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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May 31. 2021

머리라는 거대한 하늘을 지고 있는 거인

1번 경추의 이름이 아틀라스(Atlas)가 된 이유

아틀라스(Atlas, Ἄτλας)라는 단어는 여기저기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산맥, 게임 속 캐릭터, 승용차, 회사, 소설 제목 등의 명칭으로 상당히 많이 쓰이는 이름인데, 정확한 의미나 어원은 잘 모르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최근에 유명해진,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인수한 보스톤 다이나믹스에서 만든, 팝송에 맞추어 멋진 춤을 추는 2족 보행 로봇의 이름도 아틀라스이죠.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만든 로봇 '아틀라스'


아틀라스는 티탄(Titan) 신족의 하나로, 앞서 언급되었던 크로노스의 형제 중 한명인 이아페토스(Iapetos, Ἰαπετός-힘의 신)의 아들입니다. 제우스와는 사촌 지간이라고 할 수 있는 신입니다. 


제우스와 그의 형제들을 위시한 새로운 올림포스의 신족들과, 원래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티탄 신족들 간의 싸움인 티타노마키아에서 티탄 신족은 패배하였고, 그 이후 제우스에 대항했던 티탄 신족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봉인(주로는 지하 세계인 타르타로스에 갇히게 되었죠)되거나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일부 티탄 신족들은 일찌감치 제우스 편을 들어 무사하기도 했지만 말입니다(ex. 스틱스).


어쨌든 아틀라스는 대부분의 티탄 신족들과 마찬가지로 제우스와 맞서 싸웠기에 패배에 대한 벌을 받게 되었고, 그가 받은 형벌은 하늘을 떠받치는 것이었습니다.

아틀라스의 조각상. 하늘을 떠받드는 벌을 받았는데, 이 조각상에서는 지구를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아틀라스는 목 뒤에 괴어 놓는 형태로 무거운 하늘을 떠받치게 되었는데, 이후로 종종 신화 속에서도 언급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헤라클레스는 그의 열두 가지 과업 중에 황금사과를 가져오는 것이 있었는데, 그 황금 사과 나무를 지키고 있는 존재가 아틀라스의 딸들인 헤스페리데스(Hesperides, Έσπερίδες-석양과 저녁의 요정들)였기에, 아틀라스가 그녀들에게 황금 사과를 얻어올 동안 잠깐 하늘을 대신 들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이 황금사과는 훗날, 트로이 전쟁의 불씨로 작용하게 됩니다.

황금사과 나무를 지키는 헤스페리데스들.


기나긴 형벌을 견디다 못한 아틀라스는, 후에 메두사와 싸워 이긴 영웅인 페르세우스(Perseus, Περσεύς)에게 자신을 돌로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게 됩니다. 목 뒤에 하늘을 지고 영원히 버티는 것은 티탄 신족인 그에게도 큰 고통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있는 아틀라스 산맥이 바로 그가 돌로 변한 모습이란 전설이 있습니다. 산맥이 그리스에 비하면 서쪽에 위치하는데다가 그 너머에는 망망대해만이 펼쳐져 있어(각주 1),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보기엔 세상의 끝에서 하늘을 받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아틀라스 산맥의 위치.

아틀라스가 세상을 받치고 있는 목 뒤 부분에 있는 것이 경추(cervical spine)의 첫번째 뼈이고, 그 뼈의 영어 이름이 바로 ‘Atlas’입니다. 아틀라스가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하늘을 받치고 있듯이, 경추 1번도 자신의 크기에 비해 매우 거대하고, 또 인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머리’를 받치고 있습니다. 인간의 머리 안에 있는 뇌에서, 수많은 상상과 사고가 가능하고, 그 범위가 우주만큼 넓은 것을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적절한 이름은 없을 것 같습니다.

아틀라스와 경추 1번


이런 경추 1번의 골절이나 손상은 흔하게 일어나지는 않아, 급성 경추 손상의 2~13%이며 전체 척추 손상의 1~2% 정도만을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각주2). 그러나 손상이 발생할 경우 사지마비 등의 후유 장애도 발생할 수 있으므로, 1번 척추 손상이 의심될 경우에는 환자 운반과 처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위에 언급된 헤스페리데스 외에도 아틀라스에게는 많은 딸들이 있었는데, 일곱 자매로 이루어진 플레이아데스(Pleiades, Πλειαδες)이며 현재는 성단(星團)의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황소자리(Taurus)의 알파성인 알데바란(Aldebaran) 근처에서 관찰할 수 있는 별무리인데, 한국어로는 ‘좀생이별’이라고도 부릅니다. 

플레이아데스 성단의 모습.

맨눈으로 보기엔 작은 별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여 ‘좀’이란 표현이 들어간 것으로 생각됩니다. 동아시아에서는 ‘묘수(昴宿)’라고 불리며, 서쪽 방위를 담당하는 백호(白虎) 7수 중의 하나로 생각되었습니다. 예전에 유행했던 일본 만화인 ‘판타스틱 게임’을 읽어본 적 있는 분들이라면 상당히 익숙한 표현일 것입니다(주인공은 비록 남방을 담당하는 주작(朱雀)의 무녀(巫女)와 7수들이었지만 말이죠).

플라이아데스 일곱 자매를 그린 그림. 1885년. Elihu Vedder.

이 일곱자매 중 막내 격인 메로페(Merope, Μερόπη)는 시시포스(Sisyphus, Σίσυφος)라고 하는 코린토스(Kórinthos, Κόρινθος)의 왕과 결혼하였는데, 이 시시포스는 올림포스 신들을 속였다가 벌을 받아 산 위로 바위를 밀어올렸다가 다시 굴러 떨어지면 또 밀어올리기를 영원히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남편이 모두 신에게 벌을 받게 된 메로페는 그 사실이 슬퍼서 혹은 수치스러워서 모습을 숨기게 되었고, 이런 전설처럼 실제로 플레이아데스 중에서, 밤하늘을 맨 눈으로만 올려다보았을 때 관찰이 잘 안 되는 별이 메로페입니다('죽음이란 무엇인가?' 포스트 참조).

https://brunch.co.kr/@ef4da8729340415/16




*각주 

1.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지브롤터 해협 너머를 대양(오케아노스-Okeanos,  Ὠκεανός)라고 부르며, 그 너머에는 세상의 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 Curr Rev Musculoskelet Med. 2016 Sep; 9(3): 255–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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