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적 관점에서 본 우-러 전쟁
2022년 4월/5월에는 우크라이나군이 수도 키이우 부근에서 러시아군의 공세를 물리쳐 북쪽에서 쳐들어오는 러시아군을 격퇴함으로써 급한 불을 껐다. 우크라이나가 북쪽에서의 러시아 공세를 막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연조건, 서방의 무기 지원, 시르스키의 전략 덕분이었다. 첫째 당시 우크라이나 땅은 따뜻해지던 날씨 때문에 겨울에 얼어붙었던 동토가 녹아(가을장마 현상/라스푸티차) 질퍽한 진흙탕으로 변했다. 이는 러시아의 기갑 부대의 진격 속도를 늦췄다. 둘째 2022년 3월부터 시작된 서방의 무기 지원으로 제공받은 대전차 미사일인 재블린으로 무장한 우크라이나군의 기계화 보병이 게릴라 전술로 키이우 시내 한복판에서 러시아군에 저항했다. 셋째, 잔해로 뒤덮인 키이우는 우크라이나군이 앞선 언급한 게릴라 전술을 활용하기에 적합했고, 러시아군의 특기인 전차나 장갑차의 활약을 기대하기 어려운 장소였다. 넷째, 잘루즈니 사령관은 우크라이나의 기갑 전력을 가지고 돌려 막기 전술을 통해 러시아의 끊임없는 공세를 잘 막아냈고, 시르스키 장군은 키이우 인근 댐을 폭파시켜 러시아군의 공세를 지연시켜 시간을 벌어들인 다음 인근에 방어선을 설치해 러시아군의 공세에 대비했고, 앞서 언급한 게릴라 전술을 통해 키이우에서의 공방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후에는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의 러시아 군의 공세를 막아내며 시간을 끌다가 동부와 남부에서 반격을 시작한다.
1. 2022년 9월 우크라이나는 하르키우주 대부분을 수복했고, 보급 기지로서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이지움, 쿠퍈스크, 발라클리야 등을 탈환했다. 이지움을 탈환했다는 것은 동부 돈바스에서의 러시아의 보급 거점을 확실하게 끊어놨다는 것과 같다.
2.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를 다음 목표로 삼으며 우크라이나군은 전투태세에 들어갔고 도네츠크주에 있는 리만 탈환했다.
3. 남부 헤르손은 이로써 미끼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사실 미끼로 작용한 이곳에서도 비록 느리긴 하지만 어느 정도 진전을 보였다.
위는 2022년 9월과 10/11월에 우크라이나가 반격함으로써 헤르손과 하르키우를 수복한 상황을 요약한 것이다.
러시아군이 북동부 하르키우주에서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설명을 해보자면 먼저 앞서 언급한 헤르손을 가지고 기만 작전을 시도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헤르손을 점령하고, 크림 반도를 되찾을 것 같이 행동하여 러시아의 전력을 분산시키고 동부에서 러시아의 전력이 약화된 틈을 타 미리 갖춰둔 병력으로 동북부 지방인 하르키우주에 대해 재빠른 공세를 감행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기가 막히게 먹혀들었다.
이러한 기만 작전은 6.25 전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실행하기 전 북한군이 어디로 상륙할지 모르도록 강원도 일대에서부터 동해안 부근에 계속된 폭격을 퍼부어 북한의 주력 부대가 동쪽으로 시선이 쏠리게끔 했고 이때를 노려 유엔군은 서쪽 방면 즉 인천에 상륙해 역사에 길이 남을 상륙작전(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켰다. (작성자 본인의 생각으로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과달카날 상륙 작전 다음으로 기적 같은 상륙 작전이 아닐까 싶다.) 이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성동격서(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침) 즉, 다시 말해 그럴듯한 속임수로 공격하는 것을 뜻한다. 뭐 이것을 우크라이나 상황에 적용해 보면 성남격동이라 할 수 있겠다. (남쪽인 헤르손을 칠 것 같이 해놓고, 북동부 하르키우 주에 대한 대대적 공세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이 전쟁 동안에 러시아는 정부의 막대한 지출과 전쟁특수로 GDP 상승, 인도와 중국, 유령 선단을 통한 서방의 경제 제재 회피, 2.9%의 낮은 실업률, 노동자의 실질 임금 상승 등 겉보기에는 경제가 어느 정도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러한 러시아의 경제 구조가 단기적으로는 버틸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버티기가 힘들다는 게 경제학계에서의 중론이다. 이에 더해 경제 제재로 인해 수요에 비하여 공급이 부족해지자 인플레이션 현상이 초래되었다. 또한 대규모 징집(30만 명 추가 징집) 사태로 인한 러시아인들의 탈출 러시가 발생했는데 영국 국방부는 130만 명, 경제학자들은 100만 명으로 추산하며, 러시아 반체제 독립 매체 '더 벨'의 최신 통계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22년 2월 개전 이후 최소 65만 명이 탈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ISW는 일부 국가들이 러시아 난민 통계를 공개하지 않은 점, 포르투갈과 같이 여타 국가들은 2022년 이후 집계된 러시아 난민 통계가 없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실제로는 탈출한 러시아인들 수가 70만 명 이상일 것으로 예측한다. 그리고 이러한 지속적인 노동력과 두뇌 유출이 러시아의 군수 생산량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더불어 경제 제재로 인한 광학 장비 부족으로 빚어진 군수 생산량 저하로 인해 생산량이 전쟁터에서의 소모량을 못 따라잡고 있다.
군사경제학자인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의 마르쿠스 코이프 교수는 "러시아가 생산할 수 있는 전차의 대수가 연간 300~500대뿐"이라고 주장했다. 전시 체제로 전환된 러시아의 경제 구조를 감안해 봤을 때 이는 그렇게 많지 않은 수치다. 러시아는 이러한 무기 부족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인해전술을 고집하고 있는데 NYT 보도에 따르면 높은 보수를 제시해 신병을 모집하고, 훈련이 덜 된 신병들을 전쟁터에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한 달에 25,000~30,000명의 신병을 모집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쟁터에서 러시아군의 사상자가 늘어나고 있다. NYT의 보도에 의하면 서방의 여러 정보기관들은 러시아가 하루 평균 최대 1000명의 사상자를 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보도했다. 특히 영국 군정보기관은 2024년 5월에는 러시아군 하루 평균 사상자 수가 1,262명, 같은 해 6월에는 1,163명에 달한다고 추산하며 지난 2개월(2024년 7월 13일 기준) 간 잃은 병력만 해도 70,000명이 넘는다고 주장한다.
미국 하원에서의 우크라이나 원조에 대한 공화당의 제동과 EU 회원국인 헝가리의 반대로 인한 원조 지연으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심각한 탄약 부족에 시달렸다. 러시아는 이를 틈타 남-동부 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세를 펼쳤다. 이러한 공세의 결과로 아우디이우카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지난해 5월 바흐무트 점령 이후 러시아의 가장 큰 승리였다. 하지만 아우디이우카는 2014년부터 러시아가 점령한 도네츠크에서 불과 20km 떨어진 도시였다. 이는 러시아가 많은 병력을 투입했음에도 20km 밖에 진격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또한 러시아는 서방의 지원이 늦어져 탄약 부족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군의 병력을 분산시키고 병력 소모를 유도하기 위해 하르키우주에서 다시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이마저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우크라이나군이 하르키우주에서 자리를 잡음으로써 러시아의 진격을 늦췄기 때문이다. 탄약이 부족해 버릴 곳은 버리고, 방어할 곳은 방어하면서 버티는 우크라이나의 필사적인 저항과 산발적 공세로 인한 전력 분산 때문에 러시아는 서방의 지원이 지연되는 동안 별로 그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느리게 진격하면서 작은 마을들을 하나씩 점령하기는 했지만(예를 들자면 헤르손주의 크린키, 자포리자주의 우로자이네 등), 아우디이우카를 점령할 때만큼의 중요한 승리는 아니었다. 이후 러시아는 동부 전선의 핵심 방어선이라 할 수 있는 쿠퍈스크-발라클레야-이지움-리만-슬로뱐스크-크라마토르스크-드루슈코프카-콘스탄티니노브카-포크로우스크 라인 중에서도 동부 핵심 요충지 중 하나인 포크로우스크를 향해 러시아군이 맹공을 퍼붓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현재(2024년 9월 22일)까지는 이 지역들이 함락되지 않았다.
이렇듯 우크라이나의 경우 육상에서 별다른 성과를 못 낸 반면 러시아 흑해 함대를 상대로 해상 드론을 활용해 러시아 해군을 흑해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러시아는 남은 흑해 함대의 함선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함들을 크름반도의 세바스토폴 항구에서 러시아 본토 내 노보로시스크로 옮겼다. 흑해에서 해군이 활동하기 힘드니 아조우해를 흑해 함대의 본거지로 삼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난 5월 우크라이나군의 해상 드론 공격으로 인해 아조우해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영국의 국제안보전문가인 바질 제르몬드는 "우크라이나군은 흑해에서 서서히 우위를 점하고 있다. 러시아 흑해 함대는 이제 흑해에서의 통제력을 잃었다."라고 설명했다. 2024년 3월 영국 국방부는 "흑해 함대는 이제 기능적으로 비활성화됐다."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군은 개전 이후 스톰 섀도우 미사일 자체 개발한 해상 드론, 넵튠 미사일을 통해 흑해 함대의 기함인 모스크바함 격침을 시작으로 올해 초까지 잠수함 1척을 포함, 흑해 함대 전력의 1/3을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나토와 1987년에 맺은 몽트뢰 협약으로 인해 발트 함대나 북방 함대의 군함을 보내 전력을 보강할 수 없다. 그렇기에 자체적으로 함선을 다시 건조해 흑해 함대의 손상된 전력을 복구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바질 제르몬드는 “러시아가 파괴된 흑해 함대 전력을 복구하고 흑해에 대한 제해권을 되찾는데 앞으로 10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사태가 지속될 경우 크름반도와 자포리자주, 헤르손주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군의 보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흑해나 아조우해에서 러시아 해군이 제 역할을 못 하면 해상 경로를 통한 보급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면 러시아 본토에서 돈바스를 통해 남부 점령지까지 육상 경로를 통해 보급해 줄 수밖에 없는데 이는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육상 경로와 해상 경로를 동시에 활용해 보급할 때보다 보급량이 줄어들어 우크라이나 남부에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군의 작전 수행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가 흑해 함대와, 크름 반도를 공격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우크라이나가 마냥 우호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것은 아니다. 대반격을 하면서 되찾았던 지역들 중 몇몇은 러시아군에게 다시 빼앗겼고, 사상자 수도 많이 나오고 있으며(대표적 예로 헤르손주의 크린키에서 되찾은 점령지를 유지하느라 1,0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 하지만 점령지 유지에 실패했고 결국 후퇴했다.), 젤렌스키와 잘루즈니의 정치적 대립으로 정국이 혼란스럽고, 국가 채무 문제, 징병 문제로 인한 병력 부족과 젤렌스키에 대한 여론 악화 그리고 전쟁 피로도 급증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내 전쟁 회의론 증가(2022년 5월에는 16%, 10월에는 29%, 12월에는 33%, 2024년 2월에는 46%/자료 출처: 키이우 국제사회학 연구소=KIIS, 2022년에는 22%, 2023년에는 27%, 2024년에는 52%, 2025년 5월에는 69%/ 자료 출처: 갤럽) 등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대규모 공세를 통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 한 러시아 또한 우호적인 상황에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이번 러시아의 공세는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했던 게 맞고, 작년 우크라이나의 여름철 대공세와 마찬가지로 전반적으로 성과가 없는 공세였다. 투입한 병력에 비해 진격 속도는 느리고, 사상자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반적인 전쟁 양상은 러시아의 점진적인 진격, 국지전, 교착 상태가 섞인 상태며 서로가 주고받기 식으로 전투를 치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상황이 유지되는 한 전쟁에서의 중심 추가 어느 누구한테 넘어갔다고 판단하기에는 힘들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체코의 활약으로 155mm 포탄 공급이 재개되었고 미국 하원에서도 우크라이나 원조가 승인되면서 우크라이나군은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새로이 지원받은 군사 원조 패키지로 소규모 역습을 가하며 전선을 사수하는 중이다. 이와 동시에 인도받은 소량의 F-16과 영국과 프랑스가 지원해 준 스톰 섀도우, SCALP 미사일로 러시아내 병참기지와 군수 시설을 타격하고 있다.
이 상황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쿠르스크주와 벨고로드주를 침공했다. 갑작스레 시작된 공세였고, 미국도 이에 대해 보고받지 못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크라이나는 이 공세를 상당히 오래전부터 치밀하고 비밀스럽게 계획해 온 것 같다. 이전에도 러시아 국경에 대한 공세는 러시아인을 중심으로 한 친우크라이나 민병대가 실행해 옮긴 적이 있는데 이 공세들은 이번처럼 대규모 공세도 아니었고, 소규모 습격에 가까웠으며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도 않았다. (이번에는 1주일 넘게 공세가 지속되고 있다.) 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의 이러한 기습 공세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 그중 눈에 띄는 분석이 바로 영국 탐사보도 매체 편집국장 흐리스트 그로제프의 분석이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일부 영토만 점령해도, 나중에 협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필자가 이 공세 소식을 들었을 당시 떠올린 생각은 “러시아의 병력을 분산시키고,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많은 외신들과 ISW도 이와 비슷한 추론들을 내놓았는데 최근 우크라이나군의 발표에 따르면 이것이 맞았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의 병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이 공세를 감행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실제로도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의 병력을 분산시키는데 성공했다. 최근 러시아는 쿠르스크주의 방어를 위해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의 일부 병력을 쿠르스크주로 옮겼다. 물론 동부 전선에서 정예 병력을 빼돌려 쿠르스크주 공세에 투입한 우크라이나도 그 공백에 신병들을 채워 넣는 바람에 동부 전선에서 조금씩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양국 군대의 배치와 전선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2024년 8월)일까? 위에서 언급했듯 러시아는 동부 전선에서 조금씩 진격하고 있었다. 결정적인 승리들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점진적으로 점령지를 확대하고 있었던 것은 맞다. 우크라이나는 이를 의식해 쿠르스크주와 벨고로드주에 공세를 감행한 것이다. 러시아의 병력 분산을 유도해 공세를 약화시키기 위함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여름철 공세 실패와 지상에서의 거듭된 방어전으로 우크라이나군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크라이나는 무언가 큰 한 방이 필요했고 이것이 우크라이나가 이번에 공세를 감행한 이유였다. 또 앞서 언급했듯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당선될 것에 대비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잡기 위해서 이 공세를 한 것도 있으며 국제 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촉진시키고, 회의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이 공세를 감행한 것도 있다. 이에 더해 푸틴의 리더십 손상, 러시아 국민에게 전쟁의 피해와 고통을 전가하여 러시아 내 반전 여론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도 내포되어 있다. 러시아 본토 내에 있는 정유 시설과 군사 시설 등을 드론으로 연일 공습하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을 끊고, 후방 보급 능력을 약화시키려는 목적도 있다. 하지만 소량의 F-16만이 우크라이나에 도착해 최소한의 방공 임무만 맡고 있는 현 상황에서 별다른 공중 지원 없이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공세(러시아 본토 내 시설 공습 & 쿠르스크주에 대한 공세)와 더불어 동시에 우크라이나가 다시 한번 대규모 공세를 감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주에 대한 공세가 있기 전 러시아는 북한과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협정을 체결해 전분야에서 북한과의 협력을 한 층 더 강화했다. 그 대가로 현재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포탄을 공급받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현재 상황에서 러시아의 전략은 무엇일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소모전을 유도해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지치도록 하여금 협상 테이블에 나오도록 하는 것이다.(미국의 트럼프 당선, 위에서 보여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사기 저하를 미루어 보면 그의 이러한 전략이 통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기에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포탄 공급이 시들해진 틈을 타 여기저기서 공세를 감행한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미국 대선에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즉시 끝내겠다는 트럼프에 대한 돌풍이 불고 있기에 푸틴은 트럼프가 당선되기를 바라며 이 대선 때까지 전쟁을 지속한 뒤 트럼프를 마중물 삼아 우크라이나와 협상해서 현재 가지고 있는 점령지를 들고 가겠다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천연자원을 통해 서방과 미국을 압박하여 친러 성향의 극우 세력이 약진하도록 해 서방의 여론 분열을 획책하고 장기적으로 서방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계획이다. 미국은 대선 결과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유럽은 지금 당장 순순히 물러나줄 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서 발을 뺄 경우 나중에 중국과 더불어 러시아도 문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현재 푸틴은 평화 협상 조건으로 돈바스 지역까지 들고 가겠다는 입장이다. 러시아가 전쟁 초기부터 명분으로 삼으면서까지 돈바스 지역에 집착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그것도 미래 산업에 필수적인 리튬, 코발트와 더불어 금, 석탄, 철 등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그야말로 러시아에게는 잭팟인 것이다. 캐나다 싱크탱크에서 돈바스에 매장되어 있는 지하 광물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본 결과 약 12조 달러(한화로 1경 6542조 원)이다.
또한 위 지도를 통해 러시아가 점령한 점령지(진한 빨간색 부분 제외, 연한 빨간색만 해당)에 묻혀있는 광물들을 살펴보자. 희토류(민트색)부터 시작해, 리튬(진한 연두색), 티타늄•지크로늄(남색), 비철금속(구리, 아연, 알류미늄, 니켈 등/진한 하늘색)의 매장지가 다수 분포해있다. 이대로 점령지가 굳혀 진다면 전부 다 러시아가 광물을 독점하게 된다. 이러한 자원을 중국처럼 무기화해 자원 외교를 구사하면 유럽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이미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천연가스무기화로 그 사실은 입증되었다.)
둘째 여기는 스탈린 통치 하에 있던 소련 공장의 40%가량이 밀집되어 있었던 최대 공업 단지다. 이 말인즉슨 1차 산업 중심인 러시아 입장에서는 본인들의 공업력을 한 층 더 키워낼 수 있다는 의미다. 셋째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는 데다 평야라서 농산물 생산도 많이 된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전인 2021년 한 해에만 8400만 톤의 곡물을 생산해 이 중 5000만 톤을 수출했다. 또한 전 세계 밀 수출량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돈바스 지역은 이런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러시아가 여기를 차지하게 될 경우 우크라이나의 곡물 생산량은 줄어드는 대신 러시아의 곡물 생산량은 오히려 증가되어 지하자원 외의 또 다른 압박 수단으로 식량이라는 카드를 들고 나와 유럽과 전 세계를 압박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국제 사회에 있어 본국의 영향력을 더 많이 행사할 수 있다. 그 원리를 설명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러시아가 식량을 가지고 압박해 오면 전 세계적 식량 공급망에 차질이 생길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기아가 늘 것이고, 선진국에서는 곡물가가 또 올라서 인플레이션이 심해질 것이다. 그럼 그때부터 사람들은 누구를 탓하겠는가? 러시아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면 되는데 안 들어주고 오히려 이런 상황까지 초래했다며 서방을 비난하기 시작할 것이다. 여기다가 이념적 색채가 없고 역사적으로 서구 제국주의에 시달린 제3세계 국가들과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해서 반미, 반서구 감정이 확대될 것이고 러시아는 이를 이용해 다자주의를 표방하는 척하며 프레임을 씌워 제3세계와 개발도상국의 여론을 등에 업고 미국, 유럽 국가들에 대한 국제 여론이 회의적이게 되도록 유도할 것이다. 이럴 경우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가 원하는 요구 사항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이런 전략을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도 현재 비슷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이것이 현재 미국과 서방 그리고 그 동맹국들이 중•러에 대항하도록 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현재 러시아가 점령 중인 남부 지역(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을 다시 탈환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쟁이 끝난 후 전후 복구와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는 남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나 산업 인프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현재 점령하고 있는 남부는(자포리자주와 헤르손주에 속해있는 오데사, 멜리토폴마리우폴 등 포함) 우크라이나에게 있어 수출 루트와 흑해에 대한 제해권 확보 차원에서 중요하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러시아 해군의 활동 범위 확대와 부동항 확보를 통한 수출 활성화에 있어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과 크름반도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이 두 지역을 얻게 되면 러시아의 해근 활동 범위가 아조우해 -> 흑해 -> 지중해 이렇게 넓어지게 되고 넓어지는 반경을 따라 수출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해 보면 결과는 다음과 같다. 현재 이 시점에서 러시아랑 평화 협상을 해 돈바스를 포함한 다른 점령지도 넘겨주자고 주장하는 것은 러시아한테 칼자루를 하나 더 쥐어주고 우리의 목숨줄을 더 쉽게 끊을 수 있도록 부추기는 꼴이다. 이미 앞서 언급했듯 푸틴은 전쟁 장기화를 통해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원조하는 국가들의 국민들 입에서 자발적으로 전쟁을 끝내자는 말이 나오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이념적 색채가 없는 제3세계에서의 여론적 지지를 형성해서(대표적인 예시로 평화 협상 조건을 제시한 인도네시아, 서방이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브라질, 이 전쟁에 무관심한 인도 등) 협상을 러시아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이끌어 위에서 말한 것들을 챙길 심산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이 시점에서 평화 협상을 외치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의 순진한 외침일 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트럼프는 이에 대한 고려가 없어 보인다. 2025년 8월 15일(한국 기준으로 광복절) 알래스카에서 미-러 정상 회담이 계획되어 있고, 트럼프는 일부 영토를 러시아에 양도하는 대신 러시아 점령지 중 일부는 우크라이나에게 반환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젤렌스키 대통령과 EU는 어떠한 안보 보장 없이 휴전 협상이나 영토 할양은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밝혀진 바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돈바스 지역을 들고 가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미-러 알래스카 정상회담을 비롯한 향후 평화 협상들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날 듯하다. 당사국들 간의 이견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현재 전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에서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우크라이나가 버티는 중이라 러시아의 신속한 점령지 확대나 우크라이나의 동부 전선 붕괴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전반적인 흐름을 보면 큰 틀에서 2023년 12월 바흐무트 점령 후 2024년 12월 도네츠크 방면에서의 돌출부확보 후에는 2025년 5-7월까지 같은 방면에서 공세를 지속해 점령지를 좀 더 확장했고, 8월 12일 기준으로 조금 더 진격했다. 지금은 러시아가 도네츠크 방면에서의 저러한 진격 외에 큰 성과가 없는 상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핵심 방어선(쿠퍈스크-이지움-리만-슬로뱐스크-크라마토르스크-드루슈코프카-콘스탄티니노브카-포크로우스크)을 점령하려면 아직 멀었으며, 당장 작년 9월 내지 12월부터 함락설이 붉어지던 포크로우스크(병참 기지 역할)에서는 여전히 우크라이나가 저항 중이다. 러시아군이 로딘스크, 미르노흐라드와 포크로우스크 남서쪽을 에워싸며 부분적 포위를 시도해 포크로우스크 일부 지역에 진입하긴 했지만 완전 점령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하다.
미국의 워싱턴 D.C를 소재지로 하는 ISW의 분석에 따르면 러시아는 빠른 성과를 내기 위해 도시에서의 시가전을 우회해 도시 인근 소규모 정착지나 마을 점령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당장의 위 지도를 봐도 눈에 띄는 부분은 빌리츠크와 졸로티 콜로디아스 방면으로 튀어나와 있는 돌출부다. 주요 거점 도시이자 병참 기지 역할을 하는 포크로우스크를 우회해서 저 방면으로 뻗어나간 것인데 포크로우스크에서는 시가전을 해야 하니 러시아 입장에서는 까다롭기도 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이미 위에서 언급했지만 작년 12월 이르면 9월부터 포크로우스크 함락설이 나돌았지만 저 때부터 지금까지 8-10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도 포크로우스크를 완전 점령하지 못하고 일부 진입에만 그치는 것은 ISW의 분석이 신빙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ISW의 분석을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1. 포크로우스크(부분 진입), 차시우 야르(2024년 4월-2025년 8월 약 16개월 간의 시가전 끝에 점령), 토레츠크(2024년 6월-2025년 8월 약 14개월의 시가전 끝에 점령) 등 주요 도시에서는 진격 속도고 더디고 손실이 크며 들판•소규모 정착지에서는 진격이 빠르다.
2.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러시아의 전술은 주요•거점 도시 진입 전 부분적 포위, 외곽 우회 후 제한적 시가전(포크로우스크가 대표적 예시)을 하며, 주요•거점 도시보다는 손실이 적고 빠르게 점령할 수 있는 들판이나 소규모 정착지에 집중하고 있다. 시가전에서는 손실 대비 영토 획득이 적다.
3. 빠른 정착지 점령을 위해 중장비나 기갑 전력 활용보다는 보병 중심의 소규모 전투와 기동전을 구사한다.
이렇기에 이때까지 본인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러시아가 느리고도 점진적인 진격을 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국지전,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조는 우리가 언론에서 자주 접하는 소식과 다르기에 듣기가 불편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들거나 믿기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까지 설명을 했음에도 여전히 의문이 드는 독자들은 스스로 한 번 찾아보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