굴복을 외쳤을 때 본인은 그러한 생각에 반대했는데 그거 그대로 진행되는 중이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더 나아가 유럽 스스로에 대한 확실한 안보 보장 그리고 러시아라는 위협 억제•해소가 없으면 국내 정치 때문에 군사적 원조는 힘들지언정 외교적 지지는 철회하기 힘들다. 이번 미-러 알래스카 정상회담 직전 유럽이 보여준 해보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와 북극해(북해) 중 일부인 바렌츠해의 위치
북극해(북해)에 위치한 바렌츠해 위치


갑자기 뜬금없이 위 사진에서 미국이 언급되어 의아해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북해에서 경쟁 관계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북극항로를 개척할 수 있는데 이 항로는 기존의 믈라카 해협-수에즈 운하-유럽-지중해- 대서양 무역 루트보다 훨씬 더 거리가 짧아 시간•비용 등 전부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북극항로의 경제성을 두고 미리 선점하기 위해 군사적 충돌을 빚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초계기와 러시아의 전투기가 서로 위협 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외에도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의 오랜 영토 분쟁이 끝났다. 소련에 속했지만 민족·종교가 다른 양국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영토 문제를 놓고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을 빚었다. 특히 캅카스산맥 고원지대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 땅이지만 아르메니아계 분리주의 세력이 점유하면서 화약고가 됐다. 아제르바이잔이 2023년 9월 대규모 공습을 감행해 분리주의 세력을 사실상 무력화했고 아르메니아로선 평화 협정에 응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때 러시아는 한창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이라 개입을 별로 못 했었고 사실상 이를 방관했다. 군사적으로 열세였던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에 의해 완패하면서 결국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 수중에 떨어진다. 이에 오랫동안 러시아에 안보를 의존한(러시아 중심의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의 회원국)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에 대해 분노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계기로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미국 3자 회담에 참가했으며 러시아는 이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사실상 아르메니아의 행보를 비판했다. 자국의 영향권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CSTO와 NATO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위치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미국 3자 회담 현장 사진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양측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 하에 공동 선언에 서명했다. 선언에는 아제르바이잔 본토와 아제르바이잔의 나흐체반 자치공화국을 연결하는 통로인 일명 '국제 평화와 번영을 위한 트럼프 길'을 아르메니아에 구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나흐체반 자치공화국은 아르메니아 서남부에 있어 그간 아제르바이잔에서 나흐체반 자치공화국을 가려면 이란을 경유해야 했다. 양국은 이번 선언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오랜 요구 사항이었던 직접 통로 개설에 합의하되 통로 개발권과 관리는 미국에 맡기기로 했다. 당연히 러시아는 이를 예의주시하고 있고(별다른 반발을 안 내놓은 건 미국 주도의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휴전 협상은 8/8에 미-러 정상 회담이 저 날을 기준으로 7일 뒤인 8/15일날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푸틴은 우크라이나 내 점령지를 보장받고,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중국•인도에 대한 미국의 추가적인 관세 부과 예방을 기대했었기에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향후에 러시아가 미국을 상대로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와 관련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모르기에 여전히 미국에 반발하거나 우려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란은 이에 반발했다. 이란 입장에서는 미국의 영향력이 자국 영토 코앞에 왔고 러시아도 구 소련의 영향력 하에 있었으며 비교적 최근까지만 해도 자신의 영향권에 있었던 국가들(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이 미국과 협조하기 때문이었다.


나흐체반 자치공화국(오른쪽 사진에서 붉게 칠해진 영토),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이란의 위치


어떤 생각이 드는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이 전쟁의 결과는 향후 유럽에 있어 크나 큰 안보에서의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나토의 확장이 러시아 입장에서 동진이라면 러시아의 벨라루스 속국화, 우크라이나 침공 등은 서방과 미국 입장에서 명백한 서진이다. 그리고 쭉 살펴봐왔듯 러시아와 유럽 그리고 미국이 격돌할 지역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위 지역들 중 다음은 어디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우크라이나가 승기를 못 잡거나 적어도 군사적 우위를 통해 협상에서의 우세를 점하지 못하면 러시아는 지금보다 더 많은 영향력을 국제 사회에 행사하게 될 테고, 이 경우 가뜩이나 중국 견제 때문에 분주한 미국은 또 전력을 분산시켜 나토와 함께 러시아도 견제해야 한다. 미국에게도 이런 것은 꽤나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게 분명하고, 이렇게 될 경우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체제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라도 우크라이나가 이번 전쟁에서 이기거나 최소 결정적인 한 방을 가해서 협상에서의 우위를 점해야 한다 게다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무너지거나 또는 협상에서 러시아가 주도권을 쥔 채로 일방적 양보로 끝난다면 그 도미노 효과로 중국•북한은 대만•한국을 지금보다 더 높은 수위로 압박할 것이며 이는 세계 안보에도 큰 위협이 될 것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현재의 러시아는 미국 중심의 패권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그 시작일 뿐이다. 이 전쟁으로 인해 미국과 그 우방국 중심의 민주주의•자본주의 체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 가능한지 실험대에 오른 셈이다.(추가로 중국 역시 대만 침공에 대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준점으로 삼고 있다. 적어도 러시아가 유리하게 끝내면 중국도 이를 모방해 전쟁에서의 완승 또는 장기화시켜 협상을 통해 일부 점령지라도 들고 가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던가 혹은 러시아가 실패하면 중국은 대만 침공을 보류하고 내치에 집중함과 동시에 대만에 대한 현재의 회색 지대 전술과 하이브리드전, 군사적 포위•위협 등을 병행하며 압박 수위를 높여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이게 바로 우리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대해 간과하거나 무심하거나 묵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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