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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Jan 07. 2022

신조차도 치료하기 어려운 독

어린 호루스를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전갈의 공격

이집트 문명은 인류 역사 상 가장 오래된 문명 중 하나입니다.


이집트라는 나라는 나일강 유역에서 시작되어 이미 기원전 31세기 경에 상/하이집트가 통일된 왕국을 이루고, 파라오라고 부르는 왕에 의해 다스려지던 전제왕정 국가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클레오파트라 7세 여왕(로마 공화정의 안토니우스와 연인이었던)이 자살하며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3000년이 넘도록 존속된, 기나긴 역사를 지닌 나라답게 그들이 만들고 믿었던 이집트 신화 역시 매우 신비로운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대략적인 창세신화 이야기를 정리해보자면(가장 널리 알려진 버전입니다),

혼돈의 바다(그리스 신화의 카오스와 비슷합니다)에서 태양신 '라'가 탄생하였고(창조신 '아툼'이 탄생하였다고 전하기도 합니다), 라가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의 침에서 만들어낸 두 아이가 공기의 신 '슈'와 습기의 여신 '테프누트' 였습니다.

이 두 신은 결혼하여 남매를 낳았는데, 오빠가 대지의 신인 '게브'이고 여동생이 하늘의 신인 '누트'였습니다.

하늘의 신 누트와 땅의 신 게브를 묘사한 그림.


그러나 부모 세대와 달리, 게브와 누트의 결합은 라에게 허락 받지 못하여, 그들 사이의 아이들은 태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게브와 누트를 딱하게 여긴 지식과 기록의 신 '토트'가 달의 신인 '콘수'에게 내기를 걸어 5일의 시간을 얻어내어 그 시간 동안 네 명의 아이가 태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합니다(이 사건이 바로 1년이 365일이 된 원인라고 설명을 합니다).


이 때 탄생한 네명의 신이 이집트 신화에서 가장 많이 활약하고 널리 알려진, 오시리스, 이시스, 세트, 그리고 네프티스(태어난 순서대로 기술) 입니다.


신들과 별개로 인간들은 라의 눈물에서 탄생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네 명의 신 중 첫째인 오시리스는 수려한 외모와 훌륭한 성품, 뛰어난 지혜를 고루 갖추고 있었으며, 모두의 사랑과 아버지 게브의 인정을 받아 이집트의 지배자로 등극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아래 동생이자 모성과 마법의 여신인 이시스와 결혼하여 이집트를 잘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비옥한 이집트 땅을 다스리는 오시리스에게 질투와 증오의 감정을 키운 자가 있었으니, 바로 동생이자 사막과 모래바람의 신인 세트였습니다.

세트는 보통 자칼의 머리를 지닌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지닌 것으로도 여겨졌으며, 사막을 건너다니는 상인들고 이방인의 수호신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신이었습니다.

세트는 형에 대한 질투심(+누나인 이시스에 대한 사모가 겹쳐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으로 인해, 오시리스를 없앨 음모를 꾸미게 되었습니다.


세트는 오시리스의 몸에 딱 맞게 만든 아름다운 관(...)을 만든 후에, 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관의 크기와 몸이 같은 신에게 선물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사후 세계를 중시하는 이집트에서는 멋진 관은 일종의 명품처럼 여겨진 것인지, 신들은 모두 그 관을 갖고 싶어했으며, 당연하게도 그 관은 오시리스에게 딱 맞는 크기였습니다. 세트는 오시리스가 관에 들어가자마자 관의 뚜껑을 닫고 못을 박은 후, 바다에 던져럽니다(아무도 말리지 않은 게 이상하지만...).


졸지에 수장된 오시리스는 그대로 사망하였고, 이시스는 남편의 시신을 찾아 부활시키기 위해 관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다닙니다. 다행히 이시스가 오시리스의 관을 발견하였으나, 세트는 형의 부활을 저지하기 위해 시신을 14조각을 내어 이집트 곳곳에 숨겨놓았습니다. 그러나 이시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남편의 시신 조각을 모으기 위해 이집트 전역을 헤매어 다녔고, 결국 13조각(마지막 한 조각은 성기였다고도 합니다)을 찾아내어 이어 붙인 후 오시리스를 사후 세계의 지배자로 부활시킵니다.

*** 부활 능력을 지닌 마법사라는 점에서는 그리스 신화 속 메데이아가 이시스와 비슷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후 세계의 지배자로서 부활한 오시리스, 원래는 갈색 피부에 검은 머리를 가진 청년의 모습이었다고 전해지나, 죽었다가 살아났기에 미라 같은 녹색 피부를 갖게된 것 같습니다.

비록 오시리스의 이승에서의 삶은 끝났지만, 사후 세계의 신이자 재판관으로서 계속 숭배 받는 존재로 다시 살아가게 된 것이죠.


오시리스가 사망하였고 이집트의 권좌를 차지했으니 신화는 세트에게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인가 싶지만, 결국 오시리스와 이시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호루스가 삼촌인 세트와 대결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집안 싸움이자 이집트의 지배권을 둔 싸움의 최종 승자는 결국 호루스가 되고 세트는 지하세계로 쫓겨난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호루스가 장성하여 세력을 갖추고, 세트와 동등하게 경쟁하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난관이 있었습니다.

그 수많은 고난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다룰 '전갈독'과 관련이 있습니다.

세트(좌)와 호루스(우). 세트는 자칼 혹은 땅돼지의 머리를 가진 신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호루스는 매의 머리(+머리에는 왕관)를 지닌 신으로 그려집니다.

세트는 오시리스의 아들인 호루스가 무사히 장성하면, 정당한 왕위계승자로서 자신에게 도전할 것을 예상했기에 어린 시절부터 그 싹을 자르려고 시도합니다.

세트는 호루스에게 전갈(혹은 독사)을 보내어 물도록 하였으며, 이로 인해 독에 중독된 호루스는 사경을 헤매게 됩니다.


현대에도 동식물의 독에 노출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현대에 비하면 여러모로 의학 지식의 수준이 떨여졌을 고대 이집트의 의술로서는 여러 중독 증상 치료에 취약했을 것이기에, 옛날 사람들은 '신'이라고 하더라도 맹독의 위험에서 무사하기 힘들 것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호루스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던 이시스는 지식의 신인 토트에게 방법을 물었고, 토트는 '라'의 진실된 이름을 알려준 후 이를 가지고 '라'를 움직여 태양신의 권능으로 호루스를 치유하였다고 합니다.

정리하자면, 고대 이집트의 의술로는 그냥 전갈에 물린 중독 증상을 치료할 수는 없었고, 맹독을 가진 전갈에 물린 경우에는 '태양신'의 힘 정도는 빌려야 살아날 수 있는, 기적에 가까운 힘이 필요하다고 여겨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현대를 사는 의사로서 생각해볼 때, 호루스를 물었던 전갈은 어떤 종류이며, 그 독의 성분은 무엇인지도 궁금해졌습니다. 추가로 현대 의학으로 전갈독을 해독할 수 있는지도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이집트 지역에 사는 전갈에 대해 조사해보니, "Deathstalker scorpion"이라는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종류의 전갈이 먼저 나왔습니다. 학명은 'Leiurus quinquestriatus'이며 북아프리카에서 중동에 걸친 지역에서 서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Deathstalker scorpion. 노란빛이 도는 전갈로, 사막에서 보면 모래와 잘 구분이 안 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이 전갈은  신경독을 지니고 있는데, 그 독의 가장 대표적인 성분이 바로 'Chlorotoxin'이며 이름에 걸맞게 염소 이온 통로(Chloride channel)을 차단하여 그 독성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이 독소에 의한 증상은 '마비'이며, 왕새우(crayfish)에게 실험한 결과로는 몸무게 1g 당 1.23-2.23 µg의 독이 주입되어도 20초 이내에 운동 조절 능력이 상실되며, 점차 마비 증상이 진행되어 전신적인 강직성 마비가 나타나게 된다고 합니다.


Chlortoxin 외에도 그리스 신화 속 괴물의 이름을 따온 독소 성분들이 들어 있는데, 오디세이아에 등장하는 바다 괴물들인 스퀼라와 카리브디스의 이름이 들어간 Scyllatoxin과 Charybdotoxin입니다. 이 독소들은 칼슘과 칼륨(포타슙) 이온 통로에 작용하여 신경의 과다활성을 일으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독소들은 먹이가 될 동물을 마비시켜 전갈의 사냥에 활용되기도 하지만, 사람에게도 과량이 투입되면 호흡곤란이나 근육 조절 이상 등을 일으켜 생명을 위험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체구가 작은 어린이였던 호루스가 이러한 독소에 노출되었다면, 성인에 비해 더 빠른 속도로 독이 퍼져 상당히 큰 고통을 받고 죽음의 문턱에 다가갔을 것 같습니다(신이지만 죽을 수 있다는 점도 신기합니다만...).


현대에는 전갈에 물렸을 때 항전갈독혈청(Anti-scorpion venom serum, AScVS)을 사용하여 독을 중화하고 여러가지 대증 치료를 병행하여 환자의 고통을 줄이고 생명을 구하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2011년에 "아나스코프(Anascorp)"라는 약제가 오직 전갈독(미국에 많이 서식하는 나무전갈-Centruroides)을 해독하는 용도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약제는 전갈독에 면역이 있는 말의 혈청으로 만든 것으로, 이 약을 주사하면 전갈독의 독성 작용이 빠르게 사라진다고 합니다(각주 1).


요즘엔 이렇게 전갈독을 중화할 방법을 찾아낼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된 Chlortoxin 성분을 암 치료에도 활용하고 있습니다(각주 2). Chlortoxin이 신경교종(Glioma)와 같은 종양세포에 좀 더 잘 결합하고, 이를 통해 종양의 정상 조직으로의 침범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태양신의 권능으로 겨우 목숨을 구할 기회를 얻을 호루스 신화와 달리, 현대에는 의학의 힘으로 '인간'의 목숨을 구하고 있습니다.

신화 시대의 이야기들은 확실히 흥미롭지만, 우리가 살아가기에는 이 시대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 각주

1. http://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7932

2. Deshane J, Garner CC, Sontheimer H (February 2003). "Chlorotoxin inhibits glioma cell invasion via matrix metalloproteinase-2". J. Biol. Chem. 278 (6): 41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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